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감성 속에서 일어나는 신앙의 침륜
우리는 보통 은혜를 많이 받으면 이런 상태가 오래 계속 될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신앙이 단번에 견고케 되도록 하지 않으시고, 견고케 되도록 붙들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 의지하지 않으면 영적 견고함은 유지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영적 성숙도 없도록 창조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자신을 의지하는 신자들을 기뻐하십니다. 신자는 끊임없이 하나님을 의지하고 말씀과 성령에 붙들린 가운데서만 견고하게 됩니다. 이런 하나님의 은혜가 큰 은혜입니다. 우리는 중생하여 이미 구원받은 자이지만, 하나님은 그것만으로 넉넉히 살 수 있도록 인간을 만드신 것이 아닙니다. 불신자보다 신자의 경우에 더더욱 하나님 의지하도록 만드셨습니다. 불신자는 영혼이 죽은 자입니다. 그땐 하나님이 갈급하지도 않습니다. 인간이라 본성적으로 양심의 가책은 있지만 영적 갈급함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구원 받은 이후로는 수시로 갈급함을 느낍니다. 신자는 하나님의 은혜 없인 살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신자가 만약 하나님 없이 기쁘게 산다면 그것이 제일 위험한 것입니다. 우리는 약한 그릇입니다. 주님의 손에 잠시라도 붙들리지 않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우리들이 신자임에도 불구하고 신앙의 깊은 침륜에 빠지게 되는데, 그 시작은 지성에서부터입니다. 우리가 죄를 지을 때, 행동으로 범죄하기 이전에 지성에서부터 점차 미끄러지면서 죄를 향한 준비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배 시간에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졸고 태만하고 정신집중하지 않는 것은 이미 지성이 미끄러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지성이 맑고 총명해야 침륜에 빠지지 않게 됩니다. 사단은 끊임없이 우리의 생각을 공격합니다. 하지만 이것을 감지하는 신자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죄를 행동으로 옮기기 전부터 조심해야 합니다. 신자는 총명함을 통해 지성으로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보면서 자신의 진실한 삶을 위해 끊임없이 몸부림치게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6개월만 이런 총명이 흐려져서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오지 않으면 악한 본성이 드러납니다. 자신의 본성이 바닥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이 흔적이 얼굴에 나타납니다. 우리는 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 하루 중 정신이 제일 맑을 때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특히 신자의 기도의 제목은 성경 읽을 때 진리의 말씀이 깨달아지게 해달라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말씀이 마음 속에 들어와 요동치고 우리의 삶이 바뀌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이런 일이 몇 일만 계속되지 않으면 지성 차원에서 침륜이 일어나고 있음을 감지해야 합니다.
죄는 지성을 혼란시켜 말씀을 깨닫지 못하게 한 다음, 다음 단계로 넘어갑니다. 바로 우리의 감성에서 침륜에 빠지게 하는 것입니다. 감성이란 감정을 느끼는 능력입니다. 그런데 이런 감성은 곧바로 우리의 행동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죄가 침투해 들어오는데 있어서는 처음 공격이 지성에 이르지만, 행동을 만드는 것은 감성에 더 큰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머리로는 하면 안되는 줄 알면서 감정 때문에 행동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누구랑 싸울 때 이 말 하면 안되지 하면서도 욕을 터뜨리는 이유는 그것 때문입니다. 존 오웬 목사님에 따르면, 감정은 배의 키와 같다고 합니다. 감정의 방향이 삶의 방향과 일치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감성을 하나님 앞에 바르게 갖는 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성경에서는 감정을 마음이라고 표현합니다. 마음이란, 위로는 영혼과 만나고 아래로는 육체와 만납니다. 마음은 곧 영혼이 육체와 만나는 지점에서 생기는 작용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는 마음을 통해 영혼에 영향을 미치거나 육체에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은혜는 우리의 마음을 통해 들어와서 역사합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사람들이 여행하고자 좋은 땅을 탐구하지만, 진정 여행하여야 할 땅은 우리의 마음"이라고 했습니다.
육신의 감각으로는 풀이나 꽃을 봅니다. 이 때 감정이 일어납니다. 그러나 육신의 도움 받지 않고도 들어오는 것이 바로 진리에 대한 감각입니다. 그런데 같은 새소리라도 마음의 상태에 따라 다르게 느껴집니다. 마음이 피곤할 때의 새소리는 소란함이고, 외로울 때의 새소리는 구슬픔이고, 사랑하는 사람과 있을 때의 새소리는 즐거운 노래소리로 들립니다. 진리에 대한 감각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마음 상태가 어떠한가가 중요합니다. 봄비는 새싹을 살리기도 하지만 썩은 고목은 계속 썩게 할 뿐입니다. 여러분의 진리에 대한 마음 상태는 어떻습니까? 이 마음 상태는 친구들과 재미나게 놀 때 드러나는 게 아닙니다. 진리의 말씀 앞에 섰을 때 나타납니다. 말씀을 배척하는 마음이 확 복받칩니까? 마음에 이미 침륜이 시작된 것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은혜는 이런 마음을 바꾸게 만드십니다. 이것이 아주 신비로운 작용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마음에 역사하십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진리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보기에 적합하도록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령의 역사입니다. 은혜 받기 위해서 필수 요소가 바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주님 위해 살아야지 하는 감정이 일어난다 하더라도 진리를 좋아하지 않으면 그 감동은 성령의 감동이 아닙니다. 아무거나 은혜인줄 알면 안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라도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가짜 영성은 찬양할 때 펑펑 울고, 말씀 시간에 졸고, 기도시간에 다시 열렬해지는 사람입니다. 참된 하나님의 은혜는 진리를 좋아하는 감정의 변화를 가져옵니다. 인간의 측은지심에서 나오는 눈물도 성령의 역사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를 바꾸어 놓아 감성의 변화를 일으킵니다. 그 은혜가 마음을 출렁이게 만듭니다. 잔잔한 물결은 돌멩이가 떨어져야만 출렁입니다. 여기서 물결은 우리의 마음, 돌멩이가 지식, 출렁거림 자체가 우리의 감성입니다. 하나님의 지식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죄를 미워하는 출렁거림이 일어나게 합니다. 이것이 바로 경건한 감정의 시작입니다. 그 속에서 자기 깨어짐이 있고, 회개가 있고, 눈물이 있습니다. 이에 반해서 죄도 이런 식으로 반응합니다. 우리의 영혼이 총명하지 못하도록 만든 죄는 우리의 감정 상태를 지배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 마음의 표현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전달하는 책이 하나님의 말씀, 곧 성경입니다. 성경을 보면서 하나님의 마음을 읽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앎이 하나님의 마음을 전달하는데, 하나님의 말씀 없이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 수 없습니다. 말씀을 사랑하면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은혜로운 정서를 알게 됩니다. "늘 울어도 눈물로써 못 갚을 줄 알아 몸 밖에 드릴 것 없어 이 몸이 바칩니다." 찬송 1절만 불러도 눈물이 확 솟아집니다. 누군가 잘못됨을 보면서 마음이 찢어지도록 아픕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이 승리할 때 기뻐하고 싶은 마음이 생깁니다. 교회 생활의 실패는 이런 게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계속 되면 아름다운 신앙생활이 사라집니다.
“주님의 뜻대로 나 평생 살리라” 이런 마음이 생기더라도 마음에서 정욕이 생기면 뛰쳐 나가서 죄 짓고 싶은 충동을 확 느낍니다. 죄의 능력이 훨씬 강하게 느껴집니다. 하지만 아우구스티누스의 말처럼 죄란 은혜의 결핍으로서,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죄가 방해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죄를 짓을 때 하나님이 물러나시고, 죄 지으려는 의도가 들어가 있는 것입니다. “뭇 사람의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이시여” 생각 속에 죄가 들어오는 것을 하나님은 아십니다. 하나님은 그 때 은혜를 거두십니다. 죄가 은혜를 파괴하고 망가뜨리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주권적인 권세로 은혜를 거두십니다. 그때 우리의 총명도 거두십니다. 우리의 본 바탕은 하나님을 대적하고 싶어하고 하나님의 진리를 거부하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자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은 사실 우리의 본성이 아니라 은혜의 효과입니다. 하나님이 그 은혜를 거두시면 인간의 자연적인 본성이 드러납니다.
그렇게 되면 세상의 욕심과 정욕에 대해서는 출렁거리게 되면서, 생각과 마음이 하나가 돼서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멀어집니다. 그래서 그렇게 말씀을 사랑하고 기뻐하던 사람들이 멀어지게 됩니다. 말씀으로부터 멀어지니까 변하지 않고 점점 강팍하게 됩니다. 처음에는 말씀이 새록새록 다가오다가, 다음에는 그냥 읽다가 다음에는 그냥 덮어 놓게 됩니다. 침륜의 길은 같습니다. 미끄러지는 사람들이 가는 길이 이 길입니다. 다 똑같습니다. 거의 모두 빠지는 길입니다.
하나님을 깊이 만나고 복음을 경험한 이후 고민은 내가 나인것이 죄송하고 내가 이렇게 밖에 못사는 것이 죄송할 따름입니다. 하나님 앞에 자신을 다 드리고 싶은 마음이 생깁니다. 우리가 거룩한 정서로 가득하면 거룩한 생활이 쉬워집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실 때 거룩한 의무가 기쁨이 됩니다. 아우구스티누스가 이런 회개를 했다고 합니다.“내가 이전에 찬송했는데, 가락에 취해서 가사를 잊어었다면 저를 용서해 주십시오”찬양은 우리의 감정만 움직이면 안됩니다. 반드시 인식이 들어와야 합니다. 지성으로 깨닫고 깨달음이 마음의 정서와 만나야 합니다. 이게 거룩한 감성이고 은혜입니다. 이것은 거룩한 말씀만으로 가능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지성에 영향을 미치고, 마음으로 회개하고, 새출발하는 작용이 계속 일어나야 합니다. 마음만 불이 붙이면 안됩니다. 말씀이 지성에 들어가야 합니다.
생각이 미혹되는 상태에서는 감정이 뒤엉키게 됩니다. 욕망, 정욕, 불순종이 섞여 나타나게 됩니다. 혼란이 일어나는 것은 이미 넘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마음에서 떠돌아다니는 것이 정욕입니다. 이것은 욕심이자 자기를 주인으로 해서 살려는 모든 욕망입니다. 우리의 세상 정욕 때문에 대신 돌아가신 분이 예수님입니다. 은혜가 물러나가고 자기가 주인돼서 살려고 하는 욕망이 떠돌아 다닐 때 이것이 삶 속에서 갖가지 모습에서 나타나는데, 이게 자신을 주인 삼은 삶입니다. 이렇게 될 때, 영적인 것, 진리에 관한 것, 하나님에 대한 것에 대한 끌림이 사라지고 좋아하지도 않게 됩니다.
하지만 은혜를 많이 받으면 세상의 욕심이 사라지게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살려고 하면서 하나님 잘 믿는 것을 1순위로 둡니다. 이런 은혜가 우리의 감성에 머물도록 우리는 말씀과 기도에 전념해야만 합니다.
로마서 8장 6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