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 시간의 문제
엡 6:18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
성경에서는 상당히 많은 구절에서 짧은 기도가 아니라 상당히 긴 시간에 오래도록 드려진 기도였음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기도해야 한다고 하는 사실에 대해서는 조금도 의심이 없지만 기도에 대해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견해 자체는 매우 편의적일 때가 많습니다. 물론 짧은 기도 속에서 하늘의 위대한 능력을 이 땅에 불러내는 광경들은 정말 우리의 눈길을 끌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짧은 기도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임박한 재난을 면하고, 마귀조차 물리치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화려함은 멋진 것입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이적과 함께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나안으로 이끈 모세와 여호수아가 그러했고, 하나님의 두려운 심판을 불러오거나 놀라운 치료들을 가져온 수많은 선지자들이 그러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이은 사도들의 발자취도 이런 기도가 얼마나 놀랍고 위대한 능력을 발휘했는지를 보여줍니다.
그러나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짧은 시간 동안 아무리 진실 되게 기도한다고 할지라도 이런 위대한 응답과 놀라운 은혜의 역사는 모든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성경이 증거 하는 이들은 평소에 장시간을 기도에 헌신하면서 일생을 살아왔던 사람들이며, 이 때문에 놀라운 하나님의 축복들이 가능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사역하실 때에 눈에 보이는 그 광경은 얼마나 흥미진진하고 명쾌하고, 그리고 신나는 광경이었습니까! 예수님의 한마디의 기도로 죽은 자가 살아나고, 하반신 장애우가 일어나며 나병이 떠나가는 것은 한 순간에 드려진 짧은 기도 때문이었습니까? 기도 응답으로 점철된 예수님의 이 놀라운 역사는, 화려하기 짝이 없는 섬김의 이 아름다운 생애의 이면에는 피와 땀과 눈물을 쏟는 개인 기도의 세계가 있었습니다. 오랜 동안 매일같이 기도하며 하나님 앞에 자기의 노고를 짜서 드리는 그런 기도의 아름다운 헌신이 있었고, 그 장시간의 기도 속에서 이룬 하나님과의 절대적인 친교, 그분과의 말할 수 없는 친밀함이 이 위대한 기도응답의 근거가 되었던 것입니다.
사람들은 모두 짧은 기도 끝에 순간순간 응답해주시는 달콤한 열매는 좋아하지만, 그런 기도의 세계를 지니기 위해서 자신이 마음을 깨트리고, 눈물을 흘리고, 그리고 피를 쏟는 처절한 자기 복종과 희생적인 기도의 헌신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아름답게 살다 간 기도의 용사들에 관한 이야기를 듣는 것은 좋아하지만, 실제로 그들처럼 그렇게 기도에 헌신하며 많은 시간들을 보내는 사람은 너무나 소수입니다. 무엇 때문일까요? 이 대답을 하기 전에 우리의 짧은 신앙생활을 한번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과거를 돌아보면 하나님을 많이 사랑하던 때도 있었고 주님을 별로 사랑하지 않던 때도 있었을 것입니다. 정말 뜨겁게 주님을 사랑해서 이 세상에 아무 것도 없고 주님과 나밖에 없는 것처럼 그런 진한 사랑을 느꼈을 때도 있고, 주님을 대적하며 살았을 때도 있었을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은 불행하게도 단거리 경주가 아니라 마라톤과 같은 장거리 경주 길입니다. 그래서 마지막까지 완주하고 우리 주님 품에 안길 때까지는 그 누구도 자신의 신앙은 승리했다고, 믿음을 따라 온전히 살았노라고 장담할 수 없습니다. 확실한 것 하나는 우리가 주님을 많이 사랑하던 때에는 우리가 하나님 앞에 많이 기도했고, 우리들이 기도하지 않던 때에는 대부분 주님보다는 이 세상살이에 관심이 더 많았던 때였다는 사실입니다.
만약에 여러분들이 이제껏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아직까지도 주님과 홀로 대면해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면 여러분들의 신앙은 건강하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어린아이와 같은 신앙을 가지고 있다고 할지라도 정말 주님의 은혜에 깊이 사로잡히고 나면 하나님 앞에 홀로 주님과 대면하고자 하는 강력한 욕구를 갖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긴 기도가 기도의 목표가 될 수는 없습니다. 기도의 목표는 장시간의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과 친밀함을 이루는 것입니다. 그리고 긴 기도는 그런 하나님과의 깊고 친밀한 기도의 한 결과인 것입니다. 또한 깊은 기도는 항상 긴 시간을 필요로 하고, 긴 시간을 헌신하는 것이 없이는 깊은 기도 속으로 들어가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깊고 탄탄한 기도의 세계는 장시간동안 자기를 쳐서 복종시키며 드려지는 기도 속에서 영적으로 단련된 자들만이, 그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의 세계의 비밀을 맛본 자들만이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흔히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양보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깨달음이 없는 사람들의 열렬한 기도는 마치 방향타가 망가진 채 하늘을 날고 있는 비행기처럼 위험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느 한순간 갑자기 미끄러지는 사람들을 여럿 만났습니다. 그들은 모두 ‘갑자기’ 라고 말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깨닫고 또 하나님을 열심히 섬겼음에도 불구하고 어느 한순간에 자기가 섬기던 일이나 자기가 이제껏 붙들고 살았던 진리를 아는 지식에서 갑자기 미끄러지는 사람들은 예외 없이 기도의 세계가 허물어지는 일이 먼저 있었습니다. 개인적인 경건의 생애는 옹달샘과 같습니다. 오늘 가득 퍼먹고 내일 또 가도 그 샘의 물은 또 고여 있습니다. 개인적인 은혜의 세계, 경건의 세계는 그런 샘과 같습니다. 그러나 그런 은혜의 샘은 기도에 의해서 잘 보존됩니다.
세월이 아무리 흘러가도 교회와 그리스도인의 삶을 능력 있게 움직여 온 하나님의 세 방법이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와 성령의 은혜입니다. 칼날과 같이 번뜩이는 예리하고 분명한 하나님의 말씀, 자신의 마음을 하나님 앞에 쏟아놓는 간절한 기도, 바쳐진 그 마음에 하나님께서 역사 해주시는 성령의 강력한 불이 바로 그리스도인으로 하여금 능력 있는 삶을 이어가게 하는 원동력이었고, 교회적으로는 그 교회를 옛 영광으로 회복시켜주는 비결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능력 있는 기도가 되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을 기도에 바치면서 살아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들에게는 좀 더 집요하고 간절한 기도가 필요합니다. 하나님 앞에 매달려본 사람들은 모두 알지만 그 기도는 반드시 긴 시간의 길이를 필요로 합니다. 기도가 무엇입니까? 하나님과의 대화입니다. 대화는 내가 말하기도 하지만 상대방이 하는 말을 들을 수 있는 여유를 남겨놓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에는 하나님이 가지고 계신 생각들을 내 마음에 아로새기실 수 있도록 자기를 개방하는 노력과 시간이 필요한 것입니다. 영이신 하나님이 우리의 마음속에 오셔서 영의 생각들을 새기시기까지 우리 마음의 육신적인 지각의 껍질들을 벗겨내고 거룩한 영적인 교제 속으로 들어가기 위한 마음의 준비가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깊은 기도 속에서 사는 사람들에게는 항상 깊은 기도 속에서 살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찾아보기 어려운 놀라운 장점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영적인 순발력입니다. 회사 일로 늘 바쁘고, 집안 일로 늘 분주하다가도 어느 한순간에 조용히 무릎을 꿇고 찬송 한 장을 부르고 나면 이 세상에 근심걱정들이 모두 사라지고 찬란하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떠오르고 나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을 향해 내 마음이 고정되는 그런 영적인 순발력 말입니다.
이런 깊은 기도를 방해하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을 수 있습니다. 환경적인 요인, 건강상의 이유들, 그리고 다양한 심적인 원인들이 그러한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영적 요인일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기도할 시간은 있지만 실제로 그 기도의 시간을 감당할 만큼 기도의 영을 소유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렇게 충분하게 기도하지 못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 기도의 은혜를 유지하면서 살고자 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자신의 마음을 기도에 합당하도록 잘 지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이런 깊고 풍성한 기도의 세계 속으로 들어가는 지름길은 없다고 여겨집니다. 다만 들어가는 문은 있을 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의 마음인 것입니다. 그것도 진실한 우리의 마음입니다. 인간이 지어낸 열심이나 인위적인 기도가 아닌 보다 더 깊은 기도 속으로 우리를 데리고 들어갈 수 있는 비결은 기도 시간에 진실해지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사실이 하나 있으니, 기도는 영적인 작용이기에 깊이 기도하는 것은 성령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성령의 도움으로 깊은 기도 속으로 들어가면 그 기도는 자신이 노력하지 않아도 긴 기도가 됩니다. 그렇지만 기도를 시작할 때에는 자기 자신이 기도의 문을 두드리면서 깊은 기도의 세계 속으로 들어가고자 하는 의지를 가져야지, 어느 한순간에 성령이 오셔서 나를 깊은 기도 속으로 밀어 넣으실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올바른 태도가 아닙니다.
주님을 많이 사랑하는 사람들은 오래 기도합니다. 주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은 기도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신앙의 양식의 문제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향한 사랑의 영과 기도의 영은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김남준 목사
성경에서는 상당히 많은 구절에서 짧은 기도가 아니라 상당히 긴 시간에 오래도록 드려진 기도였음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기도해야 한다고 하는 사실에 대해서는 조금도 의심이 없지만 기도에 대해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견해 자체는 매우 편의적일 때가 많습니다. 물론 짧은 기도 속에서 하늘의 위대한 능력을 이 땅에 불러내는 광경들은 정말 우리의 눈길을 끌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짧은 기도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임박한 재난을 면하고, 마귀조차 물리치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화려함은 멋진 것입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이적과 함께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나안으로 이끈 모세와 여호수아가 그러했고, 하나님의 두려운 심판을 불러오거나 놀라운 치료들을 가져온 수많은 선지자들이 그러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이은 사도들의 발자취도 이런 기도가 얼마나 놀랍고 위대한 능력을 발휘했는지를 보여줍니다.
그러나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짧은 시간 동안 아무리 진실 되게 기도한다고 할지라도 이런 위대한 응답과 놀라운 은혜의 역사는 모든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성경이 증거 하는 이들은 평소에 장시간을 기도에 헌신하면서 일생을 살아왔던 사람들이며, 이 때문에 놀라운 하나님의 축복들이 가능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사역하실 때에 눈에 보이는 그 광경은 얼마나 흥미진진하고 명쾌하고, 그리고 신나는 광경이었습니까! 예수님의 한마디의 기도로 죽은 자가 살아나고, 하반신 장애우가 일어나며 나병이 떠나가는 것은 한 순간에 드려진 짧은 기도 때문이었습니까? 기도 응답으로 점철된 예수님의 이 놀라운 역사는, 화려하기 짝이 없는 섬김의 이 아름다운 생애의 이면에는 피와 땀과 눈물을 쏟는 개인 기도의 세계가 있었습니다. 오랜 동안 매일같이 기도하며 하나님 앞에 자기의 노고를 짜서 드리는 그런 기도의 아름다운 헌신이 있었고, 그 장시간의 기도 속에서 이룬 하나님과의 절대적인 친교, 그분과의 말할 수 없는 친밀함이 이 위대한 기도응답의 근거가 되었던 것입니다.
사람들은 모두 짧은 기도 끝에 순간순간 응답해주시는 달콤한 열매는 좋아하지만, 그런 기도의 세계를 지니기 위해서 자신이 마음을 깨트리고, 눈물을 흘리고, 그리고 피를 쏟는 처절한 자기 복종과 희생적인 기도의 헌신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아름답게 살다 간 기도의 용사들에 관한 이야기를 듣는 것은 좋아하지만, 실제로 그들처럼 그렇게 기도에 헌신하며 많은 시간들을 보내는 사람은 너무나 소수입니다. 무엇 때문일까요? 이 대답을 하기 전에 우리의 짧은 신앙생활을 한번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과거를 돌아보면 하나님을 많이 사랑하던 때도 있었고 주님을 별로 사랑하지 않던 때도 있었을 것입니다. 정말 뜨겁게 주님을 사랑해서 이 세상에 아무 것도 없고 주님과 나밖에 없는 것처럼 그런 진한 사랑을 느꼈을 때도 있고, 주님을 대적하며 살았을 때도 있었을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은 불행하게도 단거리 경주가 아니라 마라톤과 같은 장거리 경주 길입니다. 그래서 마지막까지 완주하고 우리 주님 품에 안길 때까지는 그 누구도 자신의 신앙은 승리했다고, 믿음을 따라 온전히 살았노라고 장담할 수 없습니다. 확실한 것 하나는 우리가 주님을 많이 사랑하던 때에는 우리가 하나님 앞에 많이 기도했고, 우리들이 기도하지 않던 때에는 대부분 주님보다는 이 세상살이에 관심이 더 많았던 때였다는 사실입니다.
만약에 여러분들이 이제껏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아직까지도 주님과 홀로 대면해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면 여러분들의 신앙은 건강하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어린아이와 같은 신앙을 가지고 있다고 할지라도 정말 주님의 은혜에 깊이 사로잡히고 나면 하나님 앞에 홀로 주님과 대면하고자 하는 강력한 욕구를 갖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긴 기도가 기도의 목표가 될 수는 없습니다. 기도의 목표는 장시간의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과 친밀함을 이루는 것입니다. 그리고 긴 기도는 그런 하나님과의 깊고 친밀한 기도의 한 결과인 것입니다. 또한 깊은 기도는 항상 긴 시간을 필요로 하고, 긴 시간을 헌신하는 것이 없이는 깊은 기도 속으로 들어가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깊고 탄탄한 기도의 세계는 장시간동안 자기를 쳐서 복종시키며 드려지는 기도 속에서 영적으로 단련된 자들만이, 그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의 세계의 비밀을 맛본 자들만이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흔히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양보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깨달음이 없는 사람들의 열렬한 기도는 마치 방향타가 망가진 채 하늘을 날고 있는 비행기처럼 위험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느 한순간 갑자기 미끄러지는 사람들을 여럿 만났습니다. 그들은 모두 ‘갑자기’ 라고 말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깨닫고 또 하나님을 열심히 섬겼음에도 불구하고 어느 한순간에 자기가 섬기던 일이나 자기가 이제껏 붙들고 살았던 진리를 아는 지식에서 갑자기 미끄러지는 사람들은 예외 없이 기도의 세계가 허물어지는 일이 먼저 있었습니다. 개인적인 경건의 생애는 옹달샘과 같습니다. 오늘 가득 퍼먹고 내일 또 가도 그 샘의 물은 또 고여 있습니다. 개인적인 은혜의 세계, 경건의 세계는 그런 샘과 같습니다. 그러나 그런 은혜의 샘은 기도에 의해서 잘 보존됩니다.
세월이 아무리 흘러가도 교회와 그리스도인의 삶을 능력 있게 움직여 온 하나님의 세 방법이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와 성령의 은혜입니다. 칼날과 같이 번뜩이는 예리하고 분명한 하나님의 말씀, 자신의 마음을 하나님 앞에 쏟아놓는 간절한 기도, 바쳐진 그 마음에 하나님께서 역사 해주시는 성령의 강력한 불이 바로 그리스도인으로 하여금 능력 있는 삶을 이어가게 하는 원동력이었고, 교회적으로는 그 교회를 옛 영광으로 회복시켜주는 비결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능력 있는 기도가 되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을 기도에 바치면서 살아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들에게는 좀 더 집요하고 간절한 기도가 필요합니다. 하나님 앞에 매달려본 사람들은 모두 알지만 그 기도는 반드시 긴 시간의 길이를 필요로 합니다. 기도가 무엇입니까? 하나님과의 대화입니다. 대화는 내가 말하기도 하지만 상대방이 하는 말을 들을 수 있는 여유를 남겨놓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에는 하나님이 가지고 계신 생각들을 내 마음에 아로새기실 수 있도록 자기를 개방하는 노력과 시간이 필요한 것입니다. 영이신 하나님이 우리의 마음속에 오셔서 영의 생각들을 새기시기까지 우리 마음의 육신적인 지각의 껍질들을 벗겨내고 거룩한 영적인 교제 속으로 들어가기 위한 마음의 준비가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깊은 기도 속에서 사는 사람들에게는 항상 깊은 기도 속에서 살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찾아보기 어려운 놀라운 장점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영적인 순발력입니다. 회사 일로 늘 바쁘고, 집안 일로 늘 분주하다가도 어느 한순간에 조용히 무릎을 꿇고 찬송 한 장을 부르고 나면 이 세상에 근심걱정들이 모두 사라지고 찬란하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떠오르고 나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을 향해 내 마음이 고정되는 그런 영적인 순발력 말입니다.
이런 깊은 기도를 방해하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을 수 있습니다. 환경적인 요인, 건강상의 이유들, 그리고 다양한 심적인 원인들이 그러한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영적 요인일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기도할 시간은 있지만 실제로 그 기도의 시간을 감당할 만큼 기도의 영을 소유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렇게 충분하게 기도하지 못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 기도의 은혜를 유지하면서 살고자 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자신의 마음을 기도에 합당하도록 잘 지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이런 깊고 풍성한 기도의 세계 속으로 들어가는 지름길은 없다고 여겨집니다. 다만 들어가는 문은 있을 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의 마음인 것입니다. 그것도 진실한 우리의 마음입니다. 인간이 지어낸 열심이나 인위적인 기도가 아닌 보다 더 깊은 기도 속으로 우리를 데리고 들어갈 수 있는 비결은 기도 시간에 진실해지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사실이 하나 있으니, 기도는 영적인 작용이기에 깊이 기도하는 것은 성령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성령의 도움으로 깊은 기도 속으로 들어가면 그 기도는 자신이 노력하지 않아도 긴 기도가 됩니다. 그렇지만 기도를 시작할 때에는 자기 자신이 기도의 문을 두드리면서 깊은 기도의 세계 속으로 들어가고자 하는 의지를 가져야지, 어느 한순간에 성령이 오셔서 나를 깊은 기도 속으로 밀어 넣으실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올바른 태도가 아닙니다.
주님을 많이 사랑하는 사람들은 오래 기도합니다. 주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은 기도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신앙의 양식의 문제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향한 사랑의 영과 기도의 영은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김남준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