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 거듭나셨습니까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는 말을 기이히 여기지 말라”
(요 3:6,7)
인간은 손수 흙으로 빚으시고 생기를 넣어 산사람이 되게 하셨습니다. 흙은 육신의 재료가 되었고 생기는 인간의 영혼이 되어 그 둘이 결합되어 산사람이 된 것입니다. 주님의 뜻에 따라 살 존재로 태어났습니다. 인간은 육신이란 겉사람과 영혼이란 속사람으로 되어 육신은 흙으로 영혼은 하나님께로 가게 됩니다. 첫사람은 죽지 않게 태어났지만 타락하게 되어 육신과 영혼이 다 멸망하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그 사람의 생명을 연장시켜주셨습니다. 사람 없는 이 세상은 아무 것도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성품을 인간에게 주셨습니다. 그래서 영이신 하나님과 영혼이 있는 사람과 교제를 나누도록 만들어주셨습니다. 인간의 타락 이후 영혼은 죽었지만 육신의 생명은 남겨주셨습니다. 자손을 남김으로 육신의 생명이 유지되도록 하셨습니다. 그리고 구원을 받아 영혼이 거듭나게 하셔서 사람구실을 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인간의 타락 이후 사람은 태어날 때 겉사람은 살아있지만, 속사람은 죽은 상태에서 태어납니다. 이세상의 모든 사람은 영혼이 죽은 상태에서 태어나고 영혼이 거듭나지 않으면 죽는 것입니다. 사람이 태어날 때 영혼이 죽은 상태에서 태어나기 때문에 영혼에 변화가 있지 않으면 죄를 지으면서 창조주를 거역하여 진노를 쌓아가다 죽게 됩니다. 모든 인생의 삶은 영혼의 상태가 뿌리가 되어 맺히는 열매입니다. 삶과 어울리는 영혼의 상태가 있기 마련입니다. 육체의 출생이 ‘첫태어남’이라면 영혼의 출생은 ‘거듭남’입니다.
본문에 등장하는 니고데모는 권력자이며 종교지도자였지만 밤에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그는 예수님이 하신 표적에 감동을 받고 하나님이 보내신 사람임을 확신합니다. 그때 예수님은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고 하십니다. 죽은 영혼이 다시 태어나 살아있는 영혼이 될 때 비로소 하나님의 창조목적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예배는 드리지만 하나님을 만나고 진리를 찾고자 하는 마음이 없다면, 죽으면 지옥에 갑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교회 나오는 사람들의 나라가 아니라 거듭난 사람들의 나라입니다. 인간 도리를 다 하고 욕먹지 않는 도덕적 삶을 살아도 영혼이 거듭나지 않았다면 분명히 지옥의 불길 속에 던져질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윤리적인 사람들이 가는 곳이 아니라 거듭난 사람들이 가는 곳입니다. 우리에게는 거듭날 기회가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이 거듭나라고 주신 마지막 기회입니다. 거듭남을 깊이 사모해야 합니다.
열매를 맺고자 하면 뿌리가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거듭나지 않고 맺히는 열매도 분명 있습니다. 그렇다면 거듭나지 않은 증거는 무엇입니까?
첫째, 거듭나지 않은 사람은 자기만족을 위해서 살아갑니다.
이들은 절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않습니다. 그런 마음을 품지 않습니다. 죄는 창조주 하나님을 잊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온 세상이 자신을 위해, 자신의 인생은 자신의 만족을 위해서 사는 것이 바로 가장 흉악한 죄입니다. 거듭난 사람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살아갑니다. 만일 내가 하나님을 기쁘게 하지 않는 삶을 추구한다면 거듭났다고 하는 판단이 틀렸을 수 있고, 일시적으로 자신의 유익을 위해 살 수 있습니다. 거듭난 사람들은 자신을 위해 산다면 회개하게 됩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신자라 생각하는데 지배적인 마음의 경향이 자신의 만족을 위해서 산다면,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한다면,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고통을 주면서도 자기 욕망대로 산다면, 분명 거듭나지 않은 사람입니다. 그러면서도 눈물 흘리면서 간절한 마음으로 회개조차 하지 않으면 거듭나지 않은 것입니다. 생명이 없는 것입니다. 왜 교회에 다닙니까? 왜 예배드립니까? 본성적으로 하나님 없이 자기만족을 위해 산다면 왜 가증하게, 왜 신자인척 합니까? 본성은 어떤 변화도 없는데 교회만 다니는 것입니까? 가정의 평화를 위해, 눈치보고 다닌다면, 하나님을 위해 살지 않으면서 비참하게 살면서도 본성상 하나님을 거스리고 있다면 하나님과 원수요 대적입니다. 참회해야 합니다. 우리는 지옥의 문 앞에 다가가 있는 인생 아닙니까? 주일마다 교회는 다녔는데 지옥 간다 생각해보십시오. 너무나 불쌍한 영혼들입니다. 한달, 두달, 1년, 2년을 가족 손에 이끌려 나오면서 하나님과는 원수처럼 살면서 가증하게 교회 마당만 밟고 있지 않습니까? 교회 출석하는 것이 거듭난 것을 입증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만족을 위해서 살아야합니다. 내가 아프더라도 주님이 기쁜 것이 진정한 기쁨입니다. 교회는 10년 이상 다녀도 자기를 깨뜨리지 못하고 자기만족만 위해 산다면 거듭난 사람이 아닙니다. 봉사하는 것이 거듭남의 증거는 아닙니다. 거듭나지 않아도 봉사와 구제를 할 수 있습니다. 신앙 없어도 기부합니다. 신자가 필요합니다. 말씀에 변화된 사람이 필요합니다. 니고데모는 거듭나지 못했기에 고민합니다. 종교지도자요 유대인의 관원입니다. 그것이 거듭남을 입증하지 못합니다. 본성의 성향, 지배적인 성향, 자기만족의 성향이 바뀌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살아야 합니다.
둘째, 거듭나지 못한 자는 세상을 뜨겁게 사랑합니다. 세상을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과 원수되는 것입니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면서 살 수 없는 이치입니다. 물론 거듭난 사람들도 세상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물질과 명예욕에 빠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거듭난 사람들은 계속해서 세상을 사랑하지는 못합니다. 어느 순간 반드시 후회하고 뉘우칩니다. 세상에 대한 사랑도 지속적일 수 없습니다. 일시적이고 대상을 바꿀 수밖에 없습니다. 탐욕과 분노, 음란을 위한 삶도 한 대상을 향할 수 없습니다. 유혹과 영원한 사랑을 구분하지 못하고 걸려 넘어집니다. 거듭나지 않은 사람은 그렇게 계속 미끄러지면서 삽니다. 그러나 거듭난 사람은 참회하고 하나님을 향하고자 합니다. 죄 가운데 살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너무 사랑하셔서 예수님을 죽게 하기까지 했다는 것을 생각하지 않았다면 거듭나지 않은 사람입니다. 마음이 굳어지면 은혜를 덜 느낄 수 있지만, 한번도 하나님의 은혜를 느낄 수 없다면 거듭난 사람이 아닙니다. 회개하고 거듭나게 되면 마음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납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시고 자신의 아들을 주셨건만, 방자하게 예배드리고 있지는 않습니까? 상습적으로 예배에 늦는 사람들,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 없이 사교클럽 드나들 듯 하는 사람들이 아닙니까?
셋째, 거듭나지 않은 자는 자신의 영혼을 고치는 하나님의 손길을 거부합니다. 하나님은 영혼이 병들어 있는 자를 고치십니다. 거듭난 자는 아프지만 자신을 고쳐 달라 합니다. 그래서 거듭난 사람들은 말씀에 은혜를 받습니다. 말씀에 깨달음이 오면서 회개합니다. 하나님 앞에 신음하면서 말씀이 자신을 치료하는 것을 경험합니다. 거듭나지 않은 자들은 하나님이 영혼을 치료하고 고치신다는 경험이 없습니다. 모든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고 있고, 치료를 위한 말씀을 거절합니다. 상황을 통해 들려주는 하나님의 경고를 무시합니다. 교만하게 행했습니다. 거듭나지 않은 자라는 상표가 됩니다. 거듭났다면 어떻게 냉담하게 살 수 있겠습니까? 일주일 동안 한번도 성경 읽지 않고, 한번도 기도하지 않고, 자신의 영혼을 위해 걱정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이 거듭난 자이겠습니까?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없습니다. 설교의 단맛만 찾으면서 영혼의 변화를 회피한다면 거듭난 자들이 아닙니다. 세상을 뜨겁게 사랑해도 세상은 치사하게 반역할 것입니다. 어떤 일을 하든지 늘 불안할 것입니다. 영혼의 끊임없는 번민과 고민이 있을 것입니다.
지금 즉시 기도해야 합니다. 죽음이 바로 이 순간 나를 엄습하려고 한다는 사실을 알고, 죽은 영혼이 깨어나야 합니다. 하나님이 도우셔서 거듭날 수 있도록 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거듭나지 않고 살면서 세운 인생의 계획은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복음의 도리를 깨달아야 합니다. 교회는 복음을 선포하는 곳입니다. 복음의 도리를 배워야 합니다. 어찌하여야 구원을 얻을 수 있을지 도움을 청해야 합니다. 또한 지속적으로 죽음 이후의 세계를 생각해야 합니다. 지금 내가 죽는다면 천국에 갈 수 있는지 자문자답해야 합니다.
(요 3:6,7)
인간은 손수 흙으로 빚으시고 생기를 넣어 산사람이 되게 하셨습니다. 흙은 육신의 재료가 되었고 생기는 인간의 영혼이 되어 그 둘이 결합되어 산사람이 된 것입니다. 주님의 뜻에 따라 살 존재로 태어났습니다. 인간은 육신이란 겉사람과 영혼이란 속사람으로 되어 육신은 흙으로 영혼은 하나님께로 가게 됩니다. 첫사람은 죽지 않게 태어났지만 타락하게 되어 육신과 영혼이 다 멸망하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그 사람의 생명을 연장시켜주셨습니다. 사람 없는 이 세상은 아무 것도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성품을 인간에게 주셨습니다. 그래서 영이신 하나님과 영혼이 있는 사람과 교제를 나누도록 만들어주셨습니다. 인간의 타락 이후 영혼은 죽었지만 육신의 생명은 남겨주셨습니다. 자손을 남김으로 육신의 생명이 유지되도록 하셨습니다. 그리고 구원을 받아 영혼이 거듭나게 하셔서 사람구실을 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인간의 타락 이후 사람은 태어날 때 겉사람은 살아있지만, 속사람은 죽은 상태에서 태어납니다. 이세상의 모든 사람은 영혼이 죽은 상태에서 태어나고 영혼이 거듭나지 않으면 죽는 것입니다. 사람이 태어날 때 영혼이 죽은 상태에서 태어나기 때문에 영혼에 변화가 있지 않으면 죄를 지으면서 창조주를 거역하여 진노를 쌓아가다 죽게 됩니다. 모든 인생의 삶은 영혼의 상태가 뿌리가 되어 맺히는 열매입니다. 삶과 어울리는 영혼의 상태가 있기 마련입니다. 육체의 출생이 ‘첫태어남’이라면 영혼의 출생은 ‘거듭남’입니다.
본문에 등장하는 니고데모는 권력자이며 종교지도자였지만 밤에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그는 예수님이 하신 표적에 감동을 받고 하나님이 보내신 사람임을 확신합니다. 그때 예수님은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고 하십니다. 죽은 영혼이 다시 태어나 살아있는 영혼이 될 때 비로소 하나님의 창조목적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예배는 드리지만 하나님을 만나고 진리를 찾고자 하는 마음이 없다면, 죽으면 지옥에 갑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교회 나오는 사람들의 나라가 아니라 거듭난 사람들의 나라입니다. 인간 도리를 다 하고 욕먹지 않는 도덕적 삶을 살아도 영혼이 거듭나지 않았다면 분명히 지옥의 불길 속에 던져질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윤리적인 사람들이 가는 곳이 아니라 거듭난 사람들이 가는 곳입니다. 우리에게는 거듭날 기회가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이 거듭나라고 주신 마지막 기회입니다. 거듭남을 깊이 사모해야 합니다.
열매를 맺고자 하면 뿌리가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거듭나지 않고 맺히는 열매도 분명 있습니다. 그렇다면 거듭나지 않은 증거는 무엇입니까?
첫째, 거듭나지 않은 사람은 자기만족을 위해서 살아갑니다.
이들은 절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않습니다. 그런 마음을 품지 않습니다. 죄는 창조주 하나님을 잊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온 세상이 자신을 위해, 자신의 인생은 자신의 만족을 위해서 사는 것이 바로 가장 흉악한 죄입니다. 거듭난 사람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살아갑니다. 만일 내가 하나님을 기쁘게 하지 않는 삶을 추구한다면 거듭났다고 하는 판단이 틀렸을 수 있고, 일시적으로 자신의 유익을 위해 살 수 있습니다. 거듭난 사람들은 자신을 위해 산다면 회개하게 됩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신자라 생각하는데 지배적인 마음의 경향이 자신의 만족을 위해서 산다면,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한다면,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고통을 주면서도 자기 욕망대로 산다면, 분명 거듭나지 않은 사람입니다. 그러면서도 눈물 흘리면서 간절한 마음으로 회개조차 하지 않으면 거듭나지 않은 것입니다. 생명이 없는 것입니다. 왜 교회에 다닙니까? 왜 예배드립니까? 본성적으로 하나님 없이 자기만족을 위해 산다면 왜 가증하게, 왜 신자인척 합니까? 본성은 어떤 변화도 없는데 교회만 다니는 것입니까? 가정의 평화를 위해, 눈치보고 다닌다면, 하나님을 위해 살지 않으면서 비참하게 살면서도 본성상 하나님을 거스리고 있다면 하나님과 원수요 대적입니다. 참회해야 합니다. 우리는 지옥의 문 앞에 다가가 있는 인생 아닙니까? 주일마다 교회는 다녔는데 지옥 간다 생각해보십시오. 너무나 불쌍한 영혼들입니다. 한달, 두달, 1년, 2년을 가족 손에 이끌려 나오면서 하나님과는 원수처럼 살면서 가증하게 교회 마당만 밟고 있지 않습니까? 교회 출석하는 것이 거듭난 것을 입증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만족을 위해서 살아야합니다. 내가 아프더라도 주님이 기쁜 것이 진정한 기쁨입니다. 교회는 10년 이상 다녀도 자기를 깨뜨리지 못하고 자기만족만 위해 산다면 거듭난 사람이 아닙니다. 봉사하는 것이 거듭남의 증거는 아닙니다. 거듭나지 않아도 봉사와 구제를 할 수 있습니다. 신앙 없어도 기부합니다. 신자가 필요합니다. 말씀에 변화된 사람이 필요합니다. 니고데모는 거듭나지 못했기에 고민합니다. 종교지도자요 유대인의 관원입니다. 그것이 거듭남을 입증하지 못합니다. 본성의 성향, 지배적인 성향, 자기만족의 성향이 바뀌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살아야 합니다.
둘째, 거듭나지 못한 자는 세상을 뜨겁게 사랑합니다. 세상을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과 원수되는 것입니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면서 살 수 없는 이치입니다. 물론 거듭난 사람들도 세상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물질과 명예욕에 빠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거듭난 사람들은 계속해서 세상을 사랑하지는 못합니다. 어느 순간 반드시 후회하고 뉘우칩니다. 세상에 대한 사랑도 지속적일 수 없습니다. 일시적이고 대상을 바꿀 수밖에 없습니다. 탐욕과 분노, 음란을 위한 삶도 한 대상을 향할 수 없습니다. 유혹과 영원한 사랑을 구분하지 못하고 걸려 넘어집니다. 거듭나지 않은 사람은 그렇게 계속 미끄러지면서 삽니다. 그러나 거듭난 사람은 참회하고 하나님을 향하고자 합니다. 죄 가운데 살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너무 사랑하셔서 예수님을 죽게 하기까지 했다는 것을 생각하지 않았다면 거듭나지 않은 사람입니다. 마음이 굳어지면 은혜를 덜 느낄 수 있지만, 한번도 하나님의 은혜를 느낄 수 없다면 거듭난 사람이 아닙니다. 회개하고 거듭나게 되면 마음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납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시고 자신의 아들을 주셨건만, 방자하게 예배드리고 있지는 않습니까? 상습적으로 예배에 늦는 사람들,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 없이 사교클럽 드나들 듯 하는 사람들이 아닙니까?
셋째, 거듭나지 않은 자는 자신의 영혼을 고치는 하나님의 손길을 거부합니다. 하나님은 영혼이 병들어 있는 자를 고치십니다. 거듭난 자는 아프지만 자신을 고쳐 달라 합니다. 그래서 거듭난 사람들은 말씀에 은혜를 받습니다. 말씀에 깨달음이 오면서 회개합니다. 하나님 앞에 신음하면서 말씀이 자신을 치료하는 것을 경험합니다. 거듭나지 않은 자들은 하나님이 영혼을 치료하고 고치신다는 경험이 없습니다. 모든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고 있고, 치료를 위한 말씀을 거절합니다. 상황을 통해 들려주는 하나님의 경고를 무시합니다. 교만하게 행했습니다. 거듭나지 않은 자라는 상표가 됩니다. 거듭났다면 어떻게 냉담하게 살 수 있겠습니까? 일주일 동안 한번도 성경 읽지 않고, 한번도 기도하지 않고, 자신의 영혼을 위해 걱정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이 거듭난 자이겠습니까?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없습니다. 설교의 단맛만 찾으면서 영혼의 변화를 회피한다면 거듭난 자들이 아닙니다. 세상을 뜨겁게 사랑해도 세상은 치사하게 반역할 것입니다. 어떤 일을 하든지 늘 불안할 것입니다. 영혼의 끊임없는 번민과 고민이 있을 것입니다.
지금 즉시 기도해야 합니다. 죽음이 바로 이 순간 나를 엄습하려고 한다는 사실을 알고, 죽은 영혼이 깨어나야 합니다. 하나님이 도우셔서 거듭날 수 있도록 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거듭나지 않고 살면서 세운 인생의 계획은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복음의 도리를 깨달아야 합니다. 교회는 복음을 선포하는 곳입니다. 복음의 도리를 배워야 합니다. 어찌하여야 구원을 얻을 수 있을지 도움을 청해야 합니다. 또한 지속적으로 죽음 이후의 세계를 생각해야 합니다. 지금 내가 죽는다면 천국에 갈 수 있는지 자문자답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