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의 아마겟돈 전쟁

요한계시록 16장 15-16절, “보라 내가 도둑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세 영이 히브리어로 아마겟돈이라 하는 곳으로 왕들을 모으더라”

요한계시록에서 종말에 있을 재앙을 세 가지로 말합니다. 인 재앙, 나팔 재앙, 대접 재앙이 그것인데, 각 재앙은 일곱 개씩 나타납니다. 그 중 여섯째 대접 재앙이 일명 ‘아마겟돈 전쟁’입니다. 이 전쟁은 19장에 나오는 예수님과 두 짐승의 전쟁, 20장에 나오는 사탄의 곡과 마곡 전쟁에 대한 동일한 표현입니다. 아마겟돈의 정확한 히브리식 발음은 하르마겟돈으로, 히브리어의 하르는 산을 뜻합니다. 그래서 하르마겟돈은 마겟돈 산이라는 의미가 되지만 이 산은 성경 어디서도 나타나지 않고 팔레스타인 지역에도 없는 신비한 지명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마겟돈을 므깃도 라고 주장하는데, 실제로 팔레스타인의 므깃도는 산이라기보다 언덕(기브아)에 가깝습니다. 므깃도 근처의 북쪽 타볼산이나 에스드라엘론 골짜기, 갈멜산도 므깃도라고 불리운 적이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증거는 전혀 없습니다. 또한 므깃도 자체가 단 일개 연대가 주둔할 만한 공간도 없습니다. 또한 언어학상으로도 므깃도(Megiddo)의 철자는 하르마게돈(Harmagedon)과 사실상 전혀 다릅니다. 계 16:16의 헬라어 낱말에는 델타(d)가 단 하나 뿐이지만, 70인역본의 므깃도에는 델타(d)가 둘입니다. 반면에 70인역본에 나오는 철자는 마겟도(Mageddo)입니다. 맨 마지막의 뉘(n)가 없다는 것도 마찬가지로 장애가 됩니다. 그렇다면 아마겟돈 전쟁은 신자가 겪게 되는 영적인 전쟁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아마겟돈이 나오는 유일한 곳인 계 16:16 바로 앞 15절에 “보라 내가 도둑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라는 단서를 놓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런 영적 상징을 끝내 부인하면서 12절에 분명 실제 지명을 거론하는 단서가 있다고 합니다. “또 여섯째 천사가 그 대접을 큰 강 유브라데에 쏟으매 강물이 말라서 동방에서 오는 왕들의 길이 예비되었더라”
유브라데의 지명이 실제 지명이라서 마겟돈이나 므깃도를 주장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유브라데 강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약속한 가나안 땅의 동쪽 경계입니다. 또한 앗수르 제국과 바벨론 제국이 이스라엘을 침공하려면 유브라데 강을 건너야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사도 요한 시대에도 로마 제국의 경계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유브라데 강이 마른다는 것은 외국 군대의 침공을 방어하는 국경선이 무너져 외국 군대가 쳐들어올 수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 의미도 상징적인 의미로서 교회와 세상을 경계지우는 영적 경계선이 허물어져서 교회 안에 급격한 세속의 물결이 밀려들어온다는 상징입니다. 즉 교회의 급진적 세속화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세속화되는 특징은 무엇입니까?
15-16절 말씀을 다시 볼까요?
“보라 내가 도둑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세 영이 히브리어로 아마겟돈이라 하는 곳으로 왕들을 모으더라”
신자의 급진적 세속화를 막으려는 몸부림이 말세를 사는 성도들의 영적 전투인 것입니다. 신자의 마음 속에는 하나님 나라가 임하여 자신 속에 파고드는 세속과 싸워야 합니다. 바로 이게 아마겟돈 전쟁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부어져 하늘나라가 각 신자 속에 임하고, 그들이 어둠과 죄악의 세력들과 싸우려 하기 때문에 신자들은 깨어 있어야 합니다. 신자에게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분의 뜻대로 살려고 하는 치열한 분투가 있어야 합니다. 오늘날 나약한 신자들의 머리 속에는 그리스도인의 삶 자체가 영적인 전쟁이라는 인식이 없습니다. 그래서 설교가 따뜻한 위로줌으로 전락하고 교회도 그런 식의 연약한 공동체로 변화되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깨어 있어 은혜 받은 신자의 삶 주변에 어둠의 세력이 아마겟돈에 집결하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깨어있다는 것은 자신의 영적인 상태를 파악하는 것입니다. 성경이 그려내는 참된 신자의 모습은 자신의 내면을 보며 성령님의 역사 하에 끊임없이 정결해져서, 거룩하고 진실하게 변화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단순히 한 사람의 신자가 착해져 가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군사가 되어 가는 과정입니다.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라고 하십니다. 성결한 사람이 아니면 진정한 의미에서 능력의 사람일 수 없습니다. 사단의 공격 속에서도 두려움이 없는 용기는 순결한 마음에서 생겨나는 작용이입니다. 이렇게 순결해야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는 조명의 빛, 거룩한 능력과 담대함을 얻을 수 있습니다. 성경이 그리고 있는 신자는 하나님의 나라를 갈망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는 것입니다.
말세에는 모든 사람들이 부패한 것 같고 안일하게 살고 있는 것 같아도 이 지구 구석구석에는 이름 없이 빛도 없이 하나님께 헌신하기 위해서 나오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있습니다. 모두 안일하게 사는 이 날에 하나님께 사랑받는 특별한 종들은 눈물로 주님의 얼굴을 구하고, 부패해가는 이 땅의 영적인 현실을 보면서 눈물 흘리고, 순결을 지키는 자들입니다.

“사로잡힐 자는 사로잡혀 갈 것이요 칼에 죽을 자는 마땅히 칼에 죽을 것이니 성도들의 인내와 믿음이 여기 있느니라(계 13:10)...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에 대한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계 14:12)...이 사람들은 여자와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순결한 자라 어린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 ... 그 입에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들이더라(계 14:4-5)"

하나님은 이런 자들에게 성령을 부어주셔서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고 이기게 하십니다. 이것이 마지막 때에 하나님께서 이 땅을 건설해 가시는 방법이며 이 마지막 시대는 이러한 아마겟돈 전쟁의 날인 것입니다. 어린양이 흰말을 타고 용사로 개입하신 현장에는 우리의 생활 자체가 전쟁터라고 생각하고 죽기까지 기꺼운 마음으로 헌신하려고 하는 수많은 신자들이 있습니다. 교회가 어두운 세상을 고치기 위해서는 은혜의 지배 아래에서 하나님의 복음을 이 땅에 나누어 주면서 강물처럼 흘러가야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 땅이 영적인 아마겟돈 전쟁터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피 흘리기까지 헌신하는 삶을 사는 사람들의 영혼만이 안전하게 보호될 수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