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은 듣는 침묵이요 겸손한 침묵입니다- 본회퍼 "신도의 공동생활"

며칠 간 말을 하지 못했다. 성대에 염증이 생겨 말을 하고 싶어도 말이 나오지 않았다. 편도가 부어 열이 오른 것도 힘들었지만 더 힘든 것은 혹시 성대결절인가 싶어 앞으로 영영 말을 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었다. 그러면서 그동안 나의 삶은 너무 말이 많았던 게 아니었는지 돌아보게 되었다.  말과 행함이라는 두 가지만 놓고 보면 나는 말이 많아 행동하지 않는 자, 실천 없는 자 측에 속했다. 마음이 안타까우리만치 침묵을 향할 때가 누구에게나 있다. 일부러 침묵할 수는 없는 법,  자신의 침묵의 때를 기다리는 지혜가 필요한 것 같다. 본회퍼는 침묵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는 침묵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솔직하게 대면하는 것 이외에 아무 것도 기대해서는 안됩니다."(103) "그리스도인의 침묵은 듣는 침묵이요, 겸손한 침묵, 겸손 때문에 언제라도 깨어질 수 있는 침묵입니다."(102) 그리고 이런 침묵 없이 나오는 말도 가짜-말인 위선이다. 그렇다면 정말 하고 싶은 말은 계속 감금되어야 할까? 수많은 말들 속에서 우리의 말이 수다나 잡담이 아니될려면,  우리의 말은 바로 "깨어진 침묵"이어야 한다. 내 영혼아, 깨어나라. 거문고야, 수금아, 깨어나라. 내가 새벽을 깨우련다(시편 108, 1-2) 하나님을 기다리며 침묵했던 사람은 그래서 행복하다. 이런 기쁨이 있기 때문이다.

물기 없이 메말라 황폐한 땅에서 -본회퍼의 "신도의 공동생활"

아침마다 드리는 예배에 본회퍼는 시편을 권한다. 시편은 시라서 어떤 역사적 배경을 들이대는 식의 해석, 즉 이론의 틀로 보는 것보다는 시인의 고백과 기도에 집중케 한다.  시는 저절로 드러난 말이지 억지로 드러낸 말이 아니다. 아주 자연스런 성정이 그대로 드러난 말이다. 그래서 시는 과학성과 가장 멀리 떨어져 있다. 신학이든 철학이든 요즘 학문은 과학성에 지배당하고 있어서 우리는 더 메마른 세상을 사는지도 모른다.  과학성에 빠져 있는 사람들과 경쟁적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헤어지고 나면 참 허망하다. 그래서 우리는 “물기 없이 메말라 황폐한 땅에서”(시편 63, 1) 살고 있다는 것을 실감케 한다. 하이데거는 그리스도교 철학을 두고 “나무로 만든 쇠”라고 했고, 바르트는 철학과 신학의 이런 결합을 “근친상간”이라고 잘라 말했다. 바울 사도는 이런 것을 다 “배설물”로 여겼다. 키에르케고르의 비유처럼, 거미줄 하나에 매달려 허공에 떠 있는 거미와 같은 게 학문에 의지한 신앙이다. 바싹마른 낙엽 하나로 스윽 긋고 지나가기만 해도 거미줄은 걷히고 말 것이다. 시편의 시들은 우리의 속을 뒤집어 헤치는 것 같다. 본회퍼에 따르면 사람의 고난이나 아픔이나 괴로움으로부터 자유하지 못했던 “인간 예수 그리스도”는 “성도의 무리 가운데서 시편으로 기도”(58) 했다.   그래서 시편의 시들을 읽을 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기도 속으로 휘말려 들어간다(58).  시편의 시인들이 메마름과 허무를 넘어 하나님을 찬미하는 데 이르기까지 그 어떤 논리로도 자기 삶을 방어할 수 없었듯이, 하나님의 약속만을 믿고 자기의 삶을 움직인 성경의 사람들도 그러했다. 그들의 삶은 탄탄한 논리로 지탱되던 삶이 아니라, 칠흙같은 어둠 속에서 가녀린 빛줄기 하나에 오로지 의지한 삶이었다. 아브라함은 광막한 우주의 침묵, 밤하늘의 별을 보고 하나님의 약속을 읽어낸 사람이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는 허허벌판에서 시를 읽어내셨다. 본회퍼는 말한다. “나는 나의 ...

너희 마음에 동이 트고 샛별이 떠오를 때까지 어두운 곳을 비치는 등불

너희 마음에 동이 트고 샛별이 떠오를 때까지 어두운 곳을 비치는 등불 -본회퍼의 “신도의 공동생활” 1. 본회퍼의 글들은 단순하면서도 맑다. 그 비결은 성경을 중심으로 글을 자아내는 자였기 때문이다. - 요즘 나는 많이 아프다. 조금만 무리해도 담이 붙고, 감기들기 일쑤이며, 지금은 목소리마저 나지 않는다. 이전에 없던 두통이 새벽마다 들쑤시고 밤잠은 깊지 못하다. 내 자신에 대한 실망과 염려를 가득 안고 살아간다. 자신에 대한 실망이 이렇게 큰데 다른 사람들과 기쁜 만남을 유지할 수 있을까? 그런데 본회퍼의 글을 읽으면서 많은 위로를 받았다. “우리는 남에 대해서, 그리스도인 전반에 대해서 아니 우리 자신에 대해서 아주 실망하는 자리에 이르지 않으면 안됩니다.”(32) 바로 이것이  “우리의 모든 사귐의 바탕과 힘과 약속이 예수 그리스도에게만 있는 것”(37) 을 깨닫게 하는 출발점이라는 것이다. 자신에게 실망하는 사람만이 바로 자기 마음의 마당을 깨끗하게 비울 수 있고, 자신과 남에게 실망하는 자만이 “하나님의 권리주장”(25) 의 힘과 “하나님의 모든 보복을 자기 몸에 받으신 그리스도”(60) 의 위압성을 경험할 수 있다. 만나고 있는 서로에 대한 실망이 없다면, 가장 커다란 신앙의 신비를 경험할 수 없다 함이 본회퍼의 가르침이다. 실망이 있어야 모인 사람들이 저만치 물러나고 그리스도만 모임 한 가운데 설 수 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고 고백하면서도 모임에서 주가 되는 것은 자기 자신이나 다른 한 사람이 될 경우가 많다. 서로에게 뭔가를 기대하고 서로에게 뭔가를 주장하기에 그렇다. 우리는 모이면서 서로에게 실망하는 것을 먼저 배워야 한다. 사실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바리새파 같은 “깨끗한 공동체”를 원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창녀와 세리와의 만남을 통해 하나님의 신현을 보셨다. 이런 실망스런 만남을 아름다운 모임으로 만들려면 우리는 상대방에 대한 기대를 버리고, 나의 주장을 ...

Saint Patrick's Breastplate-하루를 시작하며

저는 오늘을 제 자신에게 붙잡으렵니다 성삼위일체 그 강한 이름을 그 이름의 임재를 간구하며 세 분이 한 분이요 한 분이 세 분이신 이여. 저는 오늘을 제 자신에게 붙잡으렵니다 저 하늘 별빛의 아름다움을 생명을 선사하는 저 태양의 광선을 밤하늘의 저 하얀 달빚을 저 자유로운 번개의 번쩍임을 소용돌이 치는 저 폭풍의 충격들을 저 굳건한 대지와 저 깊은 소금 바다를 모든 곳에서 옛부터 영원하신 반석이여. 저는 오늘을 제 자신에게 붙잡으렵니다 붙드시고 이끄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감찰하시는 당신의 눈을, 머무시는 당신의 힘을 저의 필요에 기울이시는 당신의 귀를 가르치시는 저의 하나님의 지혜를 인도하시는 당신의 손을, 보호하시는 당신의 방패를 저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그 말씀을 저의 안내자되는 당신의 천군을. 만유의 삼위일체이신 영원하신 성부, 성령, 말씀, 즉 구원이신 주님을 찬미하나이다 구원은 주 그리스도에게서 나오나이다.

반성 608 / 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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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성 608 김영승                        어릴 적의 어느 여름날 우연히 잡은 풍뎅이의 껍질엔 못으로 긁힌 듯한 깊은 상처의 아문 자국이 있었다 징그러워서 나는 그 풍뎅이를 놓아 주었다 나는 이제 만신창이가 된 인간 그리하여 주主는 나를 놓아 주신다 반성 740 김영승 어둠-컴컴한 골목 구멍가게 평상 위에 난짝 올라앉아 맥주를 마시는데 옛날 돈 2만원 때문에 쫓아다니며 내 따귀를 갈기던 그 할머니가 어떻게 나를 발견하고 뛰어와 내 손을 잡고 운다 머리가 홀랑 빠졌고 허리가 직각으로 굽었고...... 나도 그 손을 잡고 하염없이 울었다 .........

기도문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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主 예수여, 당신의 榮光을, 당신이 우리와 같이 그냥 사람 뿐만이 아니심을, 당신 위에는 천군 천사가 오르락 내리락 하옵시는 '萬有의 主'이심을, 맹물을 맛 있는 포도주로 바꾸시는 奇蹟을 행하심으로 나타내신 主님, 이와 같이 하늘에 계시면서 無所不在하옵신 아버지와 聖靈과 함께 聖三位 되옵신 주님께, 永遠을 時間의 한복판까지 드리우시고 거룩하신 絶對를 慈悲하신 相對까지로 내리우시며 榮光의 하늘을 罪惡 世上까지로 擴張하옵신 님의 한님되심(神敬誠敬神)의 우리 主 聖三位 하나님의 위대하신 삶을 몸소 그 苦難과 恥辱을 甘耐하심으로 이루신 주님께, 오, 갈릴리 가나 婚姻 잔치에서 저 첫 表蹟으로써 당신이 메시야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아예 밝히 드러내신 主 예수님께 이 從이 티끌 가운데 엎드리어 비옵나니 이 종에게 鐵杖權勢를 겸한 예수사랑의 生水의 강물이 넘쳐 흐르는 불 聖靈을 내리시사 주님의 존귀하옵심과 주님의 사랑스러우심과 주님의 영광과 평화를 떨치옵는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從으로서 忠誠 忠誠 또 忠誠할 수 있는 機會의 門들 또한 열어 주시옵소서. 오직 主 聖三位 하나님께 榮光, 더욱 主 聖三位 하나님께 榮光, 永遠無窮히 우리 主 聖三位 하나님께 榮光! 할렐루야, 아멘.

인간이 이렇게나 슬픈데 주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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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이렇게나 슬픈데 주여, 바다는 너무나도 파랗습니다. 人間はこのように悲しいが 海があまりにも青いです 일본 나가사키시의 소토메엔 엔도 슈샤꾸 문학관이 있고 거기에 엔도 슈샤꾸가 쓴 한구절이 새겨진 침묵의 비가 있었습니다. 글의 내용을 알고 나서 한참 바다를 보고만 있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예수님 사진을 밟고 하지만 살릴 수 있으리라 여긴 신자들이 처참하게 순교하는 모습을 보면서 가슴 밑바닥에서 끓어오르는 죽음보다 더 무서운 회의와 후회...... 그런데 속절없이 왜 그리 저  바다의 파란 빛은 아름답게만 느껴진다는 말인가 ? 많이.. 참 많이 아팠을 것 같다. TRANSLATE with x English Arabic Hebrew Polish Bulgarian Hindi Portuguese Catalan Hmong Daw Romanian Chinese Simplified Hungarian Russian Chinese Traditional Indonesian Slovak Czech Italian Slovenian Danish Japanese Spanish Dutch Klingon Swedish English Korean Thai Estonian Latvian Turkish Finnish Lithuanian Ukrainian French Malay Urdu German Maltese Vietnamese Greek Norwegian Welsh Haitian Creole Persian TRANSLATE with COPY THE URL BELOW Back EMBED THE SNIPPET BELOW IN YOUR SITE Enable collaborative features and custo...

8월의 크리스마스 중에서

8월의 크리스마스중에서       내가 어렸을 때 아이들이 모두 가버린 텅 빈 운동장에 남아 있기를 좋아했었다. 그곳에서 내 곁에 없는 어머니를 생각하고 아버지도, 그리고 나도 언젠가는 사라져버린다는 생각을 하곤 했었다.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베드로전서 1장 24절   당분간 베드로전서를 강해하겠습니다. 주일은 강해설교로, 수요일은 베드로전서를 중심한 기도회로 인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