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죽임이 없는 위선적 신앙

디도서 2장 14절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속량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들을 열심히 하는 자기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매일 매일 끊임없이 범죄하고 있는 내면의 욕구를 죽이지 않으면 우리는 반드시 죽게 됩니다.
죄를 죽이지 않으면 자기 자신을 향해 위험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위험합니다. 죄를 죽이는 삶이 없으면 하나님도 사랑할 수 없고 이웃도 사랑할 수 없습니다. 죄를 죽이지 않고 죄를 지으면서도 하나님의 은혜만 생각하면 이웃을 고통 중에 빠지게 만듭니다. 왜 그럴까요?
죄를 죽이지 않는 삶은 고통 없이 독약을 마시는 것과 같습니다. 담배를 처음 필 때는 뻐끔뻐끔 빨다가 좀 지나면 깊이 들이마시는 법을 알게 됩니다. 하지만 담배 연기가 폐로 들어가는 처음 순간 폐가 토해내지만 노력을 많이 해서 깊이 마시게 되며 회색연기가 나오게 됩니다. 이전에는 맑은 공기를 보면서 심호흡을 하던 사람이 담배를 물고 심호흡을 합니다. 그러면서 약간의 환각 작용, 즉 기분 좋은 피로감을 느끼게 됩니다. 이 정도까지 안가면 담배를 배울 수 없습니다. 이렇게 되면 폐가 완전히 니코틴으로 절어서 검붉은 것으로 변하게 됩니다. 이게 하루아침에 된 것이 아니라 천천히 됩니다. 이 상태가 바로 죄죽임이 없는 상태와 비슷합니다. 반복해서 죄를 짓는 동안에 용감하게 독을 마시는 것과 같습니다. 먹을 수 있는 모든 것이 먹는 것이 아니라 삼킬 수 있는 모든 것이 우리 몸에 상관없는 것이 아닙니다. 죄 지을 때는 모릅니다. 하지만 그것이 우리의 몸과 영혼에 치명상을 입히고 있습니다. 독이기 때문입니다. 죄죽임이 없이 신앙생활하면서도 돌이키지 않는 이유는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에게 귀한 약이지만, 은혜에 대한 잘못된 생각은 신앙생활에 독이 될 수 있습니다. 죄를 짓습니다. 죄가 반복됩니다. 동일한 죄를 계속 짓습니다. 도둑질하지 말라, 그런데 계속 도둑질 합니다. 몸과 맘을 정결케 하라, 그런데 육신의 쾌락으로 순결을 지키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고, 사랑이란 이런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죄에서 떠나지 않게 됩니다. 죄를 위해 하나님의 은혜를 이용하는 것입니다. 죄를 떠나기 위해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마귀가 주는 생각입니다. 파괴적인 결과로 떨어지게 됩니다. 죄를 행하면서 나도 어쩔 수 없이 이 상황에 온 것을 하나님이 아실 거야,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거야, 라는 모든 생각의 결과는 파멸입니다. 그런데 많은 신자들이 이런 식으로 생각합니다. 은혜로 위로 받으면서 자신은 더 많은 죄를 지으면서 짓눌려 살고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는 것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죄에 대한 두려움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죄에 대한 두려움은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인 것입니다. 순간의 즐거움 때문에 죄를 죽이지 못하면 결국 파멸에 이르게 됩니다. 죄에 대해 점점 담대해지고 죄를 향해 결단하고 떳떳해집니다. 이러면서 어떻게 은혜를 생각한단 말입니까? 은혜를 자기 정욕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하나님을 향한 경배와 감사가 없습니다. 이때의 약은 하나님을 진정 두려워함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두려움이 자신의 삶을 청산하고 바르게 살도록 하십니다. 그래서 이 두려움이 바로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는 증거인 것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면서 자신의 죄로 부패한 모습을 보게 됩니다. 죄 가운데 있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은혜를 죄를 짓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반복된 자신을 죄를 죽이지 않고는 결코 몸과 영혼이 살아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벌 중의 하나는 그냥 내버려두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버려두시면 형통한 것처럼 보일 있습니다. 그러나 그때 정직하게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목회하면서 수많은 임종을 보면서 하나님이 데려가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분들의 삶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분들이었습니다. 경외는 두려워함이 있는 마음입니다. 죄인을 향해 진노하시는 하나님을 향한 두려움이 있는 것입니다. 신자가 잘못된 길을 걸어가면 하나님이 깊이 벌하십니다. 그래서 신자들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정죄함이 없나니”라는 말씀을 생각하면서 죄를 일부러 범하면 안됩니다. 여기서 정죄란 구원과 관련된 정죄입니다. 이 세상 살아가면서 아름다운 삶을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는 죽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닙니다.
부흥은 항상 하나님의 은혜가 먼저 일어난 것이 아니라 죄에 대한 깊은 두려움이 일어납니다. 그 두려움이 하나님을 붙잡게 만들고 정결하게 하는 삶으로 나아가게 합니다. 우리는 거듭나면서 죄에 대해 예민한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죄를 싫어하게 됩니다. 이렇게 변화된 영혼이 되면 놀라운 이해력이 생깁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이해력이 없는 이유는 자신이 영적으로 변화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구원의 놀라운 은혜를 체험하기 전에 죄에 대한 두려움이 생기고 어떻게 하면 죄를 죽일지 고민하게 됩니다. 그런데 죄를 죽이기 전에 하나님의 위로, 사랑, 은혜의 말씀만 듣게 되면, 죄를 죽이기보다는 자신의 죄를 합리화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마지막에는 구원이나 신앙이나 하나님도 별 것 아닌 것으로 여깁니다. 죄와 더불어 싸우고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깨닫고 그것으로 죄와 싸우는 삶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었을 때 분명 맛이 있었을 겁니다.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까? 죄를 죽이지 않으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는 것은 독입니다. 죄죽임을 통해 속사람이 새로와지지 않으면 우리 자신은 물론이고 다른 사람들도 전혀 전도할 수 없습니다. 매일 매일 죄를 죽이고 삶의 변화가 일어나야 합니다. 날마다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면서 우리의 삶을 회개하고 우리 속에서 꿈틀거리는 죄를 죽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