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 죽임이 없는 자의 영적 상태
(시 40:12) 수많은 재앙이 나를 둘러싸고 나의 죄악이 나를 덮치므로 우러러볼 수도 없으며 죄가 나의 머리털보다 많으므로 내가 낙심하였음이니이다
죄를 죽이지 않는 삶은 우리의 영혼을 죽입니다. 오늘 본문은 다윗의 시로, 아마도 시편 51편과 연관된다고 봅니다. 거기서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범하고 나서 죄짓고 난 이후 하나님의 은혜로 회복되고자 하는 강한 열망을 보게 됩니다. 오늘 본문도 마찬가지입니다. 죄짓고 난 이후 하나님을 우러러 볼 수 없는 것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죄에 대해 깊이 깨닫고 죄를 죽이기 위해 부단히 싸워도 승리를 맛보고 평화를 누리지 못합니다. 죄와 싸워 즉각적인 승리를 맛본다면 좋겠는데, 어떤 사람들은 애를 써도 완전한 평화가 찾아오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우리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면 복음 전파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때 많은 열매를 맺는 자가 있는가 하면 적은 열매를 맺는 사람도 있습니다. 적은 열매가 있는 사람이 비록 서운하다할지라도 신자로서의 삶입니다. 죄와 분투하는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자로서 당연한 삶입니다. 은혜의 수단을 사용하는 것은 우리이지만 그 안에 평화를 누리게 하는 것은 하나님이십니다. 영혼의 놀라운 축복과 특권은 우리가 신자가 될 때 얻게 되는 것입니다. 악인의 삶에는 평안이 없습니다. 그러나 구원 받고 난 이후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신자가 된 즉시 마귀가 공격한다는 것입니다. 믿기 전보다 더 집요한 공격의 대상이 됩니다. 마귀는 신자의 영적 생명력과 활기를 빼앗아 가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때부터는 죄를 얼마나 죽이느냐에 따라 영적 생명력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죄를 죽이지 못하면 우리의 영혼을 연약하게 하며 어둡게 만듭니다.
1. 죄를 죽이지 못하면 우리 영혼은 약화됩니다.
1) 죄를 범하게 되면 마음의 변화가 일어납니다.
죄는 지극히 작은 죄인데, 그게 쌓여가면서 서서히 변화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예방접종을 하는데 100만 명당 1명이 사고가 난다고 합니다. 한방울 정도의 주사액을 몸에 투여하지만 그것이 몸 전체에 영향을 미쳐 죽음에 이르게 됩니다. 죽이지 못한 죄는 우리의 마음을 허물어 버립니다. 신앙생활을 바르게 하기 위해서는 마음이 올바르게 되어야 하는데 죄를 죽이지 못하면 마음이 변질되는 것입니다. 죄는 게릴라처럼 천천히 들어옵니다. 그래서 하는 일이 마음을 무너뜨리는 것입니다. 그 후 하나님과의 인격적 관계가 무너집니다. 예배를 드려도 찬송을 불러도 교회에 와서 봉사해도 하나님의 존재가 느껴지지 않게 됩니다. 하나님 앞에서 정직해지지 않는 마음이 됩니다. 이렇게 될 때 정서에 놀라운 변화가 찾아옵니다. 타락한 사람들이 좋아하던 정서가 살아납니다. 옛날에 술 좋아하던 분들, 거기서 놀던 모든 정서가 신자 되어서는 싫어지게 됩니다. 하지만 신자라고 하더라도 죄가 마음을 무너뜨리면 옛정서가 살아납니다. 허무의 정서, 타락한 정서가 살아나는 것입니다. 마음이 죄의 지배를 받게 되는 것이죠.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애통하고 자신의 죄 때문에 마음 아파하는 것은 불가능하게 됩니다. 하나님 앞에 애통하는 마음은 죄를 죽이고자 분투하는 사람에게만 가능합니다. 마음의 구조가 무너지고 거룩한 정서가 사라지면 보람 있게 느끼는 일에 대해 기뻐하지 못하게 됩니다.
2) 마음의 변화가 일어나면 사고가 혼란스럽게 됩니다.
육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사고로 바뀌게 됩니다. 생각하고 꿈꾸는 것이 육체적인 데 집중됩니다. 육체를 만족시키는 것을 원합니다. 자기가 영광을 받고자 합니다. 죄가 우리를 이기면 마음의 구조가 바뀌고 사고는 세상적인 것에 대해 민감하게 됩니다. 진정 경건하게 위해서는 세상에 대해 너무 알려고 할 필요가 없습니다. 세상에 대해 관심을 가지면 가질수록 신령한 것들에 대한 관심이 사라지게 됩니다.
3) 사고가 혼란스러워지면 의지에 영향을 미칩니다.
죄가 한 사람을 넘어뜨리면 신령한 소원이 사라집니다. 모든 예배가 힘겨워집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이 자신에게서 모든 것을 빼앗아간다고 여깁니다. 죄가 들어와서 속알맹이를 다 빼먹고 껍데기를 무너뜨립니다. 그리고 나서 하나님이 원치 않는 삶을 살게 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고 하나님의 나라가 오지 못하고 막고 범죄하고 하나님과 원수되어 살게 됩니다. 결국 하나님을 경홀히 여기는 삶을 삽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의 진노를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짐승과 같이 사는 삶입니다. 이 사람은 예수님이 자기 때문에 십자가에 돌아가신 것을 압니다. 자신이 죄인인 것도 알지만 더 이상 자신도 자신을 제어하지 못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는 말을 많이 합니다. 하지만 우리도 그렇게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붙잡아주시는 동안에만 우리는 성도로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손 놓으시면 개 같은 인생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죄를 지으면서 계속 신자로 살아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결론적으로 말하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이 기회를 주시기 위해 예배드리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상태가 더욱 나빠질 수도 있고, 그런 상황에서 변화될 수도 있습니다. 죄는 우리의 영혼을 약화시키다가 완전히 악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죄는 이렇게 우리를 파괴해 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어느 단계입니까? 마음이 허물어지고 있습니까? 사고가 혼란스러워졌습니까? 이제 아예 범죄하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자신의 위치를 점검하고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죄를 이겨가야 합니다.
2. 죄를 죽이지 못하면 우리 영혼은 어둡게 됩니다.
영혼이 어두워지면 진리의 빛이 아무리 강력해도 우리 영혼에 영향을 미치지 못합니다. 죄를 죽이지 않으면 영혼의 두터운 먹구름이 끼면서 말씀이 들어가지 못합니다. 똑같은 하나님의 말씀이 있는데, 어떤 영혼은 감동을 받지만 어떤 영혼은 지루하기만 합니다. 죄를 죽이지 않으면 죄는 살아 역사하여 영혼에 먹구름을 만들고 영혼이 냉랭해지게 합니다. 말씀이 이해되지 않습니다. 죠나단 에드워즈는 성령이 우리에게 양자라고 인쳐주는 것은 한번으로 끝나지 않고 우리 인생에 연속적으로 나타납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사랑은 추억만으로는 살 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의 삶 속에서 사랑이 계속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한번 받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계속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면 유치원 학생이라 해도 그 사랑을 기뻐합니다. 영혼이 어두워져서 하나님과의 사랑 관계가 희미해지면 이전에 깨닫던 것을 이제는 깨닫지 못하게 됩니다. 낮에는 하지 못하던 일들을 자행하게 됩니다. 하지만 구원 받은 자들은 그 안에서 계속 행복할 수는 없습니다. 신자들은 영혼의 두터운 구름이 끼어서 쾌락을 잠깐 추구할 수는 있지만 행복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혼란과 무질서 속에 있을 수는 있지만 만족이 없는 것입니다. 이때 우리는 울부짖어야 합니다. 범죄하였어도 자백하면 하나님은 용서해주십니다. 물론 하나님이 즉각적으로 응답하시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때 많은 신자들이 절망합니다. 배신감을 느낍니다. 하지만 울부짖기만 해서는 안되고 자신의 상태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죄를 죽이고 마음과 사고가 하나님 앞에 있도록 해야 합니다. 계속된 회개의 삶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 인격 속에 있어야 합니다. 어두움을 뿌리치고 빛 가운데 있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