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를 속이는 죄
죄 짓고자 하는 많은 욕구 중에 신자는 대부분 다 억누를 수 있지만 한, 두 개의 욕구는 제어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바로 거기로부터 영혼의 부패가 생기게 됩니다. 이것이 아주 은밀하게 신자에게서 나타납니다. 세상 욕망이 적으면 적을수록 경건한 삶을 사는데 도움이 됩니다. 우리에게 욕망이 사라지는 경우는 어떤 경우일까요? 예를 들자면, 일주일 정도 금식을 하면 힘이 빠지면서 육체적 욕망들이 휴식 상태에 들어가서 하나님께 집중하게 됩니다. 누구를 미워하려 해도 힘이 없어서 미워할 수 없게 됩니다. 하지만 이런 금식이 죄를 죽인 것은 아닙니다. 죄가 휴식 상태에 들어간 것입니다. 그러다가 식사를 마음껏 해서 육체가 자기 컨디션을 유지하면 욕망이 생깁니다. 정말 우리가 주의해야 할 것은 죄가 죽은 게 아니라, 휴식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죄는 아주 은밀하게 아주 개별적으로 욕구를 통해 역사합니다. 죄는 우리의 본성을 너무나 잘 알고 있어서 우리 몸에 아주 익숙합니다. 물론 성령님도 우리에게 익숙하십니다. 성령님이 우리 마음에 오시면 뭔가 편한 이유는 그것 때문입니다. 성령님 다음으로 우리에게 익숙한 것이 죄입니다. 인간이 타락한 이후로 우리 본성에 기생하여 끝가지 살아남은 게 죄이기 때문입니다. 죄가 있는 가운데 우리는 태어나고 예수님 만나면서 성령님이 거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님과 죄가 공존하면서, 죄가 거듭남과 함께 파괴되면서도 죄는 남아 있습니다. 그 남은 죄는 우리 본성에 대해 너무 잘 알고 있지만, 신자는 죄에 대해 잘 알지 못합니다. 우리의 강점과 약점을 잘 아는 죄는 우리를 속이고 강압하게 됩니다. 죄는 신자 안에서 자기의 영향력을 확대해서 사망의 법으로 데려가지 못하지만, 죄의 노예된 상태로 이끌게 됩니다. 그것으로 하나님께 영광돌리지 못하게 하고 궁극적으로 신자가 고통 받도록 하는 것입니다. 사단은 우리 안에 있는 총체적인 지배력을 얻기 위해서 은밀하고 개별적인 한 두 개의 죄에 집착하게 만들고, 그것 때문에 정욕이 생겨서 부패하도록 합니다. 죄로 말미암아 죄의 영향력 안에 들어가 다른 죄도 짓도록 역사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들이 회심의 은혜를 구하면 죄를 이길 원군들을 보내 주십니다.
그렇다면 잘 믿는 신자들을 죄는 도대체 어떻게 속이는 것일까요?
죄는 죄의 크기와 그 결과에 대해서 신자를 속입니다.
죄는 신자의 총명을 흐리게 만들어서 공정성을 잃어버린 판단을 하게 만듭니다. 성경이 아주 심각하게 죄의 크기를 말해도 “요즘 다 그러는데...뭐....” 이런 반응을 보이게 됩니다. 법이 올바르게 서서 하여야 할 것, 하지 말아야 할 것을 분간하도록 하는 것이 공권력입니다. 율법은 동일하십니다. 하나님의 엄위함은 항상 같은 기준으로 우리를 보고 계십니다. 그런 사실을 죄는 속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죄는 죄의 크기를 축소합니다. 큰 죄는 아니라고 속이는 것입니다. 죄의 정확한 크기를 축소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자기가 지은 죄는 관용이 넘칩니다. 죄가 그렇게 속입니다.
또한 죄가 몰고 올 비참한 죄의 결과를 속입니다. 죄를 짓고 싶은데 마음이 편하지가 않으면 다른 작용으로 죄를 보상하려는 심리가 작용합니다. 자기가 지은 죄에 대해 보상하려는 심리로 주의 일에 몰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죄는 이렇게 속이면서 사람 안에 있는 특정한 욕망에 넘어지게 만듭니다.
여우는 두 번 다시 동일한 덫에 걸리지 않는다고 하지만 사람은 항상 넘어지는 죄에 넘어지게 됩니다. 새로운 죄의 영역을 개척하기 보다는 넘어지는 지점이 거의 항상 정해져 있습니다. 신자가 되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가 짓고자 하는 욕망에 대해서 죄의 속이는 역사에 의해 얻는 기쁨이 커져서 쉽게 죄를 짓게 되고, 다음에는 중독 현상이 일어나서 죄로부터 헤어 나오지 못하는 상태가 됩니다. 죄에 빠진 인간의 상태가 올무에 빠져 있는 상태입니다.
죄에 물리면 특정한 욕망에 사로잡혀 벗어나려 발버둥쳐도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러면서 어느 순간 견디기 힘든 고통을 겪게 됩니다. 그때 울부짖으면서 하나님께 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단 한번의 기도로 그 상황에서 벗어날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좋은 것은 그런 상황에 빠지기 전에 돌이키는 것입니다. 특별히 사랑하는 욕망에 빠져서 그런 상황이 만들어집니다.
그렇다면 이런 죄의 속임으로부터 벗어나는 길은 무엇일까요?
총체적인 순종으로서만 죄를 이길 수 있습니다. 성화에 필요한 필수적인 자세가 있습니다. 우선 삶의 모든 방면에서 총체적인 순종을 하려는 것입니다. 이것만이 성화의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교회만 열심히 나오는 것이 성화의 목표일 수는 없습니다. 모든 방면에서 온전해지는 것이 목표여야 합니다. 삶의 모든 방면에서 하나님을 의식하고 순종해야 합니다. 마음의 의도뿐만 아니라 모든 생각과 이지의 작용까지 하나님의 마음에 합당하기를 추구해야 합니다. 그래야 비로소 죄를 죽일 수 있는 것입니다. “나의 입술의 모든 말과 마음의 묵상이 주께 열납되기를 원하네”찬양 가사처럼 우리의 불순종하는 삶, 은혜로부터 미끄러져서 넘어지는 뿌리는 우리 안에 있는데, 그게 마음이고, 생각이고, 총명이고 우리 영혼입니다. 밖으로부터도 많이 배워야 하지만 내면의 세계를 잘 살펴야 합니다. 인간 내면 세계에 대한 성경적인 탐색이 없어서 우리는 자신이 부패하고 있으면서도 모릅니다.
모든 방면에 있어 순종하지 않는 죄로 인해 우리는 부패되기 시작합니다. 목표는 삶의 모든 방면에서 온전해지는 것입니다. 모든 방면에서 온전해지려 한다면 순종하려는 목표를 가져야 합니다. 이렇게 해야 성화의 진전이 있는 것입니다. 자신이 빠지는 죄에 대해 가볍게 여기면, 이 길을 타고 죄가 들어오게 됩니다. 목표를 세웠으면 일체의 성실함과 부지런함으로 거룩해지기를 노력해야 합니다. 성실함은 목표를 향해 흔들리지 않고 목표를 유지하는 자세이고, 부지런함은 개개의 상황에서 열심을 다하는 것입니다.
욕망은 개별적인 것이지만 그것이 온 마음과 영혼을 더럽히게 됩니다. 그 욕망이 죄를 불러들입니다. 모든 삶에서 온전하여져서 흠도 없고 점도 없는 하나님의 자녀되도록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예수님 안에 주어진 구속을 통해 창조의 목적에 맞는 존재가 됩니다. 하나님이 의도하신 존재가 될 때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참된 신자가 되면 하나님은 더 많이 영광을 받으십니다. 성화라는 것은 죄의 불결로 부터 성령께서 우리를 깨끗케 만드시는 성령의 역사입니다. 그 말씀의 빛을 받아들이면서 총명을 받아들이고 마음이 하나님을 기쁘게 순종하는 삶이 하나님이 진정 바라는 삶입니다.
결국 은혜의 상태에 있던 신자가 개별적 정욕으로 실패하게 되면 그 하나 때문에 넘치도록 죄가 들어와서 부패하게 된다는 것을 명심합시다.
여러분이 걸려 넘어가는 그 약한 부분이 무엇입니까? 그것을 하나님께 고백하면서 우리 삶의 모든 방면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삽시다.
SOLA GLORIA !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