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 마음에 동이 트고 샛별이 떠오를 때까지 어두운 곳을 비치는 등불
너희 마음에 동이 트고 샛별이 떠오를 때까지 어두운 곳을 비치는 등불
-본회퍼의 “신도의 공동생활”
1.
본회퍼의 글들은 단순하면서도 맑다. 그 비결은 성경을 중심으로 글을 자아내는 자였기 때문이다.
- 요즘 나는 많이 아프다. 조금만 무리해도 담이 붙고, 감기들기 일쑤이며, 지금은 목소리마저 나지 않는다. 이전에 없던 두통이 새벽마다 들쑤시고 밤잠은 깊지 못하다. 내 자신에 대한 실망과 염려를 가득 안고 살아간다. 자신에 대한 실망이 이렇게 큰데 다른 사람들과 기쁜 만남을 유지할 수 있을까?
그런데 본회퍼의 글을 읽으면서 많은 위로를 받았다.
“우리는 남에 대해서, 그리스도인 전반에 대해서 아니 우리 자신에 대해서 아주 실망하는 자리에 이르지 않으면 안됩니다.”(32)
바로 이것이
“우리의 모든 사귐의 바탕과 힘과 약속이 예수 그리스도에게만 있는 것”(37)
을 깨닫게 하는 출발점이라는 것이다. 자신에게 실망하는 사람만이 바로 자기 마음의 마당을 깨끗하게 비울 수 있고, 자신과 남에게 실망하는 자만이
“하나님의 권리주장”(25)
의 힘과
“하나님의 모든 보복을 자기 몸에 받으신 그리스도”(60)
의 위압성을 경험할 수 있다.
만나고 있는 서로에 대한 실망이 없다면, 가장 커다란 신앙의 신비를 경험할 수 없다 함이 본회퍼의 가르침이다. 실망이 있어야 모인 사람들이 저만치 물러나고 그리스도만 모임 한 가운데 설 수 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고 고백하면서도 모임에서 주가 되는 것은 자기 자신이나 다른 한 사람이 될 경우가 많다. 서로에게 뭔가를 기대하고 서로에게 뭔가를 주장하기에 그렇다.
우리는 모이면서 서로에게 실망하는 것을 먼저 배워야 한다. 사실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바리새파 같은 “깨끗한 공동체”를 원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창녀와 세리와의 만남을 통해 하나님의 신현을 보셨다. 이런 실망스런 만남을 아름다운 모임으로 만들려면 우리는 상대방에 대한 기대를 버리고, 나의 주장을 거두어 들이고, 그리스도 앞에 복종해야 한다. 누군가를 가르치려는 욕망을 넘어서야 하고, 무슨 신학이론을 배우려는 욕망을 버리고, 자기 의견을 상대방에게 관철시키려는 “폭력”을 넘어서야 하며, 가장 어설프게 배운 이들의 특징인 “냉소”를 넘어서야 한다. 그와 같은 욕망, 사람의 이상,
“모든 꿈이 아침 안개처럼 사라질 때에 그리스도인의 사귐은 동터오게”(34)
된다. 그러고서 우리는 상대방의 얼굴을 마주해야 한다. 경건하게. 그 얼굴은 죄인의 얼굴, 그러나 하나님을 닮은 얼굴이기에 그렇다. 이런 몸가짐이 하나님 바리시는 그리스도인의 현실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