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만한 기도 생활에서 탈출하기
기도생활의 태만함이 신자로 하여금 뒤로 미끄러지게 만듭니다. 기도생활의 태만은 은혜 상태의 신자를 부패하게 하는 것이죠. 첫 회심의 은혜는 은혜의 샘이 터지고 하늘이 열리면서 진리의 빛들이 들어오게 되는데, 이것은 기도의 문이 열리는 현상으로도 나타납니다. 생각 속에 들어온 죄가 마음, 육체에까지 영향을 미치는데, 그것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그 죄와 동일하게 은혜의 투쟁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을 위해 기도가 중요하게 됩니다. 말씀을 붙들고 있으면 생각에는 총명이 있고, 마음에는 은혜가 있게 되는데, 이 때 기도는 생각과 마음에 총명과 은혜가 머물도록 합니다. 말씀을 받는다는 것은 주로 생각에 머물게 됩니다. 말씀이 우리 인격 전체를 다 사로잡기는 어려운 것입니다. 우리가 죄 가운데 있어도 말씀을 받아들이기는 쉽습니다. 죄 중에 있는 사람들은 말씀만 듣고 지적 호기심으로 끝나서는 안되고 기도를 통해 마음을 찢는 작용이 있어야b합니다. 기도의 은혜는 회심을 통해 시작되는 것입니다. 물론 처음 회심의 기도는 말씀의 뿌리가 없어서 미숙할지는 몰라도 기도의 샘은 그때 터지게 됩니다. 열렬한 기도가 가능해지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마음에서 우러나온 성령의 감화된 기도입니다. 하지만 이 상태가 항상 유지되는 것은 아닙니다. 영혼의 싫증과 육체의 게으름이 몰려오고 하나님의 간절함을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또한 많은 유혹과 은혜의 상태에서 미끄러지는 사단의 꾀가 있게 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기도할 때 구체적으로 어떤 유혹을 받게 될까요?
1. 짧게 기도하려는 유혹을 받습니다.
짧게 기도하는 것은 세균과 같은 부패의 작용인데, 짧게 기도하는 이유는 기도가 희생을 요한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기도할 때 자신의 노력 없이 뜨겁고 열렬한 기도를 계속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성령님이 도우시지만 기도는 매달리고자 하는 사람에게 역사하는 성화 과정의 하나인 것입니다. 짧게 기도하는 것은 죄라고까지는 할 수 없지만, 영적 부패를 막기에는 부족합니다. 기도는 희생을 필요로 합니다. 이것을 깊이 인식해야 합니다. 희생과 고통 없이는 깨어서 기도할 수 없는 것입니다.
짧게 기도하려는 유혹을 받을 때 신자가 넘어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기도 속에서 소모되는 육체와 정신의 노고를 덜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피곤하고 힘들면 길게 기도할 수 없습니다. 또한 자기 자신을 아끼기 위해서 짧게 기도합니다. 첫 회심 후에는 기도가 항상 즐겁습니다. “내 기도하는 그 시간 그때가 가장 즐겁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기도가 즐겁지 않게 됩니다. 저절로 기도가 항상 즐거운 것이 아닙니다. 채찍질해서 기도하게 하는 것이 우리 몸에 배어야 합니다. 오랜 동안 간절함으로 기도하면 그 과정을 통해 내면에 쇄신이 일어납니다. 그러다가 기도의 즐거움이 회복되게 됩니다. 그런데 이런 회복을 원하지 않는 마음이 내면에 내재되어 있습니다. 또한 짧게 기도할 수밖에 없어서 짧게 기도하게 됩니다. 기도는 캐내면 캐낼수록 기도의 더 깊은 경지 속에 들어가게 됩니다. 기도를 그치고 양보하기 시작하면 거의 할 기도가 없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기도의 불감증입니다. 이것은 모두 기도가 희생이라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기도는 육체와의 싸움을 항상 동반하는 것입니다. 형식적인 신앙생활에서 흐느적거리게 됩니다. 은혜가 남은 만큼만 기도할 욕구를 느끼게 됩니다. 기도하기 싫어하면 은혜가 거의 사라진 것입니다. 그러나 갈등과 범죄 속에서도 기도하려는 욕구가 살아 있으면 은혜의 욕구가 남아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신자에게서 기도의 욕구가 완전히 사라질 수는 없습니다. 살았으나 실상은 죽은 자라고 불려졌던 사데 교회의 예에서 나타납니다. 7교회 중 가장 책망을 받았던 교회였는데, 그 교회를 향해서 “너는 일깨어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건하게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사데 교회가 죽어가고는 있지만 굳건하게 할 것, 즉 은혜가 남아 있다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신자는 기도 욕구의 불씨가 남아 있습니다. 작은 불씨가 남아 있으면 곧 불꽃이 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에게서 기도가 사라졌고 예전과 같은 기도의 능력이 없다고 절망할 것이 아니라 작은 불씨와 같은 욕구라도 있으면 이것 가지고 기도해야 합니다. 상습적으로 기도를 짧게 하는 것은 가사 상태에 도달 한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이 특별한 방법으로 붙들어주지 않으면 정욕으로 가득 찬 사람입니다. 자신 속에는 영적인 전쟁이 없습니다. 겉사람은 후패하나 속사람은 날로 새롭도다 라는 신실한 영적 상태가 사라진 것입니다. 비무장 상태의 이 사람은 싸울 수 있는 힘과 능력을 다 잃어버린 것입니다. 청교도 존 라일은 “우리 안의 죄는 기도를 죽이고, 기도는 죄를 죽입니다.” 기도하지 않는 것은 죄를 살리는 것입니다.
2. 마음의 깨어짐이 없는 신앙생활에 만족하도록 유혹합니다.
기도를 하기는 하는데 마음의 깨어짐은 없고 형식적인 기도만 합니다. “내가 주께 부르짖을 때에 주께서 내 영혼을 장려하시고 응답하셨습니다.” 기도 안에는 우리를 거룩하게 하는 힘이 있고, 우리의 무너진 틀들을 복구시키는 거룩한 작용들이 있습니다. 그런 쇄신의 작용을 하기 때문에 처음에 기도할 때는 아주 힘들게 됩니다. 의무감만을 가지고 기도할 때는 아주 힘듭니다. 이것은 우리 안에 있는 죄들이 반역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기도를 되풀이하는 동안 우리 기도는 활발하게 됩니다. 이것을 위해서 마음이 깨어짐이 필요합니다. 이 깨어짐은 죄에 대한 사랑을 깨뜨리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악한 것들에 대한 사랑이 사라지게 됩니다. 또한 이 깨어짐은 자기 의가 깨뜨려지는 것입니다. 기도의 핵심이 예수님의 십자가임을 알게 되기 때문에, 죄에 대한 사랑을 깨뜨리는 것입니다. 기도가 없으면 부패하는 영혼을 보호할 수가 없습니다. 처음의 영혼의 상태로 돌아갈 수가 없습니다. 기도하지 않고 영혼이 부패해도 그저 육신이 먹고 사는 것으로 만족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이고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데, 이런 삶은 하나님과 원수 맺는 삶입니다. 세상에 가서 아버지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살면 마지막에 영혼에 남는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이제 기도하는 데도 영적 부패를 막지 못하는 이유를 살펴보겠습니다.
사실 우리가 부패하지 못하도록 막는 것은 기도 자체가 아니라 기도를 통해 역사하시는 성령의 사역입니다. 예수님을 본받는다고 하는 것은 생애 속에 녹아 있는 성품과 인격의 자질을 본받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던 예수님의 인격, 자신을 부인하던 고매한 자기 결단, 이웃을 사랑하던 제자를 끝까지 사랑하던 애정 어린 극기의 삶이 바로 예수님을 본받는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처럼 40일 금식 기도했더라도 예수님의 성품을 본받지 못하면 예수님을 본받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기도가 가져야 할 조건이 있습니다.
1. 영적으로 열렬한 기도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은 소리지르라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온 몸을 들썩이라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육체의 열렬함이 아닙니다. 마음에서 기도를 길어내는 연습을 실천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연습해야 할 것은 마음 밑바닥에서 기도를 길어 올리는 진지함과 끈질김, 마음의 투쟁 등이 있어야 합니다. 통곡을 억제하고 자신의 기도 방법이 사람들에게 드러내거나 방해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나의 기도가 마음 깊은 곳 밑바닥에서 뒤집히는가 항상 살펴야 합니다. 육체의 열렬함과 마음의 열렬함을 구별해야 합니다. 어떤 경우 열심히 기도했는데 뭘 기도했는지도 모르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것은 육신의 열렬함만 있는 상태입니다. 마음 깊은 밑바닥에서 나오는 열렬함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 없이는 영혼의 부패 상태를 막을 수가 없습니다.
2. 지속적인 기도가 필요합니다. 산소용접기는 분필로 철근에 금을 긋고 인내심을 갖고 대고 있습니다. 불순물이 떨어지고 달구어진 후 굵은 철근이 잘라지는 것입니다. 산소용접기가 불이 많이 나지만 지속적이지 않으면 철을 자를 수 없습니다. 열렬함은 부지런함과 손잡고 가야 합니다. 육체의 게으름과 열렬함이 만나면 반드시 하나만 이기게 됩니다. 게으름이 열렬해지든지 열렬함이 깊어지든지 합니다. 기도가 짧으면 기도의 능력이 담길 수 없습니다. 생활의 태만과 기도의 태만은 함께 갑니다. 열렬하게 살아야 기도도 열렬해집니다. 기도를 위해서는 삶 전체가 개혁되어야 합니다. 바운즈는 “한 사람의 사람됨됨이는 하나님을 향해 기도할 때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은혜의 자리에게 부패하게 되는 것을 막는 것은 열렬하게 지속적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런 기도를 통해 성화를 이루어 가시는 신자들 되길 진심으로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