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륜에 빠진 영혼의 성장
벧후 3:18 -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라
가스차 언덕 잘 올라가지 않습니다. 가스차는 언덕 올라갈 때 기를 써서라도 올라가야 합니다. 올라가다 시동이라도 꺼지면 낭패를 겪게 됩니다. 신앙이란 스톱이 있어서는 안됩니다. 예수님을 "이전보다 더욱 사랑"해야 합니다. 신앙의 저 높은 정상을 향해 "날마다 나아" 가야 합니다. 신앙의 시동 꺼지면 안됩니다. 힘겹게 올라가도 계속 올라가면 문제 없습니다. 하지만 이런 신앙이 멈추면 거기서 문제가 생깁니다. 불에 시벌겋게 달군 쇠가 한번 식으면 더 단단해지듯, 신앙이 식기 시작하면 더 강팍해집니다. 성화의 길에는 휴게소가 없습니다. 말씀의 스위치, 기도의 스위치 꺼지면 제자리에 가만 있는 것 아닙니다. 그 순간에 미끄럼 타게 됩니다. 침륜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 미끄러지는 차는 뒤에 있는 크고 작은 차들을 박으면서 아래로 물러납니다. 여러분 모두 신앙이 성장하기를 원합니다. 어린이가 쭈쭈바 사달라고 하면 귀엽습니다. 하지만 40세 된 사람이 그러면 소름끼칩니다. 성장없는 신앙인이 바로 그 모습입니다.
1. 영적 성장의 토대
영적 성장의 토대는 중생과 회심에서 시작합니다. 영적으로 살아나는 게 중생이고, 살아난 영혼이 꿈틀거리는 게 회심입니다. 회심한 영혼이 변화되게 됩니다. 영혼이 거듭날 때 영혼의 기능과 관련해서 중요한 변화가 일어납니다.
하나는 인식 능력의 변화입니다. 예전에는 영적인 것들을 거의 보지 못했습니다. 다섯가지 감각을 통한 것만 인식하다가 변화가 나타나는데, 새로운 감각, 즉 영혼의 감각, 지성의 감각이 생기는 것입니다. 중생한 다음에는 하나님이 얼마나 아름다운 분이가 하는 것이 보입니다. New sense가 주어지는 것입니다. 놀라운 아름다움을 발견하면서 그것을 볼 수 있는 능력을 주어진 것입니다. 이 때 예전에 보던 것만 가지고는 만족하지 않게 됩니다.
또 하나의 변화는 의지 능력의 변화이다. 사랑 성향의 변화인 것입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면서 그 분이 십자가에 못 박힌 게 나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힌 게 내가 가장 사랑하던 나였기에, 나를 믿을 수 없는 것 만큼 “나를 사랑하사 자기 몸 버리신 예수 위해” 살게 됩니다. 예수님을 믿고 자기 자신을 부인하게 됩니다. 이런 놀라운 변화를 주시는 것입니다. 이 사랑이 바로 의지의 변화인 것입니다. 베드로는 그러므로 너희는 그리스도를 아는 은혜와 지식 안에서 성장하여 가라, 고 합니다. 그 은혜의 증거가 바로 사랑입니다. 주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의 큰 특징은 예전보다 주님을 더 사랑하는 것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은혜에 대해 정의하길, "은혜는 인간으로 하여금 마땅히 행하여야할 의무를 행할 수 있도록 선한 의지를 불러일으키시는 하나님 사랑의 감화"라고 합니다. 의지의 힘을 주는 것이 은혜인데, 강압이나 폭력이 아니라 사랑의 감화를 불러 일으키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랑하게 되면 어떤 어려움도 이겨나가지 않습니까?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과 사랑에서 성장하는 것이 성화요, 영적 성숙이며, 흔들리던 삶이 예수님 사랑을 목적으로 계속 나아가게 됩니다.
2. 영적 성장의 핵심
마음이 출렁거리는 감동은 행동을 하게 하는 계기가 됩니다. 그런데 마음의 출렁거림(정동)과 사물을 보는 인식은 나누어지지 않습니다. 불순종하고 악을 행하여 미끄러진다는 것은 우리의 생각, 감정, 의지가 미끄러졌기 때문입니다. 뒤로 물러가서 은혜가 식은 가운데 불순종의 삶을 산다면, 정동이 있긴 있지만 세상적인 정동, 즉 물질과 명예욕이 출렁거리기 때문입니다. 이런 세상적 출렁거림이 불순종하기에 적합한 의지를 만들게 합니다. 불순종은 의지의 약함 때문입니다. 은혜의 출렁거림이 많이 일어나면 우리의 의지의 힘이 선한 쪽으로 움직이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의 마음은 내 명령대로 따르지 않습니다. 마음에 명령해도 그 명령 듣지 않습니다. 조용히 고요하게 있는 물을 출렁거리게 하려면 돌을 던져야 합니다. 그 돌이 바로 하나님의 아름다움에 대한 인식입니다. "아~ 그래서 나같은 죄인을 위해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셨구나...아멘." 하나님의 아름다움은 하나님의 속성과 그 속성이 시행되는 방식때문입니다. 자기의 죄를 용서해 주시는 과정을 통해 하나님의 속성이 시행되는 방식을 알게 되고 이게 머리 속에 들어올 때 돌과 같은 역할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세상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순결한 예수 더 아름다와~" 그러면서 주님을 붙들고 싶은 마음이 생깁니다. 이런 인식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만 들어옵니다. 말씀의 인식과 은혜의 출렁거림이 반복되면서 우리의 영적인 성장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말씀을 들으면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 줄 알게 됩니다.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깨달으면서 마음 속에서 정동이 일어납니다. 회심한 지 얼마 안됐지만, 이렇게 될 때 신앙이 성장합니다. 신앙생활은 연륜으로 하는게 아닙니다. 신앙은 골동품이나 고목이 아닙니다. 죽은 나무는 세월 흐르면 썩어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없으면 신앙 성장이 안되는 것입니다. 올라가다 시동 꺼지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은혜는 의무에 대한 감각을 일깨워줍니다. 오늘 예수를 믿고 회심하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깨달은 지식을 가지고 그렇게 은혜를 받은 사람들은 인식과 정동이 있으면 실천하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남녀가 뜨겁게 사랑하게 될 때 그렇게 선물을 주고 싶어합니다. 선물 받는 것도 좋지만 선물 주면서 더 즐거워 합니다. 그게 진정한 사랑입니다. 우리가 거룩한 의무를 실천하지 않는 것은 훈련이 안된 게 아니라 은혜가 모자란 것입니다. 신앙성숙한 사람에게 있어서 너무 괴로운 건 다 드리고 싶은 데 드릴게 없는 것입니다. "몸 밖에 드릴 것 없어 이 몸 바칩니다."
그런데 우리가 신앙의 의무를 실천할 때 조심할 것이 있습니다. 기독교에 대한 체계가 없으면 필(feel)이 꽂히는 쪽으로 가게 됩니다. 몸에 좋다는 거 아무거나 듣고 먹으면 안됩니다. 모든 그리스도의 삶은 체계성에 기초해서 삶에 나타나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통해 성경 안에서 삶의 지식을 얻어야 합니다. 그렇게 체계화 됐을 때 흔들리지 않는 든든한 사람이 됩니다. 이세상의 풍파에 대해 요동하지 않는 게 중요합니다. 그래서 신앙 교리의 체계 튼튼하게 배워야 합니다. 건전하고 깊이 있는 신앙의 교리들을 배워야 합니다. 이런 일들을 위해 분투하는 신학자들을 존경하고 도와야 합니다. 탄탄한 교리의 체계가 있고 우리는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근거를 자신있게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제 다시 한번 영혼의 성장하는 비결을 말씀드립니다.
행 6:4 - 우리는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힘쓰리라
첫째, 말씀을 숙고하십시오.
광야에서 굶주리다가 만나 먹고 그렇게 좋아하던 사람들이 애굽의 고기를 생각하면 안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처럼 하나님이 친히 먹이신 백성들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고기 먹고 싶다고 울면 안됩니다. 그렇게 은혜 받으면서 어린이처럼 기뻐하던 사람들이 세상의 것 생각하면 안됩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아름다움에 대한 진수입니다. 성경을 펼치면 하나님이 어떤 성품을 가지신 분인지에 대한 정보가 가득 합니다. 성경의 돌을 내 마음의 호수에 던져야 합니다. 하나님 이런 분이시구나, 아멘, 아멘, 성경은 하나님 아름다움의 진수입니다. 이 진수의 핵심이 있습니다. 그 진수 중의 핵심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아름다움의 극치가 예수님이십니다. 아무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경을 주셨지만, 성경을 통해서 주신 말씀은 눈에 보이는 게 아닙니다. 구약의 성도들도 하나님을 많이 알았지만 기록된 성경을 통해 알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 아름다우신 분이니 이 율법은 얼마나 아름다운 것이고 특권이구나. 예수님은 자신이 하나님의 성품을 그대로 가지고 오셔서 시시때때로 보여주셔서 보게 해주셨습니다. 바리새인을 엄중하게 꾸짖으면서 거룩성을, 죄인 용서하심을 보이면서 자비를, 진리의 말씀을 가르치시는 그 인자한 가르치심을 통해서 하나님의 진실하심을 발견하도록 하십니다. 죄는 우리가 지었는데, 우리의 비참한 삶을 차마 보실 수 없어서 십자가에 친히 돌아가심을 두 눈으로 보게 하셨습니다. 성경을 통해서 그리스도를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보게 되고 정동이 일어나게 됩니다. 성경을 깊이 사랑하고 성경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핵심이신 그리스도를 매일 매일 만나야 합니다. “내 영혼 날마다 주를 만나 신령한 말씀 늘 배우도다” 우리 주님 십자가에 대한 배움이 있어야 합니다. 눈물 흘리며 임종을 맞이한다면 얼마나 기쁘겠습니까? 성경을 읽으면서 아름다움의 극치이신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이러면서 마음이 출렁거리게 됩니다. 세상의 욕심이 헛된 줄 알고 버리게 됩니다.
둘째, 기도를 실천하십시오.
은혜 생활할 때는 언어가 쏟아집니다. 이게 기도인데, 이것이 없으면 하나님 사랑의 정동이 사라진 것입니다. 기도가 안되면 말씀을 읽어야 합니다. 마음을 말씀으로 출렁거리면 언어가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거기에서 간절함이 나옵니다. 우리가 펌프질할 때, 녹물이 올라와도 펌프질 계속하면 맑은 물이 나오게 됩니다. 간절한 기도는 그릇된 것을 토하게 만듭니다. 일시적인 간절함이 아니라 지속성이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될 때 기도는 마음에 변화를 일으키게 만듭니다. 투쟁이 영혼의 싫증과 육체의 게으름을 이기고 분투하면서 걸어가게 하는 것입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있으리오'라고 하면서 늘 충만한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 있기를 바랍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