<심판날 다시 만날, 분쟁하는 목사와 교인들>-조나단 에드워즈

1. 목사님이 책을 쓴 이유

조나단 에드워즈 목사님이 이 책을 쓴 사연은 한 마디로 기가 막힙니다.

1750년 6월 22일, 그동안 23 년간 목회하던 노스켐프턴 교회에서 에드워즈

목사님은 해임되었는데 이 책은 마지막 고별설교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평생을 하나님의 신실한 종으로 목회하면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기에 열심이었던 목사님이 교인들의 투표로 목사직을 사임할 수 밖에

없었던 사건은 참으로 충격적인 일로서 교회사의 미스터리로 남아있습니다.



목사님에 대한 신임투표로까지 발전된 사건의 원인은 목사님께서

성찬예식에 참여할 수 있는 교인의 조건을 까다롭게 점검해야 한다고

주장했기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목사님께서는 그동안 관행적으로

세례받은 사람이면 누구나 성찬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한 지역교회들의

오래된 입장을 묵인해 오다가 더 이상은 안되겠다 싶어 이를 강력하게

교회에 제시했고, 교인들은 목사님의 주장대로 하다가는 교회 부흥에

치명적인 해가 된다고 생각하여 목사님의 제안을 거부하면서 논쟁으로

비화하게 되었고 결국 해임투표로 이어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투표 결과는 충격적으로 찬성 230표 대 반대 23표로 목사님의 해임이

결정되었습니다. 다른 목사들 같으면 결과를 받아 들이기는 커녕 온갖 구실을 붙여

눌러 앉을 계책을 짜냈을 법한데.. 에드워즈 목사님은 이를 받아들입니다.



목사님의 고별설교는 평생 그가 설교했던 공식 그대로 1) <본문과 주석>,

2) <교리와 설명>, 3) <말씀의 적용>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목사님은 <우리 주 예수의 날> 즉, 심판날에 사도들과 교인들이 주님 앞에 모여

서로에게 자랑거리가 될 것을 상기시키는 고린도후서 본문을 택하고

사도 바울이 당시에 처했던 상황을 설명하는 것으로 설교를 시작합니다.



2. 본문과 주석



너희가 대강 우리를 아는 것같이 우리 주 예수의 날에

너희가 우리의 자랑이 되고 우리가 너희의 자랑이 되는 것이라(고후 1:14)



바울 사도는 고린도후서 1장 앞 부분에서 자신이 사역하는 동안 겪은

큰 어려움이 무엇인지 말합니다. 본문과 바로 앞의 두 절에서는

어려움 가운데서 받은 위로와 격려가 무엇인지 말합니다. 여기서 바울

사도가 강조하는 것은 다음 네 가지 입니다.



첫째, 바울 사도의 양심으로 이를 증거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특별히 너희에게 대하여

하나님의 거룩함과 진실함으로써 하되

육체의 지혜로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행함은

우리 양심의 증거하는 바니 이것이 우리의 자랑이라(고후 1:12)



둘째, 고린도 교인들의 양심이 바울에게 위로가 되며 교인들의 양심이

심판날에 바울에 대해 증거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셋째, 바울 사도가

수고와 고통을 마다하지 않고 사역한 것은 심판날 고린도 교인들이 받을

영광을 위해서이며 넷째, 심판날에 의로우신 재판장께서 자신의 사역을

인정해 주시고 보상해 주실 것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에드워즈 목사님은 바울의 양심에서 우러나오는 확신을 자신도 가지고

있다고 말하면서 짧은 설교 본문이 함축하고 있는 심판날 다시 만나게

될 교인들과 자신의 앞날을 미리 보는 것처럼 말씀을 이어 나갑니다. 교인들은

당연히 큰 기대와 관심(?)을 가지고 설교 말씀에 주목할 수 밖에 없습니다..ㅠ.ㅠ



설교 본문은 그때나 지금이나 이처럼 교회와 성도들에게 임박한 현실의

문제를 다뤄야합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 문제는 없습니까? 교인들이

사는 세상의 형편은 어떻습니까? 하지만 요즘 목사들은 도무지 문제

의식이라는 게 없습니다. 그저 <하나님을 찬양하라> 이런 듣기 좋은

주제만 설교하고 있으니 목사들은 차암.. 한가하기도 하다는 생각입니다.

틀린 말이야 아니지만 지금이 어떤 상황인데.. 하나님 찬양 타령이나 읊고 앉았으니..

골치 아픈 문제는 일단 비켜 가자는 계산 아니겠습니까?



자아.. 조나단 목사님의 무시무시한 설교 속으로 다시 들어가 보시지요..

목사님은 먼저 본문의 상황을 설명하고 여기서 말씀의 주제 즉, 교리를

끌어냅니다. 그리고 본문에서 이끌어낸 교리를 차례로 설명합니다.



3. 교리와 설명

교리-1: 목사와 교인들은 심판날 주님의 심판석에서 반드시 만납니다.

혹시 목사와 교인들이 주님의 심판대 앞에서 어떻게 만나게 될지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까? 그 만남은 오늘날 저와 여러분이 교회에서 만나는 그런 것과는 매우

다른 방식이 될 것인데, 저는 그것을 두 가지로 설명하겠습니다.



첫째, 목사와 교인들은 서로를 분명하게 아는 상태로 만납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서로를 잘 알지 못한 채 만나고 대화하고

의견을 나누고 오해하면서 다툽니다. 하지만 심판날에 우리는

변화될 것이며 서로에 대해 잘 아는 영적인 존재로서 만나게 될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목사와 교인들은 얼마든지 달라질 가능성이 있는 상태에서

서로에게 말씀과 섬김을 통해 유익을 끼치며 상대방이 변화되어 하나님

백성으로 살기를 간절히 소망하는 가운데서 만나고 헤어집니다. 하지만

심판날에 우리는 더 이상 변화될 가능성이 없으며 이제는 각자 불변의

상태 그대로 주님의 심판을 기다리면서 만나게 될 것입니다.



둘째, 목사와 교인들은 오류 없는 밝은 빛 아래서 만납니다.

이 세상에서 우리는 인간인 까닭에 서로의 생각과 마음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오해하면서 때로는 같은 마음으로 때로는 다른 마음으로

화합하기도 하고 분쟁하기도 하면서 만납니다. 하지만 심판날에 우리

모두는 하늘나라의 밝은 빛 아래에서 한 점 오류도 없고 한 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심판관 앞에 모든 것을 내 놓아야 합니다.



그때는 서로를 속일 수도 없고 속임을 당하지도 않으며 누구에게

선행이나 악행을 베풀 수도 없고 당할 수도 없습니다. 모든 것이 있는

그대로 드러나는 상태로 다시 만나게 될 것입니다.



교리-2: 목사와 교인들이 심판날에 만나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목사와 교인들이 심판날에 세상 사람들과 달리 꼭 만나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세 가지 이유를 대겠습니다.



첫째, 목사와 교인들은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라는 사명을 받았습니다

목사와 교인들은 우리 주님으로부터 살아 생전에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라는 명령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땅에서 하는

일 가운데 특히 교회와 관련된 일에 대해서는 주님께서도 특별한 관심을 기울이십니다.

따라서 목사와 교인들은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 서로 협력하고 함께

동역해야 마땅합니다. 그리고 이 일에 대해서 심판날에 하나님으로부터 분명한

심판을 받는다는 것을 깨닫고 교회 안에서 이뤄지는 모든 일에 각자 정성과 맡은

책임을 감당해야 합니다.



둘째, 목사와 교인들은 서로에게 한 일을 주님께 보고해야 합니다.

목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교인들에게 파송하신 종이며 심부름꾼입니다.

목사들은 사역을 마쳤을 때 주인에게 돌아가 자신이 행한 일과 임무를

수행하면서 받았던 대접을 주님께 보고해야 합니다. 누가복음 14장에

큰 잔치에 참석할 손님을 초대하러 보냄을 받은 종들이 주인에게 돌아와

자신이 행한 일과 자신들이 받은 대접을 보고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히브리서 13장 17절에는 하나님의 일을 맡은 사역자들에게 “저희는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마치) 자기가 회계할 자인 것 같이

하는 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종들은 자신들이 행한 일만 보고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들은 반드시 사람들이 자신들에게 어떻게 했는지도

함께 보고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목사들은 모든 것을 계산해야 하는

무서운 날에 교인들 앞에서 이 두 가지를 주님 앞에 보고하게 될 것입니다.

한편으로 교인들은 그날에 일어나서 자기 양들의 영혼의 유익보다 자기

이익만 추구한 악하고 신실하지 못한 목사들을 정죄할 것입니다.



셋째, 목사와 교인들은 하나님의 영원하신 심판을 받아야 합니다.

목사와 교인들은 심판날 함께 만나 서로 같이 있는 자리에서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영원한 판결과 보상을 받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무엇이

옳으며 무엇이 그른지를 선언하시고, 옳고 신실한 자에게는 보상하시고

인정하시겠지만 불의한 자는 정죄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다니엘 12 장

3 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지혜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리라.



신실한 교인들과 신실한 목사들은 서로에게 기쁨의 면류관이 될 것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2장 19절에서 20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랑의 면류관이 무엇이냐 그의 강림하실 때 우리 주 예수

앞에 너희가 아니냐 너희는 우리의 영광이요 기쁨이니라.”



그러나 그리스도의 신실한 목사들을 악하게 대했던 사람들은 심각한 심판을

면하기 어렵습니다. “누구든지 너희를 영접도 아니하고 너희 말을 듣지도 아니하거든

그 집이나 성에서 나가 너희 발의 먼지를 떨어버리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날에 소돔과 고모라 땅이 그 성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한편 신실하지 못한 목사들은 가장 두려운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마태복음 23장 13절 이하를 보시기 바랍니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교인 하나를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마 23:13-15)



목사님은 택한 본문의 상황을 설명하고 여기서 말씀의 주제 즉, 교리를

끌어내어 설명하면서 관련 성경 구절들을 적절하게 인용합니다.

이로써 본문에서 끌어낸 교리가 성경 전체를 통해서 일관성이 있고

오류가 없다는 것을 논증하는 것입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깨달은 교리를

당면한 오늘의 문제에 적용합니다.



설교를 듣는 교인들은 당연히 이 장면에서 엄숙해질 수 밖에 없습니다.

에드워즈 목사님은 말씀을 적용하는데 설교 시간의 절반 이상을 할애하고

있습니다. 설교를 마치면서 대애충.. <오늘날 우리도..말씀처럼 살아야

하겠습니다..> 겨우 한마디 덧붙이는 것으로 간딴하게 말씀을 적용하는

체하는 오늘날 짝퉁 목사들이 깨우침을 받아야 할 대목입니다.



자아.. 성령충만하고 명설교자이신 목사님을 감히 퇴출시키려는 저 무지하고도

막돼 먹은(?) 교인의 입장이 되셔서 목사님께서 오늘 본문에서 깨달은

진리의 말씀을 어떻게 현재 상황에 적용하시는지 한번 들어보시지요..

목사님은 교인들의 여러 믿음 수준을 고려하면서 각각 달리 말씀을 적용하고 있습니다.



4. 말씀의 적용

첫째로, 구원받은 성도들에게 말씀드립니다.

불꽃 같은 눈을 가지신 재판장 앞에서 여러분의 목사였던 사람과

반드시 만나게 될 두려운 그 날을 진지하게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저는 설교를 통해 온 힘을 다해서 제가 할 수 있는 가장 쉽고 분명한

방식으로 하늘나라의 비밀과 진리를 여러분에게 설명했습니다.

이것은 거짓된 위선자들을 막고 진실한 성도들에게 소망을 주고

위로를 주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후로 저는 여러분의 영혼을 보살피고 책임지며, 살피고 조사할 더

이상의 기회가 없습니다. 여러분은 제가 목회 기간을 통해 여러분에게

말했던 말씀들을 기억하고 신중하게 고려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여러분과 제가 우리 재판장 앞에서 반드시 함께 만나게 된다는 것을

진지하게 생각하십시오. 그때 여러분이 제게 적용했던 기준들을 다시

검증받게 될 것이며 그 기준이 옳은지 그른지 분명하게 드러날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4장 15절의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나 아비는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복음으로써

내가 너희를 낳았느니라.”



둘째로, 아직 회심하지 못한 교인들에게 말씀드립니다.

제가 여러분과 헤어진다는 것은 여러분을 어려운 환경 속에 남겨두고

떠난다는 점에서 매우 슬픈 이별입니다. 왜냐하면 저는 아직도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고 영원한 비참과 저주의 선고 아래 있는 여러분을

남겨두고 떠나야 하기 때문입니다.



만일 제가 여러분을 그리스도 안에서 성도들이 누리는 안전한 피난처와

안식처에 있는 안전하고 복된 상태로 남겨두고 떠난다면 우리의

헤어짐은 위로와 행복이 넘치는 이별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면 저는 여러분으로 하여금 이방인과 나그네요 죄와 사탄의 비참한

포로요 공의로운 심판을 받을 죄수이며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도 없고

하나님도 없는 상태로 남겨두고 떠나는 것이나 다름 없습니다.



여러분과 저는 지금 이 세상에서 서로 헤어집니다. 그러나 심판날 만남

이후에는 서로 헤어지지 않도록 하십시다. 만일 제가 여러분의 신실한

목회자였다면 저는 무죄로 인정되어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나라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날에 저와 영원히 헤어지지 않도록 최선을 다 하십시오.

지금 헤어지는 이 슬픔은 심판날 영원하고도 치명적인 이별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닐 것입니다.



셋째로, 청년들에게 말씀드립니다.

제가 이 교회에 부임한 이래 저는 젊은이들에게 많은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특별한 기회를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보통 젊은 시절에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도록 하나님께서

자비를 베풀어 주시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젊은이들이 하나님의 사랑으로 마음을 순결하게하고 부드럽게하며

미덕으로 충만한 경건한 삶을 사는 것을 보는 것은 제게 특별한 기쁨이었습니다.

만일 젊은이들이 서로 모일 때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나님의 자녀로서 대화하며

부도덕과 경박함과 낭비를 거부하고 미덕의 원칙을 지키며 하나님과 그리스도와

천국에 대한 대화를 나눈다면 이것은 참으로 아름다운 일이며 마을의 기쁨과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제가 오랫동안 바라던 바였습니다.



또한 젊은이들 사이에 악과 허영과 무질서가 있다는 소식을 듣는 것은

제게 참으로 크나큰 슬픔이었습니다. 저는 우리 교회 젊은이들 사이에

악이 성행하지 못하도록 어느 정도 조치를 취한 바 있으며 이로 인해

많은 욕을 먹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젊은이들이 참된 명예와

행복을 누리기를 위했기 때문이고 책망받는 사람이 되기를 원치 않았기

때문에 취한 조치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저는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여러분과 헤어져야만 합니다.

저는 때로 이 나라 젊은이들 가운데 만연한 좋지 않은 자유분방한

행동들을 진심으로 경고했습니다. 아무리 어떤 사람이 그런 행동을

정당화하고 이를 경고하는 것에 대해 조롱한다 할지라도 저는 지금

여러분과 헤어지면서 그것들이 잘못된 것임을 다시 한번 경고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만나게 될 그 날에 하나님께서 저의 이러한

주장을 인정해 주시고 확증해 주실 것을 믿습니다.



목사님은 각자 믿음의 수준에 따라 적절한 적용을 마치시고,

이제 교회와 가정의 부흥과 발전을 위해 마지막 권면을 하십니다.

성령 충만하신 목사님의 신앙 인격이 잘 드러나는 장면입니다. 보시죠..



5. 마지막 권면

지침-1: 가정의 질서를 유지하십시오.

여러분이 행복한 삶을 살려고 할 때 크게 관심을 가져야 할 한 가지는

가정의 질서입니다. 우리는 교회가 어떻게 운영되어야 하는가에 대해서

많은 토론을 나누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의 가정을 올바로 세우는 것은

이보다도 더욱 중요한 주제입니다.



성도의 가정은 작은 교회가 되어야하며 그리스도에게 헌신하고 전적으로

그리스도의 법에 따라 다스려져야 합니다. 가정 교육과 가정의 질서는

가장 중요한 은혜의 수단입니다. 만일 가정 교육과 가정의 질서가 무너지면

다른 모든 수단은 별 소용이 없습니다. 만일 가정 교육과 가정의 질서가

합당하게 유지된다면 모든 은혜의 수단들이 번성하여 성공하게 됩니다.



저는 목회하는 동안에 모든 가정들을 향해 자녀를 교육하고 경고하고

지도하는데 큰 힘을 쏟으라고 권면했습니다. 이제 교회를 떠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한번 더 반복하여 간절히 권면합니다. 주의 교양과 훈계로

자녀들을 양육하십시오. 아직 기회가 있을 때 일찍 시작하십시오.

지속적으로 부지런하게 하십시오. 여러분의 모든 교훈과 조언이

효과를 낸다면 반드시 가정의 질서가 세워질 것입니다. 이것이 여러분의

가정에서 신앙과 도덕을 지켜줄 것입니다.



자녀들은 부모에게 순종하십시오. 부모의 가르침에 순종하고 부모의 지시에

순복하십시오. 부모들은 여러분에게 저주가 아니라 복을 물려 주기를

원하는 사람들입니다. 이 세상에서 자기 부모에게 무책임하고 불순종하며

무질서하게 대하는 것보다 더 큰 화를 불러 오는 것은 없습니다.



지침-2: 다툼을 피하십시오.

다투는 사람들은 불쌍한 사람들입니다. 논쟁이나 다툼은 하나님 나라에

어울리지 않으며 성령을 소멸시키고 모든 은혜의 수단을 무력하게 만듭니다.

뿐만 아니라 교인들의 외적인 위로와 평강을 파괴합니다. 그러므로 간절히

여러분에게 호소합니다. 이후로는 다투지 마십시오. 베드로전서 3장 10-11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궤휼을 말하지 말고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여 이를 좇으라.”



지침-3: 신학적 오류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하십시오.

에드워즈 목사님은 여기서 <알미니안 주의>에 빠지지 말 것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아마도..짐작컨데 18 세기 당시에 청교도의 후예인 조나단

목사님으로서는 예정설을 믿고 계실테고.. 당연히 이에 반하는 알미니안

주의를 경계하는 것이 큰 일이었을 것으로 짐작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만세 전에 천국갈 사람과 지옥갈 사람을 미리 예정하셨고..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것도 천국 가기로 예정된 사람들만을

위한 것>이라는 칼빈의 예정설은 오늘날 대표적인 신학적 오류로 많은

신학자들이 경계하는 그야말로 썰이 되고 말았고.. 오늘날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복음 대신 물질과 축복과 성공을 노래하는 목사들이

강단을 점령한 상태라니..주님께서 얼마나 민망해 하실지..오호 통재라!!(싸이먼 주)



지침-4: 기도에 힘쓰십시오.

하나님은 복과 번영의 원천이시며 복 주시기를 기뻐하시는 분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여러분이 개인 기도, 가족 기도, 교회에서 공적인 기도를

쉬지 말 것과 사적인 기도 모임에도 적극 참석할 것을 권면합니다.



지침-5: 새로 부임할 목사에게 관심을 가지십시오.

마지막으로, 새로 본 교회에 부임할 목사에게 깊은 관심을 가지고

살피시기 바랍니다. 다음 두 가지를 주문하겠습니다.



첫째로, 목사가 철저하고 건전한 교리를 견지하고 있는지 살피십시오.

특히 오늘날 처럼 교리적으로 부패한 시대에는 이것이 아주 필요합니다.

그리고 교리적으로 건전한 목사를 모시기 위해서 여러분은 매우 주의 깊고

신중하게 분별해야 합니다. 저는 위험스러운 목사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저들은 부패한 신학을 견지하면서도 그것을 감추며 그렇지 않은 것처럼 위장합니다.



이들은 교인들을 속이고 자신의 신용을 유지하면서 교인들의 신임을

얻기 위해 최선을 다하며 자신의 이익을 지켜냅니다. 그러다가 기회가 오면

자신의 부패한 교리를 더욱 공개적으로 주장하며 선전합니다.



둘째로, 진지한 신앙과 불타는 경건을 소유한 목사인지 확인하십시오.

교회와 교리가 이처럼 심하게 부패한 신앙의 위기일수록 이런 목사가

필요합니다. 이와 같은 때에 젊은이들을 보호하고 세상에 나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고차원적이고 신비한 복음적인 교리와 체험적 신앙을

부정하는 오류와 편견에 맞서 싸우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참되고 경건한

목사가 필요합니다. 우리 교회에는 특별히 이런 목사가 필요합니다.



만일 여러분이 그리스도와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구원의 방법에 대해

참으로 아는 바가 전혀 없고 참된 신앙의 본질에 대해 체험적인 믿음이

전혀 없는 목사를 모시게 된다면 여러분은 목자 없는 양의 신세를 면치 못합니다.

신앙생활에서 이처럼 큰 위기는 또 없을 것입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드리고 싶은 말씀을 이제 마쳐야 하겠습니다.

저는 여러분을 떠납니다. 여러분이 잘 되기를 바라며 기도하겠습니다.

이제 저는 여러분의 영혼을 다시 하나님께 맡기려고 합니다. 여러분은

제가 특별하게 보살폈던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신실한

목회자를 보내 주시기를 간절하게 기도합니다.



우리 모두는 주님께서 심판하시는 그날에 엄숙하게 다시 만나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절대로 잊어버리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날은 오류없는

결정과 영원하고도 바뀔 수 없는 선고가 내려지는 무서운 날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항상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