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 죽임과 경건함

디도서 2장 11-14절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 우리를 양육하시되 경건하지 않은 것과 이 세상 정욕을 다 버리고 신중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에 살고 복스러운 소망과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으니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속량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들을 열심히 하는 자기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죄를 죽이는 신앙생활을 하지 않으면 고통 없이 죄를 계속 해서 삼키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가 싫어하는 음식이라도 기분 좋게 먹으면 소화가 됩니다. 하지만 냄새가 이상한데도 먹으면 반드시 탈이 나서 그 음식을 밖으로 내놓게 됩니다. 죄도 마찬가지입니다. 말씀과 기도 생활을 통해서 죄를 죽이는 삶을 살게 되면 어느 순간 죄를 짓게 되어도 시간이 흐르면 즉시 죄가 내 자신에게 고통을 주는 것이 느껴져서 결국은 하나님 앞에 그 고통을 못이겨 죄를 토설하게 됩니다. “하나님, 아무도 모르는데, 제가 이런 죄를 지었습니다. 하나님, 저를 용서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하게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사죄의 은총을 내리셔서 용서해 주심을 느낍니다. 이렇게 되면 우리의 내면은 죄와 친화적인 우리의 상태가 아니라 죄를 거부하는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죄를 죽이는 삶을 살지 않고 계속해서 형식적인 신앙생활을 하게 되면 자신의 내면은 죄에 대한 친근함이 생깁니다. 어떤 죄를 지어도 고통이나 통증이 생기지 않습니다. 그래서 절대로 회개하지 않게 됩니다. 회개하기 위해서는 죄에 대해 가슴 아픈 시간이 먼저 있게 됩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이런 사랑을 주셨는데, 내가 왜 이런 죄를 지었을까 하는 깊은 자책과 고통이 있기에 회개하고 사죄의 은총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죄를 죽이지 않으면 죄에 익숙해집니다. 기도의 문이 막히게 됩니다. 말씀이 깨달아지지 않습니다. 이때 죄를 죽이는 삶을 살면 이런 상황이 고통스럽다고 느낍니다. 하지만 죄 죽임이 없으면 말씀이 없어도 기도를 안 해도 자신이 왜 이렇게 힘든지 다른 수단으로 해결하려고 합니다. 하나님을 의존해야 해결될 자신의 문제를 다른 수단을 의존해서 해결하는 것이고, 깨닫지 못하는 자는 평생을 그렇게 살다가 그저 교회 출석하는 것으로 신자라는 데에 만족하고 삽니다. 교회 출석만 한다고 새사람되는 것 아닙니다. 은혜를 받고 죄를 죽이는 삶을 살 때, 그 영혼은 사는 경험을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못하면 죽은 것입니다. 로마서 8장 13절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하신 것은 교회 출석하고 천국행 티켓 받으라고만 하신 것 아닙니다. 교회 몇 년 다닌 것, 부모님이 장로, 권사인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죄를 향한 마음과 신앙이 예민하게 살아 있는가가 중요합니다. 우리는 죄를 생각하면 하나님의 사랑을 생각하게 됩니다. 죄를 지으면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생각하는 것은 자신의 정욕을 위해 하나님의 구원을 죄의 수단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저는 이 사실을 얼마나 뼈저리게 느꼈는지 모릅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는 것이 하나님 앞에 새로운 신앙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은 사실입니다. 이것은 양심의 정죄와 사단의 공격으로부터 보호해 줍니다. 내가 짓고 있는 죄, 하나님을 떠난 잘못에 대해 회개할 때, 우리는 큰 양심의 가책을 받게 됩니다. 이 상태가 계속되면서 견딜 수 없는 아픔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게 됩니다. “아 하나님의 은혜로 이 쓸데 없는 자 왜 구속하여 주는지 난 알 수 없도다” 하나님의 은혜가 자신의 죄로 인한 좌절로부터 건져내어 다시 일어서게 만듭니다. 그러나 죄를 지으면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떠올린다면 이것은 사단의 유혹인 것입니다. 죄 가운데서 나오지 않으면서 계속 뭉기적 되는 것입니다. 이때 하나님의 은혜는 하나님이 주신 것이 아닙니다. 신자가 죄 짓는 순간은 하나님 앞에 침을 뱉는 것과 같습니다. 죄를 지으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다고 하는 것은 신앙의 기만입니다. 이런 하나님은 공허하기 짝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하나님을 닮고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근원이 됩니다. 그런데 자신의 죄된 삶을 위해 하나님의 은혜를 말하는 것은 크나큰 죄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가 우리를 용서해 준 것은 사실입니다. 예수님이 피흘려 죽이신 것은 우리를 깨끗케 하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자신은 죄에 머물면서 하나님의 용서를 생각하는 것은 결국 자신의 쾌락을 위한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이 은혜를 주신 이유가 나타납니다.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 우리를 양육하시되 경건하지 않은 것과 이 세상 정욕을 다 버리고 신중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에 살고 복스러운 소망과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으니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속량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들을 열심히 하는 자기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 신자가 실패하는 근본된 원인이 무엇입니까? 다 착각하고 있습니다. 죄를 범하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과도하게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위로한다 하고 죄 짓는 영혼에게 하나님의 용서를 말하는 것은 그 영혼을 병들게 하는 것입니다. 죄를 죽이지 않고서도 우리의 영혼은 병들 수밖에 없습니다.
죄의 경중은 내가 느끼고 느끼지 않고가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에 달린 것입니다. 죄 죽이는 생활을 하면 작은 죄에도 떨게 됩니다. 에드워드 목사님 교회에는 만 5살(4년 11개월)된 아이가 매일 회개 기도를 하면서 예배를 기다렸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아주 작은 죄에도 십계명을 따라 울고 회개했다고 합니다. 범죄하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면 그것은 사단의 유혹입니다. 교회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잘못 가르치면 영혼 죽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에서는 위로한답시고 하나님의 은혜만 말해서는 안됩니다.

죄를 죽이지 않고서 신앙에 성공한 걸로 여기면 완전한 위선자가 될 것입니다. 열정은 있지만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의 열정이 아닙니다. 죄를 죽이지 않고서 허물어져버리면 침륜에 빠져서 완전히 패역한 자가 될 것입니다. 자신 속에 있는 죄를 보고 피 흘리기까지 싸워야 합니다. 죄는 아주 방탕한 모습이 무서운 것이 아니라 작은 죄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이 무서운 것입니다. 우리의 삶의 방향이 어디로 향하고 있습니까? 신자가 가야 할 곳과 가지 말아야 할 곳이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외식하는 삶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 죄를 죽이지 않으면 겉만 신자이고 속은 죄에 의해서 지배를 받는 삶입니다. 죄를 두려워하는 맘이 없으면 정결하게 될 수 없습니다. 교회 건물 보고 기죽는 것이 두려움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두렵고 그 말씀대로 살지 못하는 자신의 부패를 두려워해야 합니다. 교회가 내면의 세계를 변화시키는 힘이 없으니까 교회가 형식적이고 외형적인 것으로 기를 죽이려고 합니다. 이런 것이 외식입니다. 자신 속의 진정한 변화에 관심이 없고 외형에만 관심이 있습니가. 그러면서 사람들은 점점 더 메마르고 강퍅해지고 있습니다. 망가지고 있는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신자는 불꽃 같은 하나님을 향한 열정으로 살아야 망가지지 않습니다. 인간은 너무나 부패한 존재이기에 죄를 죽이는 삶이 없으면 결국은 완전히 타락한 사람으로 바뀌게 됩니다.
우리가 어떤 삶을 선택하면서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까? 자기의 죄를 깊히 뉘우쳐 본 사람들은 항상 불안한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나 혼자 죄를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은혜의 교리만을 생각해서 죄에 대해 긴장된 마음이 해체되면 파멸에 이를 것입니다. 벽과 같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죄를 죽이기 원하는데도 계속 동일한 죄를 반복하는 사람들 말입니다. 우리는 신랑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순결한 신부들이 되어야 합니다. 주님의 참 사랑을 알고 사랑의 감격이 있고, 죄를 죽임으로 십자가를 경험하고 주님의 품에 안겨 은혜를 맛보게 됩니다. 죄를 죽이는 삶 없이는 성공하면 위선자, 실패하면 배교에 이르게 됩니다. 일생을 사는 동안에 죄를 죽이는 것은 당연히 해야 할 일입니다. 이 자세를 흐트려뜨리면 안됩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없으면 우리는 소망이 없고 어떤 행복도 없다는 것을 우리는 고백했습니다. 우리는 죽기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살기를 원하는데 어찌 동일한 죄를 반복할 수 있단 말입니까? 우리는 죄를 죽이는 삶을 게을리 한 것을 회개해야 합니다. 가슴이 물같이 녹으면서 세상은 없고 나도 없고 구속한 주만 생각하면서 눈물 흘리는 회개를 한 적이 최근에 언제입니까? 도처에서 죄에 패배하고 있고, 그러면서 은혜는 마르고 있습니다. 피 흘리기까지 죄와 싸워서 자신을 정결케 하고자 하지 않으면 신앙의 진보는 있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형벌 주기 위해 이 말씀을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소원은 우리 모두가 산 자처럼, 생명을 누리면서 살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참 사랑을 깨달으면서 주님과의 더 깊은 교제에 들어가면서 우리가 경배할 수 있는 하나님이 있어 행복한 것입니다. 이런 삶을 살게 하시려고 우리를 택하시고 신자 삼으신 것입니다. 신자가 성도되려고 해야 합니다. 죄를 죽이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매 시간마다 하나님이 우리를 새롭게 하시고 부어주시는 은혜 없이는 우리는 살 수 없습니다. 우리의 죄 죽이지 않는 형식적인 신앙을 회개합시다. 기도합시다. 외식하는 삶을 살지 않도록, 우리의 육신을 복종시키고, 안일하게 살려고 하는 육체의 소욕을 버리고 교회와 성도를 섬기며 살도록. 이 길 외에는 우리의 생명 유지할 수 없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