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머리되심

골로새서 1:15-20

15. 그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 자니
16. 만물이 그에게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보좌들이나 주관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17.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18.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라 그가 근본이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자니 이는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요
19. 아버지께서는 모든 충만으로 예수 안에 거하게 하시고
20.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을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케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위 말씀은 탁월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창조된 이 세계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으며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해 이 땅에 교회를 주신 궁극적인 원인이 무엇인지를 밝히고 계십니다. 우리 신앙은 매일 매일 반복되는 지루한 삶이라고 느껴서 우리의 끝은 과연 무엇인지 바로 알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이런 문제의식을 해결하기 위해 교회의 역사 속에서 줄곧 내려왔던, 그리고 종교개혁자들에게 재발견되었던 그리스도의 머리되심에 대한 사상을 숙고해 봐야 합니다.

먼저, 하나님의 창조에 있어서 예수님은 어떤 역할을 하신 것일까요? 우리는 보통 예수님을 우리의 구원과만 관련시키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예수님은 하나님의 창조가 구속만큼이나 예수님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본문 15절에서 예수님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을 거울로 비추이신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그리고 그 예수님이 먼저 나신 자라고 하십니다. 한 하나님의 본질에서 또 다른 인격이신 예수님이 나오셨으니 이것이 바로 삼위일체입니다. 한 하나님이 먼저 계셨고 거기서 예수님과 성령님이 나오셨습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 두 나라를 지으셨습니다. 천상나라와 지상나라를 만드시고 천상나라는 천사들이 돌보도록 하시고, 지상나라는 인간들이 하나님 닮은 영혼으로 다스리도록 하셨습니다. 이 두 세계는 따라서 영원합니다. 천상나라만 남고 새로운 세계가 생긴다는 것은 잘못된 교리입니다. 이 지상의 세계도 천상 세계도 모두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것입니다. 밤하늘의 불꽃놀이를 보면 동일한 기계로 폭죽을 쏘지만 빛깔이 다르게 나타나는데 그것은 폭주의 재료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각기 다른 천상 재료, 지상 재료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냅니다. 16-17절에 보면, “만물이 그에게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보좌들이나 주관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고 합니다. 여기서 보이는 것은 지상나라이고, 보이지 않는 것은 천상나라입니다. 지상나라와 천상나라의 모든 것들이 그리스도를 위해 창조되었고, 예수님은 그 만물보다 먼저 있었다고 합니다. 결국 그리스도를 머리로 해서 두 세계가 창조된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이기 전에 천상나라와 지상나라의 머리이신 것입니다. 이 두 나라는 예수님 때문에 존속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중보를 통해 창조되었기에 사도요한은 “그로 말미암지 않고는 있는 것이 없느니라”라고 말합니다. 각자 각자 모든 사물은 모두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는 창조의 중보자이십니다.
하나님의 창조를 보면, 아무렇게나 이 세계를 창조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 안에 모든 세계에 대한 계획이 있었습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으로서 이 세계를 창조하신 것입니다. 2세기 교부 이레니우스가 그리스도의 머리되심 교리를 말합니다. 이 교리로 영지주의와 맞서게 됩니다. 이레니우스는 사도요한의 제자 폴리갑의 제자였습니다. 중세에 가서 토마스 아퀴나스가 거부하게 되고 개혁자들이 재건하게 됩니다. 교회는 고난을 받지만 그리스도가 악을 도말하셔서 하나님의 왕국을 이 땅에 완성한다는 사상입니다. 오늘날 우리 신앙은 세속주의에 물들어 있습니다. 예수님을 통해 성공하려는 질병에 빠져 있습니다. 신자들이 우선 이 교리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이레니우스에 따르면, 하나님 아버지는 두 손으로 창조하셨습니다. 한 손은 하나님의 지혜이신 그리스도시요, 또 한 손은 하나님의 사랑이신 성령이십니다. 하나님은 지혜와 사랑으로 이 세상을 창조하신 것입니다. 태초에 수면 위에 하나님의 영이 있었고 하나님의 말씀이 있자 창조가 이루어집니다. 성자 예수님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지혜와 계획의 보고(寶庫)였습니다. 작은 꽃씨 안에 예쁜 꽃과 싹이 들어 있습니다. 그것이 온도와 습도, 햇빛이 맞을 때 스스로 발현이 되면서 아름다운 꽃이 됩니다. 그 모든 되어질 것들이 씨앗 안에 있지만 시간이 펼쳐질 때 드러나게 됩니다. 창조의 계획도 시간이 펼쳐져 나가면서 천상의 세계와 지상의 세계로 펼쳐져 나가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령 안에서 하나님에 의하여 이루어진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의 요체가 무엇입니까? 바로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배우는 목적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령 안에서 우리 하나님을 위하여 사는 것이 무엇인지 터득하기 위해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하나님에 의해 창조된 인간이 하나님을 위하여 살지 않고 행복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을 위해 살 때 가장 행복한 것입니다. 이 올바른 지식이 없이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방황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지혜이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계획을 그리스도에게 두셨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깊이 묵상하면 그리스도의 망원경을 통해서 하나님이 이 세상을 창조하신 목적과 나를 창조하신 목적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때 우리는 올바로 살 수 있는 큰 비밀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만물이 그리스도를 통해 창조되었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교통이 이루어집니다. 이런 상태가 머리의 상태와 흡사하기 때문에 머리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통해 창조된 만물은 또 그리스도의 중보를 통해서 하나님께 바쳐집니다. 한 통로이신 그리스도의 위격 안에서 바쳐져서 하나님께 바쳐지는 것입니다. 이게 바로 그리스도의 머리되심입니다. 창조된 후에도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에게로 집중되도록 하십니다. 이런 창조의 사실이 구속 안에서도 그대로 나타납니다.
성령이 오셔서 제일 먼저 하신 일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우리를 위해 죽으신 분이라는 것을 알게 하셨습니다. 그리스도를 통해서 성령을 경험하게 하시고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를 통로로 하나님께로 향하게 하십니다. 하늘에 있는 것들도 성령 안에서 교통을 이루면서 그리스도께 붙어 있게 됩니다. 특별히 인간들이 머리되신 그리스도로부터 나와서 그 분을 중심으로 사랑을 하고 삼위일체와의 사랑 관계 맺기를 원하셨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창조되었을 때, “내 살 중의 살이요, 내 뼈 중의 뼈”라고 하면서 아름다운 사랑을 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왜 성육신 하셨을까요?
이레니우스를 비롯한 종교개혁자들은 성육신이 죄인인 우리의 구원을 위한 것도 맞지만, 만약 인간이 죄를 짓지 않았을지라도 성육신하셨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세상에 펼쳐진 구원의 모든 계획들은 씨앗과 같이 포개어진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도 몰랐는데, 인간이 타락해서 우연하게 예수님이 성육신했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성육신의 궁극적 목적은 이 세상에 있는 인간들을 향한 하나님의 자기 드러내심입니다. 하나님 자신이 누구인지 드러내고 어떤 삶을 살기 원하시는지 보여주시기 위해 예수님이 성육신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이 되셔서 살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순결한 영광을 드러내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성육신이 하나님의 자기 전달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이 무엇이고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확실하게 보여주신 것입니다. 죄가 들어오지 않았어도 인간 되신 예수님의 삶과 인격은 찬란했을 것이고, 그것을 통해 우리의 본이 되길 원하셨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 예수님과 접붙이게 됩니다. 죠나단 에드워드 목사님은, 하나님의 가장 큰 기쁨은 신랑 예수님께 신부이신 교회를 짝지어주는 것이라고 합니다. 만약 인간이 타락하지 않았다면 예수님은 성육신하셔서 하나님을 찬란히 드러내는 모습을 분명하게 보면서 그분을 본받아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인간의 죄로 인해서 영광을 드러내시는 예수님은 그 죄인들에게 고난을 받으셔야 했던 것입니다.
원래의 창조 목적에서 멀리 떨어져 영적으로 단절된 인간들을 차마 보실 수 없어서 예수님이 대신 죽으시고 우리의 죄를 모두 대속해서 구원해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구원은 우리가 다하지 못한 순종을 그리스도가 대신 행하시고 죄값을 대신 지불하시고 돌아가신 것입니다. 하늘의 자원과 땅의 자원으로 살아야 할 우리가 편협된 자원으로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영광과 고난을 동시에 묵상해야 합니다. 잠시 고난을 받더라도 두려워하지 않을 담대함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해 재창조되어 다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자리에 들어가게 됩니다. 이것을 위해 그리스도를 교회의 머리도 삼으신 것입니다. 여기에 세가지 단계가 있습니다. 에베소서 1장 10절에 보면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통일되게 하다라는 말은 희랍어로 “아나케팔라이오마이”로 “아나”는 “다시”, “케팔라이오마이”는 “머리되다”란 의미입니다. 즉 “다시 머리되신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언젠가는 머리되신 적이 있고, 머리되신 적이 없다가 이제 다시 머리되시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이 세 과정이 있었습니다.
우선 머리되신 적이 있었다는 것은 창조의 머리되신 예수님을 말합니다. 하늘에 있는 것, 지상의 있는 모든 것들은 예수님을 통하여 창조되었습니다. 엄밀하게 말한다면 교회가 있기 전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의 머리이십니다. 만물의 머리이신 예수님은 창조의 머리이신 예수님이십니다. 그렇지만 만물은 도덕적인 피조물들이 아닙니다. 인간만이 영혼을 지니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 호칭할 때는 언제인가요? 위격들 안에서, 그리고 만물 안에서, 구원받은 자들 안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예수님은 만물, 모든 인간의 머리이십니다. 이렇게 창조의 머리되시지만, 인간이 죄를 짓게 됩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향하여 살아야 할 인간이 하나님을 등지려는 의지였고, 예수님을 통해 살아야 할 인간이 지혜 없이 살려는 의지였고, 성령님 안에서 살아야 할 인간이 사랑 없이 살려는 의지인 것입니다. 그로 인해 인간관계도 깨지게 됩니다. 부부관계도 깨지고, 형제관계도 깨지면서 미워하고 살인하게 됩니다. 창조 세계의 모든 바른 관계가 사라지게 됩니다. 그리고 무서운 세상이 됩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시기에 모든 것을 거둬 가신 것입니다. 거룩한 우리 몸에 술 퍼부으면 성령을 거둬 가시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사람들이 사는 세상이 양육강식으로 가득 찬 것을 뼈저리게 느끼도록 하시고 구원의 방법을 마련하셨습니다. 그것을 위해 교회를 먼저 택하십니다. 복음을 전파하게 하시고 한 사람 한 사람이 회개함으로 예수님께 접붙이게 하시고 그런 사람들이 모여 한 성령 안에서 살게 하십니다. 그런 감격이 있을 때 교회 오는 것이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그럴 때는 사람들의 결점이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기도가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남의 기도 제목이 내 기도 제목이 되면서 나의 기도 제목은 우선 순위에서 밀려나게 됩니다. 예수님이 교회의 머리가 되셔서 이런 일이 가능하게 되는 것입니다.
말씀의 빛 앞에서 내가 얼마나 죄인인지 깨닫고, 또한 주님께 받은 사랑이 얼마나 큰지를 느껴야 합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깨지고 변화되어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머리되신 예수님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게 됩니다. 힘들 때도 있고, 넘어질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때마다 교회 지체들을 보면서 힘을 얻으면서 전진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교회입니다. 그러다가 모든 타락의 역사는 종결될 것이고, 모든 성도들을 머리되신 그리스도께 연결시키시고 성령 안에서 연합을 이루게 하실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만 순결히 사랑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사는 한 무리가 될 것입니다. 이 교회는 그래서 영광스런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그리스도로부터 갈갈이 찢어진 분열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완전히 치료되어 그리스도께 접붙여질 때 창조의 영광을 드러낼 것입니다. 그 날을 바라보면서 “고난도 슬픔도 이기게 하옵시고 주 말씀 따라서 용감하게 하소서”고 고백하면서 쓰러진 지체를 일으키고 상처난 지체들을 싸매주면서 서로를 격려하며 창조시의 무너진 질서를 회복하여 찬란한 영광에 참여하게 됩니다. 그래서 오늘도 말씀을 붙잡고 환란과 핍박도 두려워하지 않으면서 확신을 가지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죄로 고민하는 분들도 다시 예수님을 머리로 접붙여지길 소망하면서 사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