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인적 구원 -신앙 생활 강좌
이 강의는 너무나 쉬운 통속적인 이야기가 주를 이룹니다. 그러나 그 이야기에 흐르는 일관된 생각은 수많은 고통의 질곡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우리 자신에게로 눈을 돌려서 자기 교만으로부터 해방되어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받자는 것입니다. 그것을 위해 우리 앞에 가로막고 서 있는 방해요소를 제거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생각합니다. 바울 사도로부터 받은 하늘 같은 은혜를 이 글로 만분지 일이나마 갚을 수 있기를 앙망합니다.
제가 이 강의를 개설하는 데에는 3가지 주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새사람을 입으라는 것이 첫째요, 한마음을 품자가 둘이요, 끝으로 우리의 기초인 성경으로 돌아가자가 그 셋입니다.
1. 새 사람을 입으라
(엡 4:22-24)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음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새 사람은 내 옛 성품을 벗어버리자는 뜻입니다. 우리는 상처로 얼룩진 인생입니다. 똑같은 음식이라도 옆에서 잔소리를 한다거나, 기분이 나쁜 상태에서 먹게 되면 속이 거부해져서 체하게 됩니다. 외부의 어떤 요인에 대해 우리는 상처를 내부에서부터 입게 됩니다. 이런 상처에 대해 우리가 어떻게 다루느냐가 바로 새 사람을 입는 것과 관련된다는 점 명심해 주시기 바랍니다. 정치, 경제, 문화, 예술 등 외부적인 요인 보다는 내 자신이 먼저 변해야 하며 그 변화될 것은 내 안에 있는 그 무엇입니다. 내 안에서 상처를 입게 되는 것은 내 안에서 나오는 나의 반응, 즉 성품을 통해 나타납니다. 내 안에 나타나는 나의 성품은 흔히 우리의 감정이라고 합니다. 동양에서는 이 감정을 희, 노, 애, 락, 애, 오, 욕 의 7가지로 나타냈습니다. 지금부터 생각하려 하는 것은 이런 우리의 옛 성품을 관찰하고, 이것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입니다. 관찰하지 않으면 벗어나야 할 게 무엇인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런 옛 성품의 관찰은 감정에 얽혀 있는 나를 좀 거리두고 볼 수 없다면 불가능한 것입니다. 신앙생활한다는 것은 우리가 마음 속에 미묘하게 움직이는 투기, 질투, 욕망, 소외감, 자만 등 내면에 있는 감정의 소용돌이를 직관해야 할 시점에 와 있다는 말입니다.
한 남자가 좋아하는 여인이 있는데, 그 여인에게 친절을 베푸는 또 다른 남자가 생긴 것을 보고 불쾌한 마음이 생겼다고 합시다. 이 남자는 지금 시기와 질투라는 감정이 일어났습니다. 자신이 왜 그런 감정을 지녔는지 마음의 원인을 알 수 없음은 당연합니다. 이 남자의 그 다음 감정은 자신과 그 남자를 비교하는 것입니다. 이런 모든 것이 다 감정의 소용돌이이고 이것이 상처의 원인이 됩니다. 상처는 한마디로 감정으로부터 오는 병입니다. 요즘은 전염병 못지 않게 감정으로 인한 병으로 고생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감정으로 인한 상처와 스트레스가 또한 수 많은 질병과 정신병을 일으킵니다.
우리는 평소 습관적인 감정의 상태, 즉 옛 성품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습관적인 자신의 감정 패턴을 살피면서 자신의 옛 성품을 알게 되면 곧 자연히 나로서는 해결되지 않는 내 연약성, 즉 죄성을 발견하게 되고 그것을 통해 하나님이 원하시는 새 사람을 간구하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서 내 영혼은 회복됩니다. 좋은 한약재를 다린 탕약도 아니고, 양방의 인기있는 주사기도 아니지만 침륜에 빠졌던 내 자아가 금방 회복된다면 이 무슨 꿈같은 얘기냐고 하시겠지만 그것이 바로 새 사람을 입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감정을 억제하고 감정을 극복할 수 있는 탁월한 방법을 얻게 됩니다.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저절로 마음이 맑아지고, 모든 사물의 판단이 쉬워집니다.
새 사람을 입는 것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감정, 옛 성품으로부터 자유로와지는 것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우리의 주된 감정인 분노와 욕심을 없앰으로 참으로 평강의 상태에 이르고자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중에 번민이 많으신 분, 욕심이 많으신 분, 억울한 마음이 많은 분들은 모두 우리의 감정 부터 살펴야 합니다. 그리고 나로는 어쩔 수 없는 옛 성품을 하나님 주시는 새 사람을 입어 변화된 나를 찾아야 합니다.
2. 한마음을 품으라
(빌 2:1-4) [1]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사랑에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 [2] 마음을 같이 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 마음을 품어 [3]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4] 각각 자기 일을 돌아볼 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케 하라
한 마음은 목적의식을 가진 한 마음이 아니고, 바로 새 사람을 입게 됨으로 이루어진 결과의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먼저 새 사람되어 감정 상태로부터 자유로와진 다음 한 마음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한 마음이란 깨달음의 상태, 마음을 관조할 수 있는 상태, 자기 내부의 생각이 일어남을 들여다볼 수 있는 상태 등을 말합니다. 마음의 괴로운 상태를 그대로 두고 차분히 그것을 들여다 볼 생각은 하지 않고 소위 불평만 합니다.
에덴동산이 상징하는 선악과를 따먹은 아담과 이브가 바로 지금의 여러분입니다. 걸핏하면 저것은 우리 편, 이것은 너희 편, 누구는 좋은 사람 혹은 나쁜 사람, 이건 옳고 저건 그르다는 식의 선택과 판단을 하게 됩니다. 한 마음을 갖지 못한 증거입니다. 한 남자는 아주 부자인데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없고, 한 남자는 속 깊은 대화와 나에 대한 헌신은 입지만 너무 가난하다고 할 때 우린 마음은 갈등을 일으키게 됩니다. 특히 결정하지 못하고 생각하는 시간이 길어지면 우리의 갈등을 최고조에 이르게 되고 심한 경우에는 계속 이중적인 연애를 하게 됩니다. 오직 한 마음을 갖는다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힘든 것입니다.
또 하나 우리의 마음이 분리되는 것은 미래에 되고자 하는 나와 아직 되지 못한 현재의 나 사이에서 일어납니다. 이런 분리에서 시간이란 것이 나타납니다. 심리적으로 느끼는 이런 시간이 없어져야 우리는 한 마음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곧 한 마음이란 시간을 초월한 영원한 사랑입니다. 자신의 연인이 지금은 사랑하지만 언젠가 다른 사람을 좋아할 것 때문에 그 연인을 향한 사랑이 두 마음으로 나뉘고 고민합니다. 이것도 다 시간의 문제, 그 시간을 넘어 영원한 사랑을 다짐한다면, 거기에는 오늘 말씀처럼 사랑을 가지고 한 마음을 품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이것이 바로 한 마음입니다.
한 마음이란 시간에서 벗어나는 것이며, 현재의 나와, 되고자 하는 미래의 나와의 노력을 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에 입문하는 여러분은 내가 장차 뭐가 되겠다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3. 성경으로 돌아가라
(딤후 3:16-17)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을 부정하는 어떤 사람이 목사님에게 "하나님이 눈에 보입니까? 그 존재를 설명해 주시지오" 하자 목사님이 말하기를 당신은 남편을 사랑합니까?"라고 물었습니다. "물론 사랑하지요" "그렇다면 그 사랑하는 마음을 어디 좀 내 놔 보시지오" 그 때 그 부인은 크게 느끼고 교회생활을 열심히 했습니다. 진정한 교회는 세상에서 영속한다는 생각이 종교개혁자들의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교회의 유지 보존은 성경 말씀이 주는 재생의 능력 때문입니다. 성경 때문에 하나님의 계속적 창조(creatio continua)가 있으며, 성경이 없으면 교회는 즉시 소멸되고 말 것입니다.
신앙의 기본 요건은 무조건 믿어야 합니다. 많은 신자들이 간증이나 찬양만 좋아합니다. 그리고 성경은 몇 자 보지 않고서 지루하다고 던져 버리고 맙니다. 성경의 진리가 그 정도에서 드러난다면, 왜 진정한 목사님들이 평생을 히브리어다, 그리스어다, 라틴어다 원어 공부를 하겠습니까? 심지어 교묘한 말로 사람을 현혹케 하는 거짓 교사들도 기도원에서 10년 입산수도 한다는데, 왜 우리는 성경 붙들고 10년이라도 묵상하는 사람이 없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진리가 어디에 기록되어 있습니까? 성경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성경으로 돌아가자는 이야기는 전체성, 상대성, 무상성, 무아성을 발견하자는 이야기입니다.
성경 66권, 1198장을 골고루 묵상할 때, 우리는 분리가 없고 시간성도 없는 하나님의 뜻을 품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으로 돌아가자는 것은 하나님의 온전한 전체의 뜻을 깨닫자는 말입니다. 선별해서 읽지 말고 전체를 사랑하십시오.
이 세상 학문은 유물에 속하든 유심에 속하든 너무나도 많이 파헤쳐져서 전체를 보지 못하게 합니다. 문학, 역사, 철학, 물리, 음악, 그 어느 하나만 논한 것은 그저 이론에 불과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온전하신 전체 뜻을 품고 있습니다.
그리이스의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는 "사람이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다"라는 유명한 말을 했습니다. 우리 내장에 흐르는 피는 더 이상 작년의 그 피가 아닙니다. 여러분의 피부는 더 이상 아기의 피부가 아닙니다. 시시각각 변하고 있습니다. 다만 우리들의 고정관념과 기억만 변하지 않고 있습니다. 솔로몬은 깨닫고 나서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다’라고 갈파했습니다. 모든 것은 무상하여 영원한 것이 없다는 탁월한 진리만이 영원한 진리라 여긴 것입니다. 전체성, 상대성, 무상성에 대한 탁월한 인식을 우리는 성경을 가지고 깨닫게 됩니다.
사람의 취향도 변하고 사회도 변하고 우주도 변합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열심히 관찰해야 할 것이 우리의 마음상태가 변하는 것을 끝까지 놓치지 않는 것입니다. 예민하고 날카롭게 깨어 있어야 합니다. 이를 통해 얻게 된 인간이란 존재의 무상성과 상대성을 성경을 통해서 공부하게 되면 하나님의 은혜는 엄청난 것임을 비로소 알게 됩니다.
성경이 주는 의미 중에는 전체성, 상대성, 무상성 다음으로 무아성이 있습니다. 즐거움 중에서도 최고의 즐거움은 무아의 즐거움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육체적인 무아가 아니라, 내가 없는, 즉 나의 실체가 죽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2장 20절 말씀에,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성경을 열심히 상고하십시오. 좋은 설교 많이 듣다보니 성경 자체를 등한히 하고 부정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성경을 부정하는 것은 곧 내가 나를 부정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으로 돌아가자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제가 드린 말씀을 요약하겠습니다. 새사람이 되어서 옛 성품으로부터 자유스럽고 한 마음을 품어 시시각으로 변하는 나의 마음을 읽을 줄 알아 영원한 사랑을 하고 성경으로 귀의하여 참된 신자가 되자는 것입니다.
자! 이제 이 세 가지 명분을 가슴에 새기고 신자의 삶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