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나르 베르베르-2009년 고려대 강연

* 설교시간에 감각의 문제를 다루면서 언급했던 베르나르 베르 베르가 있습니다.
그는 한국에 자주 오는 편인데, 2009년 고려대에서 했던 강연에 우연히 참석하게 됐습니다. 그때 남겨 두었던 메모를 올립니다.

좋은 스토리란 일종의 게임, 결론을 예상하지 못해야 하고 큰 놀라움을 느껴야 한다. 마술과 같다고 할 수 있다. 모자를 열었을 때 갑자기 보이는 토끼와 같다. 16세부터 4시간 30분씩 글을 썼다. 반복된 습관을 통해 가능한데 거기에 규칙성이 필요하다. 처음에는 이런 규칙이 어려울 수 있다. 일종의 마라톤인데, 숨 고르기가 처음에는 어렵지만 이윽고 그게 되면 달리기를 누리게 된다.
첫번째 창의성의 요건은 규칙적인 삶을 살라는 것이다.
두번째는 자유로와져야 한다는 것이다. 자기 자신의 내면에서 지적으로 얘기하려는 것을 끄집어내라. 자기 자신의 진정성을 찾는 것이 필요하다. 밤에 꾼 꿈에 대해서 메모하는 사람이 있는가? 꿈이야 말로 내면에, 심연에 일어나는 창의적인 것이다. 꿈이란 것은 무의식이고 그때 가장 자유로운 것이다. 매일 아침마다 꾼 꿈에 대해서 기록한다. 이것이 소설의 원천이 된다. 내면의 것을 존중하는 행동이다. 꿈에 대해서 가치 판단을 해서는 안된다. 꿈 자체로 두어야 한다. 신경학에서는 뇌를 좌뇌와 우뇌로 구분한다. 좌뇌는 숫자, 이성, 논리를 관장한다. 우뇌는 시적이고 상상적, 음악과 꿈과 관련되어 있다. 밤에 꿈을 꾸면 비선형적인데, 꿈 속 인물들은 바뀌고 장소도 바뀌는데, 일어나서 좌뇌가 한가지 선형으로 변형시킨다. 뇌는 일종의 이성적인 것과 비이성적인 것으로 되어 있다. 상상은 풀어주는 작용이 필요하다. 우리의 머리는 습관적으로 논리적으로 파악하려고 하지만 자유롭고 창의적인 것도 일깨워주는 것이 필요하다. 그렇다고 우뇌의 작용만 생각하면 심한 광기로 흘러 갈 수 있어서 좌뇌와 우뇌의 균형이 필요하다. 창작의 욕구를 일깨워줘야 한다. 내가 다른 사람과 다른 점은 무엇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자신이 틀리다는 점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이게 강점이 된다. 예를 들어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 동질성이 필요하기도 하지만 자신만의 다른 점을 개발해야 한다. 사회성, 논리는 좌뇌이지만, 나를 다르게 하는 것은 우뇌가 관장한다. 매일 글을 쓰면서 좌뇌가 융통성을 발휘하도록 해서 창작을 한다. 감옥의 시스템과 비교할 수 있다. 죄수가 자신의 범위를 넓히는 것과 같다. 계속 산책을 하지만 결국 돌아가야 한다. 독방에 넣어두면 숨이 막힐 것이다. 좌뇌는 우뇌에게 친절을 베풀어야 한다. 글을 쓰는 작업을 하면서 우뇌를 사용하는 법을 터득하면서 고독감을 느끼게 된다. 예를 들어 우리의 사회성을 관장하는 것이 좌뇌인데, 우뇌만 발달시키면 고립된다. 그래서 어느 한 쪽으로 기울어지면 안된다. 작가는 고독한 삶을 즐길 줄 알아야 한다. 엄청난 즐거움이 있다. 물론 성공한 작가는 사회성을 느끼게도 된다.
질문 하나, 작가가 되고 싶은 사람이 있는가? 개인적으로 창의력을 기르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음악의 측면, 자연, 사진의 측면에서든 우뇌는 반드시 필요하다. 혹시 예술 사진 찍는 분들, 전문적으로 영화를 찍는 사람들, 화가, 변호사가 되고 싶은 사람들,
창의력을 높이는 것은 스트레스를 덜어주고, 우울함을 없애주며, 외로움을 이기게 해주는 것이다. 우리 뇌에서 자신을 깨어주는 요소가 있다. 살아갈 때 타인 만족만 위해서 사는 게 아니라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해야 할 때가 있다. 음식을 만드는 것도 예술행위이며 창작행위이다. 우리 스스로 표현하는 창작 예술활동은 다양하게 가능하다. 집중하고 투자, 성공하려는 의지가 있어야 한다. ‘개미’라는 작품은 12년이 걸렸다. 완벽을 추구했기 때문이다. 시간을 들이는 것을 필수적이다. 창작은 서둘러서는 안된다. 개미라는 소재를 선택한 것은 도전이었다. 남들이 봤을 때 흥미롭지 않은 소재로 흥미로운 것을 표현하려 했다. 개미는 꿈에 나타났다. 저는 내 머릿속에 개미가 있다. 이런 개미의 스토리를 풀어가고 싶었다. 개미라는 생물체가 작다는 것만으로 힘이 적다거나 추한 게 아니다. 우리의 우뇌를 활성시키면 넘치는 생명력을 보게 된다. 심지어 외부에 있는 것에 우리 자신을 투영해서 관찰할 수 있다. 개미를 오랫동안 관찰하면 어떤 움직임이 있는지 동화되게 된다. 어떤 깨달음을 얻으면 전달이 가능하게 된다. 개미뿐만 아니라 새든, 물고기든 어떤 것이든 투영이 가능하다. 그런 관찰 끝에 소설에 대한 영감을 얻을 수 있다. 우리 사람이라는 개체는 피부에 둘러쌓인 게 다가 아니다. 예를 들어 다른 사람의 시선으로 세상을 볼 수 있다. 상상력과 인식을 머리 범위에서 벗어나 넓히고 확장시킬 수 있다. 정신의 범위를 강의실 이상으로 넓혀서 볼 수 있다. 우리의 뇌는 그런 활동을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문제는 그런 생각을 평소에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나무에 손을 대고 만져보라. 그리고 잎사귀와 뿌리의 정체를 느껴보라. 그러면 우리를 나무로 확대시킬 수 있다. 이 경험을 성공하면 뿌리 깊이 있는 습기와 나무의 모든 느낌을 실제적으로 느낄 것이다.
다른 또다른 경험.
별을 한번 보라. 별을 보면서 자신의 정신을 투영해보라. 별이 지구를 보는 시각으로 자신을 보라. 정신과 몸이 있는데, 정신을 넓히는 경험이 된다. 위대한 감각이 내재되어 있다. ‘개미’, ‘신’,‘타나토나스’, ‘뇌’ 뇌를 가장 좋아하시는 사람? 개미를 가장 좋아하는 사람? 신이 가장 좋은 사람? 나무가 가장 좋은 사람? 빠삐용이 가장 좋은 사람? 사실 한국에서는 신이라 번역되어 있는데, 원제는 우리는 신이다 이다. 우리 속에는 어떤 신이 내재되어 있다. 문제가 되는 것은 인간은 자신의 능력을 낮게 평가해서 그 능력을 깨닫지 못한다는 점이다. 상당수가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 그래서 더 커단란 슬픔을 안게 된다. 그렇지만 우리가 나무가 된다면 보다 행복해진다. 별이 스스로 된다면 별의 입장에서 본다면 우리의 문제는 아주 작은 문제가 된다. 스스로 괴롭다고 느꼈다면 우리 스스로 작다고 보기 때문이다. 우리 스스로도 세상을 충분히 변화시킬 수 있다. 문제는 내 잠재력 안에 창의력이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이런 인식은 전염성이 있다. 창의와 자유로 빛나게 하면 다른 사람이 영향을 받게 된다.
[질문]
4번째 한국 방문이다. 한국 역사와 사람에 대한 질문을 역자에게 한다. 일본을 방문해있을 때 위안부 문제 시위를 본 적 있다. 한국이 전쟁 등의 아픔을 프랑스에 알리고 싶었다. 한국은 강대국에 들러쌓인 나라다. 영웅은 물리치기 어려운 것을 이겨나가기에 한국은 영웅적 국가이다. 한국은 항상 깨어 있었기에 발달했다 본다.
창작활동에서 창작물에 대한 판단은 금물이다. 결과에 대한 판단은 좋지 않다. 그냥 하는 것이 좋다. 예로, 머릿속에 일종의 선생님이 있다. 이것은 강박관념이다. 멋대로 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하라. 평가도 나중에 맡기라. 사람과 개를 경주시키면 이론적으로 뛰는 시간이 같다. 몸무게와 근육의 비율이 같다. 하지만 실제는 개가 사람을 이긴다. 우리는 이론상으로 개가 더 빠른지 자문하게 된다. 과학자의 가설, 사람은 출발지점-도착지점을 의식하면서 뛴다. 개는 계산 없이 뛰는 것이 즐거워서 뛴다. 사람도 동물적인 즐거움을 위해 매진할 수 있어야 한다. 지식과 옳고 그름에서 벗어나서 한 일에 매진하고 뛰어들어야 한다. 좌뇌의 속박에서 벗어나서 이끌리는 데로 살아야 한다.
부정적인 에너지가 엄습하는 게 느껴지면 부정적인 묘사에 사용하라. 화가 났다면 주인공을 화가 상태로, 죽이고 싶으면 주인공이 죽이게 하라. 좋지 않은 것을 쓴다면 좋지 않은 방향으로 가는 것이다. 이야기를 풀어나가기 힘들면 주인공이 가만히 있는 것으로 묘사하면 된다. 소설을 쓸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즐거운 마음으로 즐겁게 써야 한다. 가장 걸림돌은 두려움이다. 타인의 시선에 대한 두려움이 가장 나쁜 것이다. 자신의 약점에 대해 개의치 않고 창작작용을 계속하고 보완하라. 개인 신념 약점이 예술의 근원이 되는 것이다. 피카소의 그림에서 눈을 제 위치에 없다. 단지 아이의 그림에 지나지만 그는 모던한 것으로 여겼다. 화가들 중에 흰색 여백을 파는데 매우 비싼 경우도 있다.
소설 ‘파피용’이 내가 생각하는 최고의 꿈이다. 우주 정복이 필요하다. 태양열 우주선이 필요하다.

상상력은 운동과도 같다. 게임을 통해서 계발시키는 것과 같다. 게임이 다른 것과 소통하는 일종의 방식이 될 수 있다. 소설 자체가 놀이와 게임을 제공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