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듭남 이후 겪게 되는 혼란

우리는 예수님을 믿고 거듭났지만 죄의 지배 속으로 들어가기도 합니다. 그리고 정말 간절히, 가슴을 찢듯이 회개했는데도 하나님이 나의 죄를 용서했다는 확신이 오지 않아 죽을 것 같은 시기가 있습니다. 이럴 때 우리는 혼란을 겪게 됩니다. 오늘은 이 문제를 주의 깊게 살펴 보겠습니다. 신자가 회심 이후 죄의 지배에 들어가면 영혼이 너무 곤고해서 기도하다 보니까 자신의 죄가 드러나게 됩니다. 자신도 도저히 어쩔 수 없는 죄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고 났는데도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 주님이 나와 동행하심에 대한 행복이 느껴지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회개를 진지하게 했는데도 왜 하나님의 큰 은혜의 관계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일까 하는 혼란이 생기게 됩니다. 이게 첫번째 혼란입니다. 예전에 첫 회심을 할 때는 죄악의 길에서 돌이키는 게 쉬어서 세상의 것을 다 끊어버릴 수 있었습니다. 바울도 그랬습니다. 과거 자기의 모든 것들, 자부심을 느꼈던 것들을 다 버렸습니다. 거듭남과 함께 신자들은 모든 것들을 버렸습니다.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다는 것이 회심 즉시 가슴에 비수처럼 꽂혔습니다. 세상도 없고 나도 없고 예수님 밖에 없다고 고백하면서 다른 모든 것들을 버렸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예수님 믿어도 우리는 죄의 지배 속에 들어가게 됩니다. 진실되게 믿으려고 회개해도 옛날처럼 삶을 돌이킬 수가 없습니다. 단칼에 세상 것 버리고 돌이키지 못하게 됩니다. 왜 그럴까요? 이 차이는 무엇인가요? 죄의 강력한 힘을 느끼게 된다. 이게 두 번째 혼란입니다. 회개하면 하나님이 곧 바로 용서해주신다는 사실, 그것이 내 마음 속에 놀랍게 믿어졌었습니다. 주홍 같이 붉고 진홍 같이 새빨간 죄인이었는데, 하나님이 회심을 통해 눈같이 희어지게 하셨습니다. 그러다가 예수님을 믿고 또다시 죄의 지배 속으로 들어가게 됐는데, 어느 한 순간에 회개하게 되었습니다. 진실되게 회개했는데 하나님이 용서했다는 확신이 오지 않습니다. 이것이 세번째 혼란입니다. 이런 혼란은 다음의 세가지를 통해 회복케 됩니다. 1. 말씀을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 생각의 혼란을 털어내야 합니다. 진리의 밝은 빛, 즉 말씀 속에서 성령이 역사하십니다. 무지는 죄가 기뻐하는 곳입니다. 버섯 재배할 때 양달에 버섯 키우는 사람 없습니다. 곰팡이는 빛 없는 습한 곳에서 잘 자랍니다. 죄도 곰팡이와 같습니다. 진리의 빛이 비취지 않는 어둠 속에서 잘 자라납니다. 죄, 부패, 혼란, 심판, 두려움, 사망은 어둠의 친구들입니다. 빛의 친구들은 믿음, 사랑, 희망, 감사, 거룩, 영광, 기쁨, 착한 열매, 은총 이런 것들입니다. 그러니까 신자라고 하면 끊임없이 자신을 거룩하게 하는 도구들을 소유하고 살아야 합니다. 조금만 지식이 있으면 명백히 말할 수 있습니다. 거룩한 성자가 되기 위한 성화의 길에 완성이 있습니까? 끝이 없습니다. 하지만 인간 본성의 부패성이 우리를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습니다. 끊임없이 가야할 길 속에서 원수들을 만나고 부패성들이 원수와 내통해서 내가 원하지 않는 바를 행하게 합니다. 그리스도의 삶이라는 것은 치열한 전쟁터, 우리의 호흡이 끊어지고 혈관의 피가 굳어서 힘쓸 수 없을 때까지 싸워야 하는 무기가 있어야 합니다. 성화되면 성화될수록 그 성화의 과정에서 자신의 신앙이서 더 많은 죄들을 깨닫게 됩니다. 그렇게 죄를 발견하게 될 때 그 죄는 더욱 교묘한 죄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은혜를 받을수록 죄는 교묘해집니다. 싸움도 교회에서 합니다. 세상에선 술 먹고 싸우는데 교회에서는 성찬 받들고 싸웁니다. 교회에서도 높아지려고 합니다. 끊임없이 죄가 교묘하게 역사합니다. 신자가 미끄러지면서 가는 길은 항상 같습니다. 하나님과의 교제가 끈기고, 은혜의 세계를 상실하고, 하나님께 버림받은 느낌, 차가운 거절감, 하나님과 동행하지 않는 영혼의 피곤함, 곧 복받쳐 오를 것 같은 고독감, 이글거리는 정욕, 외식하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대한 두려움 등, 다 동일한 길을 걷게 됩니다. 죄는 모든 것을 피해 살아남아 우리 육신과 영혼에 새끼 친 것입니다. 결국 죄가 이긴 것입니다. 그렇게 눈물로 기도해도 살아남는 죄. 나중에 보면 말씀의 칼도 날아오지 않습니다. 죄와 같이 살게 됩니다. 두 눈에 총기를 잃은 거룩한 그리스도인은 없습니다. "나의 눈을 열어 주의 법의 기이한 것을 보게 하옵소서(시 119편)". 총기 어린 기이한 눈이 없으면 거룩해질 수 없습니다. 탐구의 정신으로 가득찼던 눈망울이 빛을 읽으면 내면에서는 정욕이 타오르게 됩니다. 총명한 눈으로 말씀의 세계를 깨닫길 원하는데 볼 수 없습니다. 성도의 손에는 말씀이 계속 있어야 합니다. 2. 자신의 영혼의 상태에 대한 분명한 인식을 가져야 합니다. 사실을 정확히 보고 자신의 영혼의 상태가 올바른 것인지 숙고해야 합니다. 그런데 은혜의 지배에서 멀어져 죄의 지배, 욕망의 지배에 빠지게 되면 정말 힘들게 됩니다. 그때는 영혼의 상태를 진단하는 사람에게 가야 합니다. 말씀에 비쳐보고 깨닫는 것이 중요한데 영적 경험과 분별이 많은 신앙의 선배를 찾아야 합니다. 정확히 진단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과연 그런가 말씀으로 분별해야 합니다. 3. 회심의 은혜를 계속 보존해야 합니다. 그러면 혼란이 생기지 않습니다. 진실하게 마음 바치는 생활 없이는 마음은 굳어지고 영혼은 죄로 가득하고 생각은 혼탁하게 되어 총명이 사라지면 혼란에서 나오기가 힘듭니다. 은혜를 받으면 혼란스러운 것이 사라지고 정돈이 잘 되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은혜의 영혼의 질서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끊임없이 하나님의 은혜 안에 거하고 진단하고 말씀을 깨달아 자기 속에 은혜 속에서도 살아 남은 죄를 끌어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 영혼의 상태를 정확히 알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 속에 있는 죄의 부패성을 간과해서는 안됩니다. 그것을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 성경을 읽고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 영혼이 계속 출렁이게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전의 동일한 죄를 계속 즐기면서 하나님의 마음을 동일한 죄로 또 마음 아프게 합니다. 그 동일한 죄의 부패성이 우리 육신과 영혼에 살아남아 있기에 우리는 은혜의 생활을 잠시라도 멈추면 안됩니다. 살아 남은 죄의 부패성이 문제이지 우리가 구원 못 받은 것은 아닙니다. 이런 혼란에서 빨리 나와 우리 속에 남아 있는 죄와 싸워야 합니다.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으로 죄를 깊이 찔러 죽여야 합니다. 명심하십시오. 하나님은 우리를 거룩하고 흠이 없는 자신의 자녀 만들기 위해 우리를 예정하신 것입니다. (에베소서 1장 4-7절 -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