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레 같은 자기 자신에 대한 부인

시편 22: 6 "나는 벌레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의 훼방거리요 백성의 조롱거리니이다" 마태복음16:24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구원에 이르는 첫회심을 통해 은혜의 샘이 터지고 하늘 문이 열리면서 은혜의 빗줄기가 떨어집니다. 말로 다 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고 사랑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런 상태가 영구히 계속되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재창조와 같은 중생의 축복은 말씀을 제대로 깨닫고 총명으로 마음이 그 빛을 붙들고 인내와 순종으로 살아갈 때 지속됩니다. 하지만 게으르고 나태하고 현저하게 말씀의 빛을 붙들지 못하고 순종하지 못하는 삶을 살면 아주 신속하게 은혜의 상태에서 부패하게 됩니다. 자기 속의 죄가 아주 융성하게 자기를 지배하게 됩니다. 우리는 얼마나 정확한 복음 진리의 말씀을 듣고 그 진리를 적용하고 순종하는 삶을 사느냐 에 의해서 은혜의 상태에 있는 것이 달라지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일평생 은혜의 상태에 있을 수 있습니다. 사람에게는 신령한 상태, 육적인 정욕의 상태가 모두 있습니다. 성화란 육적인 것은 계속 죽어가고 신령한 것을 계속 살아나는 것입니다. 구원받았다고 하나님이 원하는 것만 생각하는 것은 아닙니다. 특히 이 세상은 죄가 다스리는데 이 죄 많은 세상이 신자들을 유혹합니다. 이 때 자기 부인이라는 것이 없으면 부패할 수 밖에 없습니다. 자기 부인이란 내가 ‘나’라는 존재를 부인하고 ‘나’라는 존재가 가지고 있는 생각, 좋아하는 것, 되고 싶은 것, 사랑하는 것을 ‘아니다’라고 부인하는 것입니다. 그럼 나란 어디에 있는가요? 없습니다. 부인할 것은 새롭게 빚어진 새사람이 아니라 옛사람이 가진 것을 ‘아니다’라고 부인해야 합니다. 각자 인간에게 목적을 정해두신 하나님은 신성의 충만을 나누어 주셨고, 그래서 하나님의 영광이 발산 되도록 하셨습니다. 하지만 죄 때문에 이런 모든 것이 파괴되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오셔서 우리 인간이 창조의 목적대로 살도록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것입니다. 결국 창조의 목적이나 구속의 목적이 같은 것입니다. 좋은 신자가 되면 인간다운 인간이 되어 이 세상을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한 세계로 만들어 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 말씀은 어떻게 하면 인간이 하나님의 원래 계획으로 돌아갈 수 있는가 하는 상세한 지도인 것입니다. 중생하여 거듭난 순간에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어집니다. 성경에 대한 믿음 없이는 창조주와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생길 수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성경의 내증입니다. 어떻게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하는지를 배우게 됩니다. 원래의 창조의 목적을 이해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거듭나는 것은 복음의 핵심만 터득해도 결단하고 영접해서 신자가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다음은 성경을 열심히 탐구해야 합니다.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을 알아야 합니다. 말씀을 배우려 하지 않으면 형식적인 신앙생활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구도자의 자세로 진리를 깨닫고 구도의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나는 곧 길이요” 그 길(道)되신 예수님을 끊임없이 알고 배우려 하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구도자입니다. 그냥 떠돌아 다니면 쓸모없는 것입니다. 말씀, 진리의 빛을 받고 무엇이 나의 의무인지 깨닫게 됩니다. 하기 싫어하는 ‘나’를 부인하고 내가 원하는 것을 안 하는 것이 자기 부인입니다. 말씀의 지식이 많을수록 부인해야 할 일도 많게 됩니다. 결국 진리의 빛이 있어야 자기부인을 하게 됨으로 자기 부인 자체가 하나님의 말씀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신자에게 자기 부인은 왜 필요할까요? 1. 내적인 부패성 때문입니다. 내적 부패는 전방위적으로 영향을 미칩니다. 부패는 우리의 영혼 안에 있습니다. 생각, 총명과 마음, 육체에 까지 영향을 미치는 게 영혼인데 부패가 이 영혼 안에 있으니까 생각, 의지, 육체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입니다. 우리 영혼 안에서 생겨나는 느낌, 생각, 감정, 욕구가 부패에 영향을 받기 때문에 부인하지 않으면 곡식과 가라지를 키우는 것과 같습니다. 2. 외적인 유혹 때문입니다. 이 유혹은 일반적인 상태로 머물지 않고 특별한 시험으로 인도하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죄가 신자의 마음 속에서 늘 작용하고 있습니다. 신자의 마음에 미끼를 걸게 됩니다. 죄는 인간의 도움 없이는 죄가 성장하지 않으니까, 죄가 신자 안에 있는 옛사람이 살아나도록 합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신자가 그 어떤 유혹에 끌리게 되면, 죄는 시험의 때를 만듭니다. 죄가 마음과 친밀해지도록 친화적 관계를 만듭니다. 죄를 작게 생각하고 하나님의 용서를 크게 생각합니다. 그러다가 결국 특정한 정욕에 끌림을 느끼면 범죄하게끔 만드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자기를 부인하지 않으면 안될 이유입니다. 신자를 허물어 뜨리려고 전방위적으로 공격하게 합니다. 아무렇게나 살아도 하나님이 설마 너를 버리겠느냐? 하나님의 자녀라는 신자의 특권이 육신의 자유를 위해 쓰이게 됩니다. 이처럼 죄의 역사가 전방위적이기 때문에 이것을 부인하는 것 없이는 은혜의 상태에서 미끄러져서 부패하게 됩니다. 자기 부인을 위한 과정 1. 거룩한 의무에 대한 인식 자기 부인을 위해서 의무에 대한 올곧은 인식이 필요합니다. 내 마음대로 살면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집니다. 천국 가기 위해서는 공부 많이 해야 하지만, 지옥 가기 위해서는 공부할 필요 없습니다. 대학 떨어지기 위해 공부할 필요 있습니까? 지옥은 그냥 살아가는 사람들이 가는 것입니다. 의무에 대한 올곧은 인식이 자기 부인을 위한 가장 중요한 조건입니다. “시 119:168 - 내가 주의 법도와 증거를 지켰사오니 나의 모든 행위가 주의 앞에 있음이니이다” 자기 부인은 자기 의무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자기 의무를 행하고 싶은 때도 있고 행하기 힘들 때도 있습니다. 인식이 의무를 파악하면 싫을 때도 하게 됩니다. 모든 상황 가운데서 자신의 의무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상황 보다 중요한 것은 자기 본분입니다. 그것을 생각하는 게 신앙입니다. 자신의 본분과 의무에 대한 생각, 신앙의 결단이 없는 사람들은 연체동물처럼 삽니다. 말씀에 대한 뼈대가 없습니다. 모든 상황 속에서 본분과 의무를 생각해야 합니다. 2. 의무에 반대하는 생각과 욕구 통제 의무에 반대하는 생각과 욕구를 의지를 가지고 통제해야 합니다. 시 17편, “주께서 내 마음을 시험하시고 밤에 내게 오시어서 나를 감찰하셨으나 흠을 찾지 못하셨사오니 내가 결심하고 입으로 범죄하지 아니하리이다.” 예배를 드리는데 더러운 생각이 확 들어왔다가 나갑니다. 이런 것들은 어느 한 순간에 사단이 밀어 넣은 생각입니다. 하지만 영혼에 영향을 미치지는 못합니다. 떠오르는 생각을 마음이 붙들고 죄가 뿌리를 내리면 뿌리를 뻗게 됩니다. 회개를 해서 잎은 사라지지만 뿌리는 남아 있습니다. 정욕을 자신의 자궁에 착상시켜 자라게 하면 밖으로 나올 수 밖에 없습니다. 그 단계마다 의지가 절대적인 권한을 가지고 있습니다. 죄가 생각을 통해서 마음에 착상될 때 생각이 주도적입니다. 악한 생각이 있어도 의지가 털어내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생각이 떠돌다가 마음에 계속 떨어뜨리려고 하면 의지가 허락합니다. 이렇게 하는 과정에서 생각이 설득을 당하면서 의지가 동의를 함으로 죄가 자라는 것입니다. 죄는 충분히 자라나는 과정이 있습니다. 정욕적인 생각을 통해 죄의 알들이 맺히게 됩니다. 아합왕의 나봇의 포도원을 탐내게 됩니다. 하나님이 금지하시는 율법을 생각하고 털어버리면 되지만 그것 털어버리지 못하면 계속 고민하다가 죄를 짓게 되는 것입니다. 생각이 끈질기게 설득을 당하면 그것 뽑아내기가 힘듭니다. 죄가 산출될 때 기뻐하게 됩니다. 자신이 선택해서 죄를 지은 것이지 연약해서 죄를 지은 것은 아닙니다. 모든 죄는 자신이 선택한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죄가 태어나면 무슨 일을 일으킬지는 하나님만 아십니다. 이런 상황이 오기 전에 자기 부인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3. 하나님께 대한 순종과 의존 의무는 떠올랐는데, 그렇게 살 수 있는 힘과 마음이 떠나가 버렸으면, 선택은 우리가 하지만, 그것을 이길 수 있는 성령의 힘, 의무와 본분을 따라 나를 부인할 수 있는 힘은 하나님이 주십니다. 그런데 이런 힘은 순종하는 자에게 주십니다. 사람은 결단하는데 자꾸 무너집니다. 그 이유는 죄의 유혹과 부패의 영향력이 총체적이니까 모든 것을 다 대적해야 합니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믿음과 순종입니다. 마땅한 의무를 올곧게 인식하고 내가 그것을 행할 힘이 없을 때, 순종하면 하나님이 힘을 준다는 것을 아는 것이 믿음입니다. 하나님이 이미 도와주신 것에 대한 회고를 통한 감사가 있어야 합니다. 믿음을 가지고 순종하면 힘이 모잘라서 불순종할 수는 없습니다. 심하면 생명과 성령의 법이 멈추게 됩니다. 그러면서 타락한 길로 가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죄 없는 분으로서 자기 부인의 길을 걸어가십니다. 아버지의 뜻이 그것이라서 순종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라고 하십니다. 끊임없는 순전한 말씀의 거울, 찬란한 말씀의 빛을 통해 자기를 돌아보는 자기 성찰이 없이는 성화될 수 없습니다. 말씀의 빛이 없는 것에 대해 통탄해야 합니다. 말씀의 빛은 우리를 성찰하게만 합니다. 4. 말씀을 통한 성찰 하나님이 우리를 왜 창조하셨는지를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자신을 철저하게 말씀에 비추면서 성찰하고 자신을 부인해야 합니다. 작은 욕망이 있어도 이것을 털어버리기가 힘이 듭니다. 고통스럽습니다. 자기 속의 더러운 인간 욕망을 부인하기가 얼마나 어려운가요? 자기 부인의 동기를 제공해주는 원천이 있는데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빈손들고 앞에 가 십자가를 붙드네” “나를 항상 버리고 십자가를 붙드네” “그 형상 볼 때 내 맘에 큰 찔림 받아서 그 사랑 감당 못하고 눈물만 흘리네” 자기 부인이 어려운 것은 자아가 살아 있기 때문입니다. 십자가 앞에 서면 우리가 아무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과 원수 되었던 죄인이지만 나와 같은 더러운 인간을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다는 사실을 깨닫고 아무 것도 아닌 더러운 죄인이 자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죄송한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주님도 때로는 울기도 하셨네, 살든지 죽든지 뜻대로 합소서” 우리가 십자가 앞에서 얼마나 우리가 더러운지를 깨닫고 회심하던 때, 그 때를 생각해보십시오. ‘벌레 같은 나, 쓰레기 같은 나’라고 고백했었습니다. ‘나는 아무 것도 아니다’라고 고백했었습니다. 주님을 위해 일하면서 무익한 종이라고 했었습니다. 그런 회심의 은혜 아래 있을 때에는 우리 자신의 판단이 정확한 판단입니다. 예수님께서 자기를 부인하시고 우리 같은 너절한 죄인을 위해 돌아가시지 않았다면 우린 어떻게 되었을까요?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을 새롭게 만나고 그 십자가에서 왜 죽으셨는지를 깨닫는 순간 내 자아가 새사람의 원수, 그 안에 있는 죄의 계획과 부패한 욕망들이 그렇게 사랑하고 일평생 존경하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게 한 궁극적인 원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좋아하고 집착하는 세상 사랑 때문에, 우리의 영적인 생명을 파괴하고라도 우리가 얻고 싶어하는 우리의 육체적인 더러운 욕망 때문에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히셨고, 그리고 오늘 우리가 그렇게 부인하지 않는 더러운 욕망의 옛자아, 그것 때문에 예수님은 하나님께 버림받고 죽으셨습니다. 사랑하던 하나님으로부터 끔찍하게 버림받고 홀로 내동댕이쳐졌습니다. 순결하셨지만 우리의 불결 때문에 형벌 받았습니다. 죄 안에 갇혀서 영원히 자기 중심적으로 밖에 살아갈 수 밖에 없는, 그의 전 삶이 죄로 나타날 수밖에 없는 숙명적이고 비참한 인간들을 구원해 내셨습니다. 죄로 인하여 망가진 이 세상 속에서 예수님의 나라가 오게 하고 망가진 이 세상의 창조의 목적을 바로 잡도록 예수님은 죽으셨습니다. 우리의 죄 때문에, 범죄는 우리가 했으나 예수님은 우리 대신 십자가에 형벌 당하셨습니다. 우리는 그 덕에 살아난 사람입니다. 그 십자가를 보면서 그것이 우리의 죄와 악함 때문이라는 사실, 그 앞에 우리는 아무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살아났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십자가의 거룩한 계획을 수포로 돌이키려는 우리를 마음 아파하십니다. 십자가의 복음의 뜻을 깨닫도록 만드셨습니다. 불순종하는 우리들을 오늘도 간곡히 자기를 부인하는 사람으로 살라고 부르고 계시는 것입니다. 항상 동일한 지점에서 범죄하려는 욕망을 지닌 자신을 부인하십시오. 우리의 영적인 생명을 파괴하고라도 그렇게 집착해서 얻고 싶어하는 쓰레기 같이 더러운 사랑 때문에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피흘려주셨습니다. 제발 예수님을 진정 따르려거든, 이런 자기 자신을 부인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