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를 갈망하라

시 123:2-3, “종의 눈이 그 상전의 손을 여종의 눈이 그 주모의 손을 바람같이 우리 눈이 여호와 우리 하나님을 바라며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기를 기다리나이다 여호와여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또 은혜를 베푸소서 심한 멸시가 우리에게 넘치나이다”

시련이 오면 자기의 힘으로 우선 극복하려 합니다. 은혜 안에 있을 때는 내가 겪는 일을 통해 하나님은 나에게 무엇을 말씀하려는지 해석해 내려고 합니다. 어려움이 와도 주님을 더 의지하고 하나님과의 관계도 점검하게 됩니다. 하지만 신앙이 식고 은혜에서 멀어지면 자신의 힘으로 해결하려고 합니다. 그러다가 힘에 부쳐 급기야 주위 사람들을 원망하게 됩니다. 진리를 싫어하게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반역하는 마음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시인은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자신을 조소하고 멸시하는 자를 향해 복수를 꿈꾸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이름을 부릅니다.
1절, “하늘에 계시는 주여”라고 하며 주님을 앙망합니다. 이것이 바로 신앙입니다. 하나님은 당신께 돌아오라고 시련을 주시는데, 우리는 이것을 외면하고 복수와 원망을 하여 위기를 극복하려고 합니다. 그렇게 해서 행복할 수 있다면, 하나님이 자신의 백성이 멸시와 고통을 당하도록 허락했겠습니까? 시인은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자신의 마음이 어떠한지를 살핍니다.
종의 눈은 상전의 손을 바랍니다. 주인이 손에 따라 상이나 벌이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왕이나 더 큰 귀족의 손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자신의 인생의 열쇠를 갖고 있는 주인, 자신의 생사여탈권을 가진 주인만을 바라보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종이라고 하면서 종이라고 대접받으면 싫어합니다. 인생의 문제나 기도의 제목이 생기면 매일 기도해야 하는 자신의 처지가 불행해 보입니다. 그러나 영적인 시각으로 보면 하나님은 그런 처지를 통해 믿음을 단련하시고 하나님의 은혜의 세계를 보게 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축복인 것입니다. 우리가 고난당하면서 감사하는 이유도 이것 때문입니다. 고난이 아니었으면 알지 못했을 하나님의 율법을 깨닫게 됩니다. 고통을 통해서 올바르게 살 수 있는 사람이 됩니다. 주님은 당신을 간절히 갈망하는 사람들에게 은혜를 주시고 기적과 같은 능력을 베푸셔서 절망의 사슬에서 벗어나게 하십니다. 벗어나는 시간이 정말 길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은혜만 간절히 갈망하는 자들을 하나님은 절대 멸시하지 않으십니다. 세리나 창기라 할지라도 은혜를 갈망하는 자들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의 의보다 앞서는 것이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기에, 율법을 통해 드러낸 의보다 그리스도를 의지하는 자의 의가 온전한 것입니다.
우리는 병원에 가서 수술대에 눕는 심정으로 은혜를 갈망해야 합니다. 수술하기 전에 우리는 각서를 씁니다. 생명을 담보할 수 없는 수술을 받을 때 우리는 얼마나 의사를 의지합니까? 바로 그 심정으로라도 은혜를 갈망해야 합니다. 우리의 육체뿐만 아니라 우리의 영혼까지 살리시는 하나님을 우리는 얼마나 의지해야 할까요? 정말 그렇게 주님을 의지하는 것은 나이와 상관이 없습니다. 작은 유치부의 어린이라도 하나님을 의지할 줄 압니다. 주님의 은혜는 하늘 보좌로부터 가난한 심령에 흘러내립니다. 하나님은 미끄러지는 자를 붙드십니다. 인생 막장까지 가서 낮아진 자들, 절망만 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만 바라보는 자들을 하나님은 소생시키십니다. 은혜주실 주님을 간절히 갈망하면 다른 것에 위로받으려는 마음이 사라집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흩어지지 않습니다.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고자 주님을 갈망합니다. 주여 어찌합니까, 사람들이 하는 말이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뇨 어디 있느뇨 하오니 내 눈물이 주야로 내 음식이 되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