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를 이기게 하시는 성령

갈라디아서 5장 24-26절,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노엽게 하거나 서로 투기하지 말지니라”

죄를 죽이지 않으면 신자는 형식주의자가 됩니다. 죄를 죽이는 삶이 우리의 모든 신앙생활에 중요한데, 과연 무엇으로 죄를 죽일 수 있을까요? 죄를 죽이는 주체는 성령님이십니다. 성령님이 없으면 죄를 죽일 수 없습니다. 죄를 죽이는 것은 성령이시지만 우리의 협력이 필요합니다. 성령은 우리가 순종하는 것만큼만 죄를 죽이십니다. 중세 수도사들은 자신을 쳐서 복종시키는데 오해를 했습니다. 우리는 자연적 육체와 부패성이 있는데, 중세 수도사들은 자연적 육체만 학대하였던 것입니다. 금식도 마찬가지입니다. 금식으로는 죄가 죽을 수 없습니다. 금식이 우리에게 큰 은혜를 주시지만, 그것으로만 우리의 부패성을 죽일 수 없습니다. 죄를 죽이는 은혜의 원천은 성령님뿐이십니다. 금식해서 죄가 죽었다면 금식 때문이 아니라 금식을 통한 성령님의 은혜 때문입니다. 육체를 학대하는 것으로는 결코 죄를 이기는 삶을 살 수 없습니다. 전능하신 에너지를 부어주실 때 죄를 이기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이 죄를 이기게 하시는 방법은 세 가지입니다.

1. 은혜 가운데 거함으로 죄를 이기게 됩니다.
죄이든 신앙이든 자라는 환경에 따라 성장 속도가 다릅니다. 은혜생활을 계속하게 되면 죄가 있다 하더라도 잘 자라지 못합니다. 죄는 우리를 파멸로 인도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은혜 안에 거한다고 하는 것은 우리는 은혜로운 생활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에 대한 깊은 감동을 말합니다. 예배드릴 때 무미건조하던 우리 마음이 내가 누구인지를 깨닫고, 나 같은 죄인을 살리신 사실을 되새기면서 죄를 시들게 만듭니다. 죄는 말라 죽게 해야 합니다. 아무리 큰 부러움을 사던 죄도 은혜 가운데 있으면 서서히 말라 버리게 됩니다. 은혜 안에 사는 성도들은 비록 허물은 있지만 은혜를 받고 싶어 합니다.
여러분 은혜 안에 살고 있습니까? 은혜 안에 사는 사람들은 예배의 불, 기도의 불, 사랑의 불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울어야 할 곳에서 울고 기도할 곳에서 기도하고 찬양할 곳에서 찬양하고 사랑할 곳에서 사랑하며 죄가 숨을 죽이게 됩니다. 제초제는 추수할 때까지 뿌립니다. 튼튼하고 실한 곡식을 얻기 위해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죄를 죽이기 위해 제초제와 같은 은혜를 받아 계속 죄를 제거해 나가야 합니다. 매일 매일 하나님께서 우리의 영혼을 어루만지시는 은혜, 이런 은혜가 계속 유지될 때 죄는 서서히 죽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 때 믿음이 자라나게 됩니다.
여러분 은혜를 받기 위해서는 은혜 받도록 하나님이 만들어 놓으신 길로 들어가야 합니다. 그 은혜의 수단에 참여해야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술집에서 회개한 사람은 없습니다. 은혜에 가까이 나아가야지만 은혜를 받을 수 있습니다. 예배 한 번 안 나온다고 사업이 망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런 삶이 누적되면 영적 게으름은 축적되고 영적 삶은 메말라 갑니다. 은혜 안에 거하지 못합니다. 결국 죄의 나무들만 자라나게 됩니다. 불규칙적 식사와 끼니를 챙겨 먹지 않으면 쓰러지게 됩니다. 죄를 죽이기는커녕 죄에 지배되는 삶을 살면 마음 밭은 은혜가 자라기에 힘든 밭이 됩니다. 매일 매일 은혜 생활을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짐승과 같은 삶을 살게 됩니다. 성공하면 위선자요, 실패하면 배교자가 됩니다. 죄를 지으면 빨리 씻고, 죄의 유혹이 오면 말씀을 읽고 주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세상을 위해 아낌없이 버리면 주님의 삶을 본받아야 합니다. 이게 은혜 안에 거하는 삶입니다. 부지런히 성경을 읽고 기도해야 합니다. 촉촉한 하나님의 은혜에 젖어 있을 때 그 때 우리는 다른 길로 가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은혜 받은 마음의 방향타가 있으면 술집으로 인도하지 않게 됩니다. 죄에 삼킨 바 된 자의 특징은 은혜가 거의 사라진 자들입니다. 하나님과의 교제도 없고 그래서 죄에 대한 거부감도 없게 됩니다.

2. 죄를 불태우시는 성령의 역사로 죄를 죽일 수 있습니다.
성령께서는 죄의 뿌리를 태우는 강력한 역사를 통해 죄를 무너뜨리십니다. 죄가 좋으면 은혜를 받으려 하지 않습니다. 그럴 때 하나님은 위급하시기에 죄를 불살라 버리십니다. 하지만 이때 죄뿐만 아니라 자신도 날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죄는 회개하지 않는 한 반드시 벌하십니다. 죄를 짓고 나서는 회개하든지 멸망 받든지 하는 것만 남습니다. 버리지 못하는 죄, 도말하지 못하는 죄에 대해서 불태워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죄가 우리를 붙잡고 있지만, 우리는 다치지 않고 죄만 멸절되도록 하는 성령의 특별한 역사를 기도해야 합니다. 담배 끊기가 얼마나 힘든지 모릅니다. 보통은 몇 차례 금연을 해야 끊게 됩니다. 금연마저도 성령님이 도우셔야 합니다. 우리는 범사에 은혜 안에 살면서도 어떤 특정 분야에 있어서는 하나님의 강력한 역사가 있기를 간구해야 합니다.

3. 십자가로 인도하심으로 죄를 죽게 하십니다.
신앙생활을 하다가 죄를 짓게 되는데, 성령이 우리에게 십자가를 경험하게 하십니다. 죄의 유혹을 받다가 십자가가 떠오르게 됩니다. 십자가를 볼 때에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피흘리고 못박히신 것을 보게 됩니다. 예수님을 평화주의자로 죽으신 것이 아니라 우리의 죄를 위해 죽으셨기 때문에 다른 각도로 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지금 내가 지으려는 죄 때문에 죽으셨는데, 어떻게 죄를 지을 수 있겠습니까? 십자가를 경험하지 않고서는 정상적인 성도의 삶을 살 수 없습니다. 그것이 바로 죄를 죽이시는 마지막 방법입니다. 신앙생활의 한복판에는 하나님과의 교제가 있는데, 그 교제의 핵심은 십자가이며 그것으로 죄를 죽게 만드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경험한 많은 사람들이 불꽃처럼 살아 하나님을 기쁘게 합니다. 하나님께서 동행해 주는 삶을 살았기 때문에 불꽃처럼 살아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던 것입니다. 십자가에 대한 깊은 체험이 없으면 죄가 무서운지를 모릅니다. 십자가는 죄를 짓고 난 이후에서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용기를 줍니다. 죄를 깊이 회개하고 친구처럼 살아왔던 죄를 미워하는 마음을 가지면 우리는 무엇을 느꼈습니까?
“내 눈을 밝히 떠서 저 십자가 볼 때 나 위해 고통당하신 주 얼굴 보인다. 그 형상 볼 때 내 맘에 큰 찔림 받아서 그 사랑 감당 못하여 눈물만 흘리네”

죄에 대한 깨달음만으로는 죄를 이기지 못합니다. 율법을 통해 죄를 알게 되면 괴롭게 됩니다. 하지만 율법만으로는 죄와 싸울 힘을 주지 않습니다. 성령은 우리를 십자가로 이끄십니다. 지금 지으려는 죄를 위해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것을 알게 하십니다. 이런 십자가를 경험할 때 죄를 벗어던지게 됩니다. 그 사랑도 경험하게 됩니다. 예수님을 바라보지 않을 때는 어떤 죄이든 범할 수 있었지만, 십자가를 보면서 나의 죄 때문에 죽으시고 내게 오셔서 사랑으로 건져내시고 구원하심을 알게 됩니다. 나 같은 죄인을 살리신 것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였습니다. 그런 깊은 감격을 간직할 때 죄짓고자 하는 마음을 내려놓게 됩니다.
우리들이 성령을 통해서 오늘도 십자가를 경험하기에 죄를 이길 수 있습니다.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합니다. 죄의 용서는 한 번에 주어지지만 마음속에서 솟아나는 죄를 죽이기 위해서는 자신의 죄성을 인정하고 십자가를 묵상해야 합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갈 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