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명의 어두움
세상을 사랑하면 영혼의 상태를 분별하는 능력이 사라지게 됩니다. 그러나 이런 상태를 분별하지 못하고 세상에 끌려 살아가면서 문제의 심각성을 알지 못하게 되어 짐승과 같은 지경에 이르게 됩니다. 겉은 화려하게 장식하고 교양이 철철 흐르는 사람처럼 행동하고 말해도 참신자는 아닌 것입니다.
시편 49편 20절에 “존귀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
여기서 우리의 영적 상태를 분별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게 바로 총명입니다.
에베소서 4장 17-20절, “그러므로 내가 이것을 말하며 주 안에서 증언하노니 이제부터 너희는 이방인이 그 마음의 허망한 것으로 행함 같이 행하지 말라. 그들의 총명이 어두워지고 그들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그들의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 그들이 감각 없는 자가 되어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여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되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를 그같이 배우지 아니하였느니라”
세상의 것을 자신도 모르게 추구하다 보면 영혼에 어두움이 드리우게 되고 그러면 즉시로 마음과 총명에 변화가 일어나게 됩니다.
우선, 마음은 혼란해지고 허망한 것에 굴복하게 됩니다. 무엇인가 많이 생각하고 고민하고 정신 팔려 사는데 아무 의 미없는 헛된 것들에 몰두해서 살아가게 됩니다. 그러면서 나타나는 것이 마음이 굳어지는 현상입니다. 마음이 한번 굳어지면 여간해서는 잘 녹지를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도 튕겨나오게 되고, 굳은 마음에서 세상적 욕망만 나오게 됩니다. 처음 마음이 굳어지면 기도가 안되는가 싶더니, 이후로는 기도할 힘이 생기지 않고, 결국에 가서는 기도할 때 철벽과 같은 막힌 담을 느끼게 됩니다.
또한, 총명이 어두워집니다. 총명은 사용하면 사용할수록 발전합니다. 말씀을 잘 깨닫고, 터득하면서 이치를 알게 되고 자신의 삶 속에 대입시키게 됩니다. 그렇게 해서 죄를 이기는 삶을 하나씩 하나씩 쌓아가게 되면 진리의 빛을 더해줍니다. 그런데 총명이 어두워지면 욕심에 떠밀려 살게 되고, 이런 사람들은 교회에 나오긴 나와도 고생을 많이 합니다. 하나님이 깨닫도록 치시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총명이 생기지 않으면, 하나님이 무서워서 손들고 와서 신앙생활 하더라도 옛성품이 또 나타납니다. 한 대 얻어맞고 또 정신 차리고, 또 그릇된 길로 가다가 한 대 맞고 또 정신 차리면서 비슷한 일을 되풀이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집중하고 실천하지 않으니까 총기가 생기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깨달음이 있고 실천하고 말씀을 터득하면서 말씀의 이치를 깨닫게 되는 것이 총명이 살아나는 것입니다. “내 눈을 열어 주의 기이한 것을 보게 하소서. 영혼의 총기를 열어 주소서. 돈도 싫고 명예도 싫으니 총기를 허락하소서.” 간구하게 됩니다.
총명이 변한다는 것은 영혼의 상태와 관계됩니다. 영혼이 부패하게 되면 총명이 사라집니다. 총명의 능력이 약화됩니다. 총기가 사라지면 영적 상태를 분별하지 못합니다. 모든 일을 우리는 영적인 안목으로 보아야 합니다. 물질의 욕망으로 사로잡히면 영안(靈眼)이 열리지 않습니다. 마음의 등불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 마음이 말씀에서 물러나면서 타락하게 됩니다. 그리고 많은 죄들이 융성하게 됩니다. 교회에 나오긴 나와도 형식적인 신앙생활을 하게 됩니다. 죄가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지만 죄를 버리고자 하는 마음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총명, 즉 깨달음을 회복하는 길은 무엇일까요?
우선, 자신의 죄를 객관화시켜야 합니다.
죄를 객관화시키기 위해서 하나님 앞에서 정한 시간에 기도해야 합니다. 처음에는 선명하게 자신이 지은 죄가 느껴지지 않습니다. 이때는 정말 마른 뼈(마른 북어)와 같은 존재입니다. 하지만 기도가 되지 않아도 시간을 정해놓고 반복적으로 계속 기도하게 되면 기도가 흘러 나오게 됩니다. 그리고 명료하게 죄가 무엇인지 알게 되면서 눈물이 막 나오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죄의 객관화의 과정입니다. 기도를 통해 은혜를 받아야지만 뼈 속 깊이 있는 죄가 무엇인지 알게 됩니다. 이렇게 죄를 객관화시키지 않으면 우리는 죄를 계속 끌어안고 사는 것입니다. 죄를 끌어안고 있으면 누군가 그 죄를 공격하면 자신이 듣기 싫어합니다. 그럴 때 더 많이 기도해야 합니다.
둘째, 하나님의 진리의 빛, 즉 말씀을 통해 성령의 도우심으로 총명을 회복할 수 있습니다. 영혼이 어두우면 총명이 사라지게 됩니다. 이 어두움은 물리적이 빛이 아니라, 세상의 개똥 철학이 아니라, 오로지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비치는 찬란한 빛으로만 물리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약 먹듯이 듣고 읽어야 합니다. 이때 생각과 마음의 기능이 중요합니다.
생각은 진리의 빛을 받아들이는 역할을 합니다. 은혜의 상태로 돌아가고 싶으면 머리부터 손을 봐야 합니다. 생각을 똑바르게 해야 합니다. 예배 시간에 아무 생각도 없이 앉아 있으면 가나마나입니다. 주님에 대한 사랑과 피흘리는 신앙의 분투가 있었다면 예배드리는 자세가 다릅니다. 생각을 집중해야 합니다. 절대 졸아서는 우리의 총기를 회복할 수 없습니다.
마음은 진리의 빛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거룩한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세속적인 지혜를 사용하지 않고 신령한 지혜를 사용하게 되는 게 마음입니다. 팔과 다리를 사용해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을 살게 되는 게 마음에서 시작됩니다. 말씀을 들었다면 생명이 있는 증거가 마음에서 나타납니다. 자신의 영혼의 곤고함으로 인해서 고통을 마음에서 느껴야 합니다. 탕자처럼 돼지우리에 누우면 아버지 집이 생각나야 합니다. 여러분 마음이 진리의 빛을 품고 있습니까? 말씀에 의해 주장되고 있습니까? 마음은 그 진리를 사용하여 생성되는 삶을 살고 있습니까? 사랑이신 하나님으로부터 그 사랑이 여러분의 마음으로 흘러나와야 합니다. 마음에 진리의 밝은 빛이 흘러나온 결과가 신앙입니다. 마음이 말씀을 사용하여 거룩한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엄밀히 따지고 보면 세상 사랑으로 인하여 총명을 잃어버리곤 합니다. 총명은 자신의 영혼의 상태를 식별하고 판단하는 능력이며, 지도하는 능력입니다. 이것은 지식이 아닙니다. 영적 생활에 얼마나 정확하게 판단하고 식별하며, 생각을 주도하는가에 대한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이 총명은 계속 발전하는 것입니다. 지식을 통해 활용하면서 발전합니다. 이 총명이 가장 잘 활용하는 것이 생각입니다. 총명이 생각을 지배하면, 총명이 뛰어난 사람은 생각해도 계속해서 버릴 생각과 취할 생각을 구분합니다. 이게 바로 지혜인 것입니다. 영혼의 총명이 상실되거나 능력이 떨어지면 생각을 제대로 지도해주질 못합니다. 명료한 생각을 가지고 살지 않게 됩니다.
말씀과 기도의 생활을 통해 우리는 총명이 어두워지지 않도록 합시다. 짐승과 같은 삶이 아니라 참된 신자의 삶을 살아 맑고 깨끗한 영혼을 간직합시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