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이 물러가신 이유

“예수는 물러가사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시니라”(눅 5:16)

“물러가사”란 말씀 속에 나타난 예수님의 기도는 우선성을 가집니다. 예수님은 우리와 같이 한 곳에 정착된 삶을 사실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 주님은 잃어버린 양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스스로 나그네와 같기를 자처하시고 두루 찾아다니셨습니다. 이런 점에서 우리의 삶은 얼마나 호사스러운지요. 주님은 갈릴리에서 섬기셨는가 하면, 사마리아에서도 복음을 전하셨고, 유대에서 가르치셨는가 하면, 두로와 시돈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셨습니다. 사면에 흩어져 있는 고통당하고 유리하는 목자 없는 양과 같은 심령들, 괴롭힘 당하고 인생의 우여곡절에 내동댕이 쳐진 상한 영혼들을 몸소 찾아가 그들과 함께 먹고 마시며 함께 아파하고 고통을 나누셨습니다. 그들과 묵으셨습니다. 주님의 생애는 머리 둘 곳 없는 생애였습니다(마8:20).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복음 전하시는 마을은 항상 바뀌고, 그분의 기거하시는 처소는 늘 변해도 변하지 않는 생활 하나가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한적한 곳에서 드린 기도’였습니다. 어느 곳을 가시든지, 또 어떤 어려움에 마주하시든지, 어떤 사람들과 함께 계시든지 주님의 기도생활은 환경에 영향을 받지 않고 견고히 서 있었습니다.

오늘 주님이 기도하고 계신 장소는 항상 고정해 놓고 기도하러 다니시는 특별한 기도처소가 아니었습니다. 환경에 영향 받지 않기 위해선 기도할 수 있는 환경을 내 스스로 만드는 노력이 있어야 합니다.기도는 겨울철 땅을 파는 것처럼 어렵습니다. 메마른 마음으로 기도를 드리는 것은 추운 겨울 언 땅을 파는 것처럼 힘든 일입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인부들은 땅을 파기 몇 시간 전부터 모닥불을 피워 땅을 녹입니다. 이처럼 우리들이 기도하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의 말씀에 깊이 은혜를 받는 것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음으로써 얻게 된 따뜻한 은혜의 온기가 우리의 마음을 녹인 후, 우리는 기도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기도할 마음이 생겨나는 것도 기도의 일부입니다. 기도에 관해, 기도를 더 잘하기 위해 좋은 책을 읽는 것도 기도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들이 곧 기도는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무릎을 꿇고 하나님 앞에 기도를 몸소 실천하는 그 일입니다. 예수님처럼 말입니다.

예수님의 생애는 땀과 수고로 얼룩진 섬김과 희생의 생애였습니다. 잃어버린 영혼들, 매일 동일한 위치에서 미끄러지는 패역한 인생들을 향한 연민으로 눈물을 머금으신 채 이 동네와 저 동네를 다니시며 많은 노동과 수고로운 섬김으로써 희생을 마다하지 않으신 생애였습니다. 우리 주님의 생애는 아름다운 자연 속에 묻혀서 한가로이 수도하시는 그런 수도자적인 생애가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기도하고 계십니다. 그 어느 누구도, 그 어떤 환경도 넘볼 수 없는 ‘한적함’ 속에서 기도하시며 하나님을 뵙고 계셨습니다. 주님은 아무리 좋은 일이고 가치있는 일이라 할지라도 기도를 최고의 우선순위에 놓으시고 기도를 방해하는 모든 환경들과 부단히 싸우셨던 것입니다.

우리는 어떠합니까?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기도하지 않는 신자들의 사정 중에서 이해가 되지 않는 사정은 거의 없습니다. 그러나 환경은 결코 우리의 편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기도하며 살고자 할 때 우리의 환경은 기도하기에 많은 어려움을 줍니다. 육신의 연약함도 우리로 하여금 깊은 기도 속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가로막는 방해요인으로 작용합니다. 뿐만 아니라 근심과 걱정이 가득 찬 것도 우리로 하여금 마음의 평정을 잃어버리게 만듭니다. 이른 새벽부터 깊은 밤까지 쫓기는 일과는 우리로 하여금 기도할 수 있는 육체의 힘을 남김없이 앗아갑니다. 가정과 교회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갈등과 어려움은 우리로 하여금 기도하고자 하는 에너지를 빼앗아갑니다. 그런데도 우리들이 기억해야 할 것은 예수님도 기도하시는 생애를 살아가시기 위해서 우리들이 직면하고 있는 이 모든 어려움들을 동일하게 싸우고 견디고 이겨야만 하셨다는 것입니다. 우리와 동일한 연약함을 가지신 예수님도 이 기도생활은 언제나 노고를 요하는 일이었을 것입니다. 새벽시간에 일어나 기도하시는 것보다 평안하고 안락한 쉼을 그분의 육체는 더 원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끊임없이 싸웠습니다. 그래서 기도는 전투적인 심정을 가지지 않고서는 지속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남기신 기도의 본을 따라, 기도하지 못하게 하는 수많은 요인에 항거하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나태하고 아무렇게나 살려고 하는 우리 자신의 내면의 마음을 잘 다스리려고 끊임없이 애를 써야 합니다. 건강한 젊은이들은 새벽잠과 싸워야 하고, 이 세상의 우수(憂愁) 속에서 살아가는 나이 드신 분들은 마음에 가득 찬 염려와 근심과 더불어서 싸워야 합니다. 정욕에 쉽게 흔들리는 젊은이들은 자신의 마음과 육체의 순결을 지키기 위해서 부단히 투쟁해야만 하며, 가사와 그리고 직장에서 많은 책임을 지고 있는 성년이 된 세대는 하나님보다 세상을 더 사랑하지 않기 위해서 매일매일 자기의 옛사람을 십자가에 못 박는 분투하는 은혜생활이 필요합니다. 기도생활은 누구에게나 어려운 것입니다. 힘들 때마다 예수님을 바라보십시오. 그분은 결코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자신의 살과 뼈가 찢어지고 깨어지는 십자가의 형벌 한가운데서도 버림받은 영혼을 위해 기도하신 주님의 사랑을 생각하십시오. 주님이 주신 그 은혜와 사랑이 얼마나 컸었는지를 생각하며 우리도 주님의 그런 길을 걸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주님은 지금도 우리를 위해 기도하고 계십니다.

우리도 기도해야 할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