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곡과 눈물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외하심을 인하여 들으심을 얻었느니라”(히 5:7)

육신을 입고 오신 그분이 이 땅에 계실 때에 어떤 삶을 사셨는지에 대해 성경은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주님의 생애는 곧 기도의 생애였고, 그분의 기도는 그분의 전 삶을 통해서 응답을 얻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주님의 생애는 무엇보다도 눈물로 살다간 기도의 생애였습니다. 십자가에서 흘리신 거룩한 보혈은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해주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우리 구속을 위해 십자가에서 흘리신 그리스도의 보혈을 받으시기 전에 먼저 그분이 흘리신 눈물의 잔을 받으셨다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예수님의 기도생활에 대해 언급하면서 왜 이렇게 극단적인 표현을 쓰고 있을까요? 늘 죄를 짓고 하나님과의 교제가 끊어지는 우리는 통곡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죄 없으신 주님께서 이처럼 통곡하시며 눈물을 흘리신 이유가 무엇이었습니까? 마치 주님이 큰 죄악을 회개하시는 것처럼 통곡하며 기도하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무엇 때문에 그분은 그렇게 우셨습니까? 주님은 강한 분이셨습니다. 자기를 죽이려고 다가오는 핍박 앞에서도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을 배반하고 모두들 떠나갔을 때 한숨 한 번 내쉰 적이 없으셨습니다. 기억하십시오. 그분이 말할 수 없는 통곡과 넘쳐나는 눈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셔야 했던 것은 예수님 자신 때문이 아니라, 우리를 위한 탄원이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이 모든 통곡과 눈물은 모두 우리의 죄악으로 인한 것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느낄 수 없었던 하나님의 심판을 그분은 보셨기에 그런 통곡과 눈물로 기도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의 생애는 늘 기도하는 것이었지만, 오늘 히브리서 기자의 시각은 철저하게 십자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기도를 떠올릴 때에도 주께서 잡히시던 날 밤에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시던 모습을 그리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제목은 무엇입니까? 우리는 무엇을 위하여 통곡을 하며, 무엇을 인하여 눈물을 흘리고 있습니까? 처음 주를 만났을 그때에 우리가 공통적으로 표하는 신앙의 고백은 마음이 뜨거웠다는 것입니다. 무릎을 꿇고 기도를 할 때는 힘없이 십자가를 지시고 겟세마네 동산으로 올라가는 주님의 모습이 떠올랐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흘리신 그 눈물소리가 들렸습니다. 이런 첫사랑에 붙잡혔을 때에 우리의 기도는 나를 위한 기도가 아니라, 교회와 사랑하는 형제들과 고통 하는 이웃과 구원받지 못한 가족을 위한 기도가 전부였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신앙이 하나님을 만나는 감격을 잃어 버렸을 때에 우리의 기도는 처음부터 끝까지 오직 나만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것도 대부분이 육체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이제 주님이 그토록 통곡을 하지 않고는 기도하지 않을 수 없었던 그 기도의 제목들을 회복을 하여야 할 것입니다. 우리들에게도 그분이 우셨던 그 기도의 제목으로 울게 해달라고 하나님 앞에 간구하여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애통하여야 할 것입니다. 주님이 애통해하시던 기도의 제목들이 내게는 왜 가슴 아프게 다가오지 않느냐고 주님 앞에 애통 하여야 할 것입니다. 우리 각자의 기도의 골방을 돌아봅시다. 우리의 눈물로 기도의 방을 적시게 해달라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그렇다면 성경이 언급하고 있는 바와 같이 주님처럼 심한 통곡과 눈물로 기도를 하면 모두 다 응답을 받을 수 있는 것일까요? 성경은 그분이 말할 수 없는 통곡과 눈물의 기도, 간절히 드려지는 기도를 올렸기에 하나님이 예수님의 기도를 들어주셨다고 말하지 않고 ‘그의 경외하심을 인하여 들으심을 얻었느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주님은 간절한 기도의 모범이 되시기는 하지만, 간절히 기도한다고 해서 하나님이 반드시 들어주실 것이라는 생각은 오해라는 것입니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요 14:13),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요 14:21)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의 계명을 온전히 지키는 자, 삶의 동기가 주를 경외하는 것에 모두 맞춰진 자의 기도를 하나님은 들어주신다는 것입니다. 심한 통곡으로 가슴을 칠 만큼 그 기도가 아무리 간절하다 할지라도, 그의 삶이 주를 경외하고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을 위해서 살려고 몸부림치는 삶이 아니라면 그가 외치는 기도 소리는 주님의 보좌 앞에 아무 것도 아닌 것입니다.

위대한 기도의 사람들의 삶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들은 골방에만 묻혀있는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주를 위하여 생명을 걸고 나아가 싸운 사람들이었습니다. 복음의 불모지에 복음을 들고 담대히 나아가 외쳤으며, 자신이 살아있는 동안 주께 영광 돌리기 위해 몸 버려 피 흘려 수고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의 기도는 짧아도 힘이 있었습니다. 위대한 능력이 있었습니다. 여호수아의 기도가 그러했고, 다니엘의 기도가 그러했습니다. 그들은 모두 단순히 기도의 사람이 아니라 주를 위해서 산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사람들의 기도를 주님께서 응답을 해주셨습니다. 우리의 입술은 주의 영광을 위해서 살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하는 것 같아도 우리의 속사람은 우리에게 송사를 하고 있습니다. 마음에 들어온 세상의 탐욕과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 그리고 학개 시대의 백성들처럼 여호와의 전을 지을 때가 멀지 않았다고 하며 자기들은 편안한 집에 거하는 이기적인 탐심들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입술로는 아무리 주를 위해서 살겠다고 해도 속사람은 영원히 너희의 기도는 참된 기도가 아니라고 참소를 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결단하여야 합니다. 주가 오르셨던 겟세마네 동산으로 올라가야 할 것입니다. 그분이 통곡하며 기도하셨던 것처럼 우리들도 잃어버린 영혼들을 위해 울부짖어야 할 것입니다. 그분이 찬바람 부는 갈보리 언덕, 겟세마네 동산 모퉁이에서 우리의 이름을 부르며 눈물을 흘리셨던 것처럼 하나님의 거룩한 교회에 성령으로 말미암아 부어지는 부흥을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하는 눈물의 잔들을 채워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이것을 원하시고 계십니다.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하였던 예수님의 기도를 외면하지 않으셨던 것처럼 우리들도 이렇게 주를 경외하며 그 마음으로 기도를 올릴 때에 하나님은 결코 우리의 기도를 외면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주의 영광이 찬란하게 드러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