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창조된 소명자

엡 2:10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에베소서 1장에서 우리의 창조됨이 얼마나 영광스러운지 외칩니다. 그리고 2장에서는 본질상 진노의 자녀였던 자신의 어두운 과거를 상기시키면서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구원이 얼마나 큰 것이고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라는 것을 알립니다. 인간의 모든 죄를 능가하시는 하나님의 크고 위대한 사랑을 새겨주어 영광의 기업이 얼마나 풍성한지 알기를 원합니다. 이런 구원의 역사는 복음으로 말미암은 것인데, 구원에는 소명이 포함되어 있음을 알려줍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의 기업이 얼마나 큰지 염두에 놓고 구원에는 소명이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영광스런 기업이 어떻게 주워졌고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바울은 에베소 교인들에게 은혜의 구원이 행위로부터가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으로부터 된 것이기에 자랑할 수 없다 하면서 우리가 누구인지를 보이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만드신 바라” 우리는 성도이기 전에 인간으로서 하나님의 손에 의해 만들어진 존재입니다. “만드신 바”라는 희랍어는 “포이에마”로 제작물, 혹은 장인들이 솜씨를 갖고 만든 작품, 기구, 도구, 창작물을 의미합니다. 우리 인간이 만들어진 바라고 하면 우리는 전적으로 하나님께 빚진 자들입니다. 구원을 받고 나면 우리는 과거에는 희미했던 “나”라는 “존재의 의미”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존재는 전적으로 그분에 의해 창조되었기에 그분을 위해서 살아야만 합니다. 우리 주위를 한번 보십시오. 우리는 인간이 제작한 것에 의해 둘러쌓여 있습니다. 이런 모든 것들은 어떤 목적을 위해 만들어진 것입니다. 어느 하나도 제작자의 의도 없이 만들어진 것은 없습니다. 인간이란 존재는 만들어진 수공품보다 훨씬 더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목적과 의도가 없이 사람을 만드시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의도가 있어서 나를 만드신 것입니다. 그래서 인생에 있어 가장 중요한 일은 하나님이 나를 만드신 목적을 깨닫는 것입니다. 우리는 거듭난 이후 또 한번의 탄생이 필요한데 내가 어떤 소명을 갖고 이 땅에 태어났는지를 아는 것입니다.
참신자만이 경험하는 평화,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고 내가 맡겨진 인생의 분깃을 살아가는 안정감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만 하고 실천하지 않고, 은혜를 간구하지 않으면 자신의 소명을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만드시고 세상을 가꾸기 위해서 사람을 만드셨습니다. 자신을 이해할 수 있도록 자신과 교제하도록 인간에게 영혼을 주셨습니다. 세상을 이해할 수 있도록 지성을 허락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무 것도 필요치 않은 분이 인간을 만드시고 인간과 관계를 맺기 기뻐하신 것은 인간을 통해 자신의 선하심과 인자한 사랑을 한없이 부어주시고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통해 가꾸고 돌보아 자신을 알도록 하시기 위함입니다.
우리는 회심 전에 인생의 고통스런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정말 힘든 것은 인간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차라리 돌덩이, 풀포기였으면 얼마나 좋을까? 매일 아침 죽음을 생각하면서 눈을 떠야 했습니다. 인간은 혼자서는 자신이 왜 태어났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런데 모든 것이 충분하시고 부족함이 없으신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하나님을 사랑하라”. 예수님을 믿어도 신앙이 식으면 하나님이 이기적이라고 생각합니다. 후일 주님의 지식이 쌓여가면서 깊이 감격했습니다. 도대체 우리 인간이 무엇인데 당신을 사랑하라고 명령하십니까? 사랑하지 않아도 손해가 없는데, 하나님은 질투하면서까지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사실 이런 사랑은 하나님을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를 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감격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그렇게 만들어주신 장본인입니다. 사람이 무엇이관데 만드셨을 뿐만 아니라. 그렇게 사랑하셔서, 아무리 우리 인간이 사랑하지 않아도 부족함이 없건만,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해야만 우리가 가장 행복함을 아시기에 당신을 사랑하라고 강력히 채찍질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을 위해서가 아니라 당신을 사랑하는 그 사랑 안에서 우리는 가장 행복할 수 있기에 우리를 부르신 것입니다. 참된 길을 알아도 그것을 행할 힘이 없으면 은혜를 주셔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삶으로 들어가도록 하셨습니다.
신학교 시절 가난하고 못 먹고 김밥하고 컵라면 먹는 사람이 참 부러웠습니다. 하지만 인천의 작은 교회를 섬겼는데 매일 기뻤습니다. 주님을 사랑하니까 그랬던 것입니다. 우리의 참된 기쁨은 하나님을 사랑할 때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인간을 만드신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서 사는 삶은 인간이 보기에는 참 아픈 삶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온전히 사랑하면서 당신 안에서 행복해지라고 우리를 부르신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께 드린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우리가 열심히 하나님을 섬긴 것은 다시 되돌아 와서 우리를 행복하게 한 것입니다. 그렇게 살라고 하나님은 우리를 창조하신 것입니다. 이 사실을 새겨야 합니다. 하나님은 내가 당신을 사랑할 때에 우리가 가장 행복하기에 당신을 사랑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지으심을 받은 자니”
신자는 그리스도께서 창조하신 사람입니다. “만드신 바라”가 make라면 “지으심을 받은”은 create입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인간이 타락했을 때 원래 인간의 모습으로 바꾸신 것이 완전히 새로운 작업임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완전히 썩어서 물이 흐르는 시체와 같은 존재인데, 예수님이 재창조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굳게 붙잡아야 할 것은 하나님의 구원에만 있어서는 안됩니다. 구원은 궁극적인 목적이 아니라 목표로 향하게 하시는 과정입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 모든 우주의 창조 계획과 영광을 드러내기 위한 창조가 인간의 타락 때문에 다시 창조하시는데 그게 구속입니다. 그 구속은 하나의 중요한 씨앗이 됩니다. 그 구소된 자들은 재창조하셔서 모으시고 교회를 이루십니다. 그리스도의 지체가 된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큰 몸을 이루면서 세상을 구속하고 전도하면서 세상 문화와 문명을 하나님이 창조하신 목적에 맞게끔 고쳐나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자는 창조, 구속, 재창조의 과정을 겪게 됩니다. 하나님의 왕국에 대한 고뇌가 없는 교회는 병들게 됩니다. 성도들의 현실은 빚에 쪼들리고, 결혼 걱정, 얘 없어서 걱정, 전세값 없어서 걱정이라고 하면서 거기에 집중합니다. 우리가 은혜 받고 주님을 섬길 때는 여유가 있어서 그렇게 하는 것 아닙니다. 만약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우리 개인의 현실적 문제들을 극복하길 원하면 그것을 초월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원대한 계획에 마음을 집중하면서 하나님의 생각에 고정시키고 고민하면서 살아갈 때 이것들이 이루어주십니다. 마 6:33 “먼저 그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여기서 “모든 것”이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는 것들입니다.
여러분 우리 개개인의 무수한 문제들은 과거에도 지금도 미래에도 계속 생겨날 것입니다. 이런 문제들이 생겨날 때 진지하게 기도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여기에 묶여서 구원하신 계획이라든지 하나님을 위해 살 기회를 잃어버리는 것은 올바른 것이 아닙니다. 원대한 하나님의 소명을 내팽개치고 개인의 것에 집중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만드셨고 계획이 있게끔 만드셨는데, 자신의 창조된 목적을 알 수 없는 비참한 존재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사람들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구원해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에도 계셨습니다. 이 세상은 그리스도 예수라는 관을 통한 것입니다. 창조된 모든 인간이 범죄해서 깨뜨려져서 창조된 목적대로 질서를 이루지 못하기에 재창조도 예수님을 통해서 하신 것입니다. 재창조의 첫 단추가 예수님이 성육신하신 것입니다. 그 분은 우리를 위해 죽으시려면 완전한 하나님, 또 참 사람이어야 했습니다. 그렇게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인간의 모든 죄를 담당하신 것입니다. 하나의 영적인 연합으로 묶으시려고 창조하신 것입니다. 사람을 너무 사랑할 때 상대방이 아프면 자신의 몸도 아프게 됩니다. 그래서 사랑 많이 하면 상대가 아픈 것을 알게 됩니다. 만약 타락하지 않고 상호연관을 하면서 산다면 얼마나 서로 연관되었을지 생각해보십시오. 죄를 짓고 그런 모든 연관이 다 망가졌습니다. 예수님이 오셔서 당신은 죄가 없으시지만 저주의 징계를 받으신 것입니다. 그것을 통해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재창조된 것입니다.
구원 안에 있는 소명을 따라 살지 않으면 행복해질 수 없습니다. 원리는 아주 단순합니다. 그런데 그 소명으로 돌아가는 길은 힘든 길입니다. 우리는 구원만 받으면 끝나는 것 아닙니다. 문제는 우리가 복음 안에 있는 소명을 따라 살아야 하는데, 어떻게 살라는 것일까요?
이 소명은 하나님의 나라의 소명인데, 이 소명도 우리 개개인에게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을 때 세 가지 수단을 사용하십니다. 말씀, 성령, 믿음을 통해 구원 받습니다. 주체인 성령이 복음을 사용하셔서 믿음을 갖고 구원받게 하십니다. 구원 받으면 우리는 교회에 접붙여집니다. 복음 밖에 떨어져 있던 사람들이 교회 안에 접붙여지는 것입니다. 우리 개개인도 공동체인 교회 속에서 이루어진 복음을 통해 구원 받습니다. 성령의 역사도 교회에 있고 믿음도 교회에서 생김으로해서 구원받는 것입니다. 우리는 믿자마자 영적인 보편 교회의 핏덩어리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소명은 당연히 혼자 동떨어진 소명이 아니라 교회에 주시는 소명을 연장선상에 있습니다. 예수님은 분명히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면 땅끝까지 이르러 복음의 증인이 되리라고 하십니다. 하지만 초대교인은 예루살렘을 벗어나지 않습니다. 스데반이 죽은 뒤에야 흩어지기 시작합니다.
여러분의 소속은 어디입니까? 주님이 “비상!”하면 달려갈 곳이 어디입니까? 위수지역을 이탈하지는 않았습니까? 소명을 지키면서 자신의 위치를 지키고 있는 사람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됩니다. 우리에게는 소속이 있습니다. 나에게 맡겨주신 귀한 소명이 있어서 이것은 내 소명으로 여겨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마음이 저리도록 이루고 싶은 소원이 있어야지 간절한 기도가 나옵니다. 일주일 동안 분투하며 살다 나온 사람들은 간절한 예배를 드립니다.
엡 2장 “그 안에서 서로 연락하여 성전이 되어 가고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교회에 어떤 종류의 교인이 모였는가요? 한 시대의 부흥과 개혁의 바람이 일어나면... 교회 끊임없이 고민하면서 경건, 왕국의 소명을 가지고 섬기면서 하나님의 뜻인지 절실하게 점검해야 합니다. 만약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재창조하지 않으셨다면 우리는 여전히 죄 가운데 살아가는 허무한 사람들이었을 것입니다. 짐승처럼 살아가는 세상의 수많은 사람들을 보십시오. 자기를 구원해주신 하나님의 계획이 무엇인지 모르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누군가 인생에 대해서 가르쳐 주는 사람들이 없기에 방황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여러분을 기적처럼 건져주셨습니다. 자로 잰듯이 여러분을 인도하셔서 주님의 손길이 아니었다면 돌이키지 않았을 여러분을 하나님이 돌이키셨습니다. 하나님의 큰 사랑으로 구원해 주셨습니다. 여러분 보다 존경받고, 죄짓지 않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국하고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해 주신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행하는 것을 다 아심에도 불구하고 우리 한 사람 한 사람 구원해 주셨습니다. 이 큰 은혜가 어떻게 우리에게 주어졌는지 설명할 수 없습니다. 다만 알 수 있는 것은 스스로 탈영한 우리들을 주님의 군사로 불러주셔서 당신의 나라를 위해 소명을 이루기를 원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눈을 들어 하늘 보라, 어지러운 세상 중에, 곳곳마다 상한 영의 탄식 소리 들려온다”
이 세상에는 너무 할 일이 많습니다. 그것을 생각한다면 가슴이 터질 것 같습니다. 이렇게 주님을 섬길 일들이 전 세계에 흩어져 많은데 구속함을 받은 당신의 백성들은 다 어디 가서 무엇을 하고 있나요? 하나만 가지고 봉사해도 큰 영광을 돌리는데...정말 우리의 인생은 주님께 빚진 자입니다. 당신의 피로 구원해 주셔서 덤으로 사는 인생이라고 생각하면 우리의 물질도 재능도 젊은도 내 것이 아닙니다. 인생이 아무 것도 아닙니다. 세월이 살같이 빠르게 지나니 아무 것도 한 일 없이 허무하게 지나가지 말시기 바랍니다.
영적 철책선 으로 돌아가십시오. 오늘이라고 일컫는 날 동안에 충성스럽게 살면서 “이 벌레 같은 나 위해 큰 해 받으셨나” 주님 앞에서 살다가 죽으면면 그 십자가 보답할 수는 없지만 “영적 전투복을 입고 하나님의 소명 이루는 자리에 있었습니다”라고 고백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