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의 전달자로서의 교회

마 6:33,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이방인들이 구하는 기도를 예수님은 지적하면서 외식하거나 중언부언하는 기도를 고치도록 하십니다. 오늘 본문은 기도의 대상에 대한 경고를 하시면서 이방인들처럼 기도하지 않을 것을 당부하십니다. 우리의 삶은 사실 예수님을 믿고 있지만 실상에 있어서는 이방인의 삶에 오염되어 있습니다. 형식은 기독교적이지만 그 안의 내용들은 이방 사상들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이런 사상은 어느 날 갑자기 들어온 것이 아니라 오랜 세월동안 물들어 가기 때문에 깨어있지 않으면 분별해낼 수 없는 것입니다. 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세속적인 존재가 된 것입니다.
이방인들의 기도 특징은 자기중심적입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에 대한 기도였던 것입니다. 중심이 자기이기 때문에 그것에 사로잡혀 기도하는 것이 이방인들이었던 것입니다. 자기중심성이 깨뜨려진 가운데 하는 기도가 오늘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자기중심적인 신앙생활이란 무엇일까요?
우리는 과거 2000년간 유지되던 신앙의 유산을 붙잡지 못하고, 시대 풍조에 휩쓸려가고 있습니다. 지금의 시대 풍조는 한마디로 개인주의, 자아실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교회도 이에 편승해서 신앙의 유산을 포기하고 있습니다. 이것과 함께 개신교의 인구는 계속 줄고 있습니다. 교회에 마저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성공을 위해 신앙을 이용하는 교회들이 늘어나게 됩니다. 이천 년간 계속된 신앙의 유산은 오직 하나만 진리라고 외치는 것입니다. 이것이 개신교의 톡특성이고, 포스트모더니즘 사상과 코드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가톨릭도 불교도 서로 종교 대화를 시도하면서 이런 시대 풍조와 코드가 맞아떨어지지만 개신교는 그럴 수 없는 것입니다.
종교다원주의가 지금 시대의 가장 큰 위기입니다. 종교다원주의란 거대한 세계 종교들의 개념과 인식들, 궁극적인 종교 대상을 일치시키려는 사상입니다. 그들은 각기 다른 능선에서 시작했어도 산 정상에서 모두 만날 수 있다고 여깁니다. 그래서 등산을 하면서 서로 다른 종교일지라도 서로 격려하면서 살자는 것입니다. 여기에 편승하여 문화와 문학에서 각기 추구하는 종교들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마치 팬클럽처럼 자신이 좋아하는 작가, 배우들을 따라 깊은 숙고 없이 따라가고 있습니다. 개신교도 에큐메니컬 운동을 전개하여 종교 간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교회에서는 죄에 대한 설교가 사라집니다. 시대사상에 편승한 결과입니다. 그 대신 하나님이 사랑하니까 성공하길 원하고 행복하길 원하신다라는 설교가 주를 이루게 됩니다. 이 대표적인 예로 100만부가 팔린 “긍정의 힘”의 조엘 오스틴은 3만 명이 넘는 성도를 거느린 교회를 목회하고 있습니다. 그가 한 래리 킹과의 인터뷰를 면밀히 살펴본다면 그는 전통적인 기독교인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이 책은 인간이 자신을 확장하는데 행복이 있다고 가르칩니다. 죄를 회개하라는 가르침이 아니라 주님은 네가 성공하기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이 책은 회심을 불러일으킬 수 없습니다. 교회도 자기를 확장해가는 가운데, 자기중심적으로 흐르는 가운데 만족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많은 교회에 행해지고 있는 수많은 프로그램들을 살펴볼까요? 상당 부분이 인간중심적입니다. 인간이 자아를 실현하고자 하는 모든 욕구를 교회라는 이름으로 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 중심으로 하는 시대 풍조를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꿈을 강조하고, 자기계발이 강단에서 외쳐집니다. 그러면서 교회의 대형화가 이루어집니다. 진리로 말미암아 자신을 깨뜨리기보다 삶에 활력을 주고 희망을 주며 긍정적인 자아관을 갖게 됩니다. 진정한 회개와 회심, 자신의 깨어짐 없이는 참된 신자가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그저 인간의 자아실현을 위한 머슴신(?) 정도 역할만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마 6:33,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예수님은 “너희는 먼저”라고 하면서 우선 순위에 있어서 자기중심적 기도가 나중에 가야 함을 말씀하십니다. 우선 순위에 있어서 먼저 구할 것이 있는데 그것이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통치 개념입니다. 하나님이 직접 통치하기를 절실히 바란다는 기도를 하라는 것입니다. 주님을 믿고 신앙을 고백하면 하나님의 통치를 받으며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살겠다는 고백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란 하나님의 의지를 말합니다. 자기중심에서 하나님 중심으로 변하지 않고서는 하나님의 의지를 이룰 수 없습니다.
진리의 근거는 성경이며 우리의 삶의 모델은 예수님이십니다. 우리는 거기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진리를 전달하기 위해 우리는 성공할 필요가 없습니다. 바울은 수감자였지만 자신보다 신분이 높은 간수에게 주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했습니다. 진리는 위대한 힘을 갖고 있어서 구원받을 자들을 강력하게 잡아채는 능력이 있습니다. 부인하던 하나님을 믿게 만들고 없다고 하던 진리 앞에 무릎을 꿇게 만듭니다. 우리의 신분이나 성공여부가 아니라 우리 속에 있는 진리와 예수 그리스도를 전해야 합니다. 세례요한의 고백,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망하여야 하리라”가 바로 이것입니다. 진리 없이, 예수 없이 번민하는 영혼을 긍휼히 여기면서 예수님을 전해야 합니다. 어두운 영혼에 진리의 빛이 들어가기를 간구해야 합니다. 진리를 갈망하는 지체들, 그 진리대로 살지 못해서 참회하며 위로부터의 위로를 간구하는 지체들을 보고 힘을 얻고 확신을 얻도록 해야 합니다.
신앙생활이 기분 좋게 하는 것 아닙니다. 진리는 진리를 따라 사는 사람에게는 기쁨이 되지만, 그렇지 않은 자들에게는 칼이 됩니다. 진리를 살지 않는 사람에게 교회 생활이 달콤하다면 그것은 독약인 것입니다. 우리의 상당한 시간은 진리를 어기려고 합니다. 그때 진리가 우리를 아프게 해야 우리는 진리를 따라 살 수 있습니다. 진리는 우리 기분을 좋게 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에서 말하는 진리이냐 아니냐 인 것입니다. 지금 세상은 한 덩어리가 되어 절대적 진리를 부정하고 있습니다. 과연 우리는 이것을 거스리며 살고 있습니까? 역사를 아무리 살펴봐도 복음진리가 대중에게 인기를 얻던 시기는 없습니다. 지금은 더 그런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를 위로하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진리를 파수하는 교회를 지키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이 시대 정신이 하나님을 거역하는 사조를 가졌지만 하나님은 그루터기들을 남겨두십니다. 자기중심의 개인주의를 가르침에도 불구하고 그 결국은 너무 비참합니다. 이 시대의 훌륭한 사상가라 치는 미셀 푸코는 동성애자로 죽게 되었습니다. 자기중심의 결국은 난잡한 성적 타락입니다. 로마서 1장 24절에 하나님을 마음에 두지 않는 자들은 그 몸을 서로 욕되게 하게 하셨다고 합니다. 현대인들이 아무리 기고만장(氣高萬丈)해도 결코 행복해질 수 없습니다. 돈도 쾌락도 명예도 결코 행복하게 할 수 없습니다.
진리를 섭취하고 마음을 다해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간구해야 합니다. 그 안에서 행복을 느껴야 합니다. 이 세상의 사람들은 그리스도 없이 진리를 찾고자 합니다. 그것은 진리가 아닙니다. 성경에 기초한 진리를 찾아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들은 이미 우리에게 주신 길을 따라 가는 것입니다. 이 길이 사실은 가장 가벼운 길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제 우리가 한 줌의 누룩이 되어 서 말의 가루를 부풀게 해야 합니다. 우리 교회는 대중적 교회일 수 없습니다. 주님을 만나고 자기를 깨뜨리고 그것 때문에 교회 나오는 신자들이 모여 있는 교회여야 합니다. 이제는 개인의 사적 문제로만 고민할 때가 아닙니다. 진리를 탐구하고 전하는 일에 전심전력하도록 일어나야 합니다. 우리의 정서와 감정을 모두 이 일을 위해 꿇어 복종케 해야 합니다. 자신을 신처럼 우상화하여 자기 자신만 행복감을 느끼도록 추구하지만, 우리 신자들은 이것을 거부하고 철저히 진리 전파를 위해 우리의 모든 것을 버려야 합니다. 이 일을 위해 우리가 부족함을 느낍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필요한 모든 것을 하나님이 더해 주실 것입니다.
시간이 없습니다. 인생이 짧습니다. 건강하게 살아간다해도 우리가 진리를 전파할 날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지식의 부요함, 그 분이 베푸신 놀라운 은혜를 아는 자로서 아직 세상에 이 진리를 알지 못하는 수많은 사람을 위해 외쳐야 합니다. 잠을 자지 않고 외쳐도 모자랄 은혜를 받았습니다. 우리가 전하지 않으면 누가 전하겠습니까? 나 하나 이 진리를 깨닫는 것으로 만족하지 말고 전해야 합니다. 내 문제 때문에 매일 고민하고 눈물 뿌리지 말고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해야 합니다. 비록 많은 곳에 나가 전파하지 못해도 이 지구 한 구석에서 끊임없이 하나님을 의지하며 하나님을 사랑하며 예수님을 본받아 형제를 용서하고 사랑하면서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무한한 행복인 것입니다.

이사야 11:9, "내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 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