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지성 속에서 일어나는 신앙의 침륜

빌 4:6-7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골 2:3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느니라 사 11:2 그의 위에 여호와의 영 곧 지혜와 총명의 영이요 모략과 재능의 영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 강림하시리니 신앙의 침륜은 우리의 머리와 가슴, 배에서 일어납니다. 우리가 어떤 위험한 일을 만날 때 미리 알고 대비하면 그렇게 멀리 굴러 떨어지지 않지만, 알지도 못하고 대비하지도 못하여 굴러 떨어진 다음에는 회복하기가 상당히 어렵습니다. 왜 그런 나락에 빠지게 되었는지를 세밀하게 알아야 합니다. 우선 우리의 머리, 즉 지성 속에서 일어나는 신앙의 침륜을 살펴 보겠습니다. 지성이란 무엇입니까? 우리의 영혼에는 높은 기능과 낮은 기능이 있습니다. 영혼의 낮은 기능이란 동물과 비슷한 기능입니다. 영혼이 없는 동물들은 육체 속에 종족보존의 본능, 생명유지의 본능을 지닙니다. 영혼을 지닌 인간도 그런 본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인간은 육신을 움직이고 감각을 통해 욕망을 느끼는 것이 육신에 속한 것이 아니라 영혼이 있기 때문에 육신과 결합해서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동물과 똑같은 기능이라도 인간은 영혼으로 하는 기능입니다. 이것이 바로 영혼의 낮은 기능입니다. 하지만 이것 때문에 인간이 존귀한 것은 아닙니다. 인간이 존귀한 이유는 영혼의 높은 기능 때문입니다. 이 기능이란 하나님을 알 수 있는 정신적 기능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이런 영혼의 높은 기능을 아예 지성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지성이라는 것은 무엇인가를 알고 이해할수 있는 지적 능력입니다. 이 능력을 가지고 영혼 안에서 사랑하고 미워하는 수많은 정들이 생깁니다. 이 능력으로 사물도 보고 하나님을 알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어떤 사실들을 판단하는데 이것을 성경에서는 총명이라는 말로 표현합니다. 산 너머에서 연기가 나면 연기를 보면서 불이 난 줄 알게 됩니다. 하지만 내 바로 앞에서 불이 나면 더 이상 불을 추론할 필요없이 불이 있다는 것을 압니다. 즉 총명이 많을수록 추론을 통해 알 수 없는 많은 일들을 깨닫게 됩니다. 천지창조는 설득이나 추론으로 아는 것이 아닙니다. 논리적으로 알 수는 없지만 우리 마음에 그냥 아는 것입니다. 이해하려고 해도 이해할 수 없는 것이 기독교 진리의 핵심입니다. 천지창조, 우리가 죄인이라는 사실,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 부활, 예수님의 내주, 재림은 논리로 설명될 수 없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이런 총명이 은혜를 많이 받으면 받을수록 더 분명해진다는 것입니다. 은혜가 충만하면 성경을 펼칠 때마다 즉시 하나님의 말씀이 착착 깨달아집니다. 마음 중심으로 이해되면서 아멘 하게 됩니다. 은혜가 충만할 때 우리의 모든 관심이 이렇게 영적이고 진리에 속한 것, 하나님의 아름다움에 끌리게 됩니다. 여자가 자매로 바뀌고, 남자가 형제로 바뀝니다. 매일매일 말씀이 깨달아져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됩니다. 진정 "세상과 나는 간 곳 없고 구속한 주만 보이도다"가 됩니다. 즉 은혜 받으면 총명의 상태가 뛰어나게 되고 하나님의 진리가 이해되는 것입니다. 이럴 때 이세상의 감각적인 것에 대한 관심이 사라지게 됩니다. 자신의 모든 에너지를 하나님의 영적인 것을 위해 사용합니다. 하지만 은혜가 식으면, 총명이 흐려지기 시작합니다. 성경을 읽긴 읽지만 가슴에 다가오지 않습니다. 감격적으로 느껴지지 않습니다. 또한 은혜가 사라지면, 세상의 감각적인 것에 대해서 아주 또렷해지게 됩니다. 은혜가 식을수록 우리 지성에는 하나님의 진리가 적게 새겨지고 세상의 욕망이 크게 새겨지고 세상의 욕망이 출렁거림으로 신앙의 침륜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지성에 하나님의 진리가 있을 때, 즉 총명할 때 우리는 성경에 얼굴을 파묻고, 찬송가에 눈물 흘리게 됩니다. 하지만 이런 신자도 침륜이 시작되면서 세상 쾌락에 더 끌리게 됩니다. 하지만 여기까지의 변화는 신자의 외면에는 드러나지 않습니다. 그저 지성이라는 스크린에 세상이라는 영상만 바뀐 것입니다. 교회는 나와 예배는 계속 드리고, 봉사 생활 계속하고, 십일조 생활 계속합니다. 이때 드디어 지성이 속게 되고 신앙의 침륜이 본격적으로 시동을 걸게 됩니다. 이때 방치하면 큰 죄에 빠지게 됩니다. 죄는 끊임없이 우리를 속이거나 감춥니다.어떤 원인이 있으면 결과가 있기 마련입니다. 선악과를 따먹으면 죽음이 있습니다. 그런데 사단은 따먹으면 눈이 밝아져 하나님처럼 된다고 하고, 정녕 죽지 않는다고 합니다. 죄는 이런 원인과 결과의 관계를 속이거나 감춥니다. 또한 죄는 강제하는 힘이 있습니다. 우리를 밀어붙입니다. 세상 쾌락이 한번 들어오면 자신을 포기하고 그 쾌락을 맛보도록 강제합니다. 충동거리는 감정을 통해 죄는 양육되게 됩니다. 지성을 지배하여 하나님으로부터 물러나게 합니다. 겉모양이 하나도 변하지 않은 가운데 이런 일들이 일어납니다. 사단은 지성을 공격하는 것입니다. 지성의 기능은 영적 기능입니다. 지성은 감정을 낳고 곧 행동을 하게 합니다. 육욕의 충동이 일어나게 됩니다. 신자가 침륜에 빠질 때 진리의 영향을 받는 지성의 기능이 망가집니다. 저도 오랜 실패 끝에 깨달은 것입니다. 신앙의 침륜은 지성의 미끄러짐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지성의 미끄러지면 우선 영적인 일에 대한 주의력이 떨어집니다. 우리 영혼이 건강하고 총명할 때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정확한 분별을 하게 됩니다. 사실 아무나 와서 어떤 얘기해도 은혜 받는 사람들은 가짜입니다. 참된 은혜는 그런 것 아닙니다. 영적 분별력이 생깁니다. 또한 자신의 마음의 상태를 살피는 데에는 부주의하지 않습니다. 존 오웬 목사님은 "자신의 주위 환경과 환경에 반응하는 나 자신에 대해 깨어 있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내가 가진 이런 마음이 하나님을 기쁘게할까 고민하면서 하루의 삶을 많이 반성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진지하게 기도하면서 자신을 고쳐나갑니다.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은 주의깊음과 삼가함으로 나타납니다. 하나님을 최고로 모시고 싶은 소망이 생깁니다. 하나님께 나의 이런 행동이 합당할까 끊임없이 생각합니다. "늘 울어도 눈물로써 못 갚을 줄 알아 몸 밖에 드릴 것 없어 이 몸 바칩니다" 매일 고백하게 됩니다. 또한 지성이 미끄러지면 영적 의무에 대해 분발하지 않습니다. 제가 하나님을 위해 무엇을 할까요? 나는 올바로 믿고 있나요? 늘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의 영적 의무를 일깨우는 놀라운 힘이 있습니다. 지성이 미끄러지면 영적 전투를 힘없이 하게 됩니다. 마지 못해서 힘겹게 싸우게 됩니다. 옆에서 간구하시는 성령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외로워지고 주변의 일들에 미끄러지듯 자신을 방치하게 됩니다. 죄는 원대한 계획이 있습니다. 한번 은혜 못받게 하는 게 아니라 완전히 하나님을 대적하게끔 합니다. 구원을 취소할 수는 없지만, 진리를 싫어하고 원망하고 증오하는 삶을 살도록 합니다. 자신의 영혼을 찌르는 삶을 살도록 합니다. 고통 속에서 나오지 못하고 살게 만들어 버립니다. 우선 자신의 영혼의 처음 상태를 살피고 지성의 기능들이 속지 않고 제대로 기능하는지 살펴야 합니다. 혼란스런 미끄러짐이 우리의 총명을 막으면, 진리와 함께 기뻐하던 일이 사라지면서 우리는 더욱 신속하게 미끄러지게 됩니다. 온 맘 다해 우리의 총명, 하나님의 말씀을 기뻐하고 기도하고 찬송하기를 좋아하는 상태를 유지하려고 해야 합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지성 상태를 점검해 보십시오. 무릇 지킬 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根源)이 이에서 남이니라 (잠언 4: 23)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