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기 없이 메말라 황폐한 땅에서 -본회퍼의 "신도의 공동생활"
아침마다 드리는 예배에 본회퍼는 시편을 권한다. 시편은 시라서 어떤 역사적 배경을 들이대는 식의 해석, 즉 이론의 틀로 보는 것보다는 시인의 고백과 기도에 집중케 한다. 시는 저절로 드러난 말이지 억지로 드러낸 말이 아니다. 아주 자연스런 성정이 그대로 드러난 말이다. 그래서 시는 과학성과 가장 멀리 떨어져 있다. 신학이든 철학이든 요즘 학문은 과학성에 지배당하고 있어서 우리는 더 메마른 세상을 사는지도 모른다. 과학성에 빠져 있는 사람들과 경쟁적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헤어지고 나면 참 허망하다.
그래서 우리는 “물기 없이 메말라 황폐한 땅에서”(시편 63, 1) 살고 있다는 것을 실감케 한다. 하이데거는 그리스도교 철학을 두고 “나무로 만든 쇠”라고 했고, 바르트는 철학과 신학의 이런 결합을 “근친상간”이라고 잘라 말했다. 바울 사도는 이런 것을 다 “배설물”로 여겼다. 키에르케고르의 비유처럼, 거미줄 하나에 매달려 허공에 떠 있는 거미와 같은 게 학문에 의지한 신앙이다. 바싹마른 낙엽 하나로 스윽 긋고 지나가기만 해도 거미줄은 걷히고 말 것이다.
시편의 시들은 우리의 속을 뒤집어 헤치는 것 같다. 본회퍼에 따르면 사람의 고난이나 아픔이나 괴로움으로부터 자유하지 못했던 “인간 예수 그리스도”는 “성도의 무리 가운데서 시편으로 기도”(58) 했다. 그래서 시편의 시들을 읽을 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기도 속으로 휘말려 들어간다(58). 시편의 시인들이 메마름과 허무를 넘어 하나님을 찬미하는 데 이르기까지 그 어떤 논리로도 자기 삶을 방어할 수 없었듯이, 하나님의 약속만을 믿고 자기의 삶을 움직인 성경의 사람들도 그러했다. 그들의 삶은 탄탄한 논리로 지탱되던 삶이 아니라, 칠흙같은 어둠 속에서 가녀린 빛줄기 하나에 오로지 의지한 삶이었다. 아브라함은 광막한 우주의 침묵, 밤하늘의 별을 보고 하나님의 약속을 읽어낸 사람이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는 허허벌판에서 시를 읽어내셨다. 본회퍼는 말한다.
“나는 나의 구원을 나의 삶의 이야기에서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이야기에서만 찾습니다.”(68)
“우리가 우리의 삶이라고 하고, 우리의 괴로움, 우리의 죄라고 하는 것이 정말 그대로 현실인 것이 아니라, 성경에야말로 우리의 삶, 우리의 괴로움, 우리의 죄 그리고 우리의 구원이 있습니다.”(69)
“성경 말고는 우리의 이야기를 배울 데가 없습니다.”(69)
이런 깊이와 부딪히면 많은 것들이 지나간다. 꾸미는 장식물처럼 지식을 자랑하고 달변으로 분장하던 시절도 지나간다. 성경에서 우리의 이야기, 사람 냄새나는 이야기를 찾을 수 있는 사람은 분장하지 않을 것이다. 그 사람만이 하나님의 흔적을 찾으려 애쓸 것이다. 그런 사람이 삶의 시인이자 시편의 시인이다. 메마른 시대에 시인은 하나님의 흔적을 찾으며, 우리는 그 시인에게서 사람의 이야기, 우리의 이야기를 배운다.
하나님,
주님은 나의 하나님,
물기 없이 메말라 황폐한 땅에서
목마른 사람이 물을 찾듯이,
내가 주님을 찾습니다.(시편 63, 1)
그래서 우리는 “물기 없이 메말라 황폐한 땅에서”(시편 63, 1) 살고 있다는 것을 실감케 한다. 하이데거는 그리스도교 철학을 두고 “나무로 만든 쇠”라고 했고, 바르트는 철학과 신학의 이런 결합을 “근친상간”이라고 잘라 말했다. 바울 사도는 이런 것을 다 “배설물”로 여겼다. 키에르케고르의 비유처럼, 거미줄 하나에 매달려 허공에 떠 있는 거미와 같은 게 학문에 의지한 신앙이다. 바싹마른 낙엽 하나로 스윽 긋고 지나가기만 해도 거미줄은 걷히고 말 것이다.
시편의 시들은 우리의 속을 뒤집어 헤치는 것 같다. 본회퍼에 따르면 사람의 고난이나 아픔이나 괴로움으로부터 자유하지 못했던 “인간 예수 그리스도”는 “성도의 무리 가운데서 시편으로 기도”(58) 했다. 그래서 시편의 시들을 읽을 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기도 속으로 휘말려 들어간다(58). 시편의 시인들이 메마름과 허무를 넘어 하나님을 찬미하는 데 이르기까지 그 어떤 논리로도 자기 삶을 방어할 수 없었듯이, 하나님의 약속만을 믿고 자기의 삶을 움직인 성경의 사람들도 그러했다. 그들의 삶은 탄탄한 논리로 지탱되던 삶이 아니라, 칠흙같은 어둠 속에서 가녀린 빛줄기 하나에 오로지 의지한 삶이었다. 아브라함은 광막한 우주의 침묵, 밤하늘의 별을 보고 하나님의 약속을 읽어낸 사람이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는 허허벌판에서 시를 읽어내셨다. 본회퍼는 말한다.
“나는 나의 구원을 나의 삶의 이야기에서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이야기에서만 찾습니다.”(68)
“우리가 우리의 삶이라고 하고, 우리의 괴로움, 우리의 죄라고 하는 것이 정말 그대로 현실인 것이 아니라, 성경에야말로 우리의 삶, 우리의 괴로움, 우리의 죄 그리고 우리의 구원이 있습니다.”(69)
“성경 말고는 우리의 이야기를 배울 데가 없습니다.”(69)
이런 깊이와 부딪히면 많은 것들이 지나간다. 꾸미는 장식물처럼 지식을 자랑하고 달변으로 분장하던 시절도 지나간다. 성경에서 우리의 이야기, 사람 냄새나는 이야기를 찾을 수 있는 사람은 분장하지 않을 것이다. 그 사람만이 하나님의 흔적을 찾으려 애쓸 것이다. 그런 사람이 삶의 시인이자 시편의 시인이다. 메마른 시대에 시인은 하나님의 흔적을 찾으며, 우리는 그 시인에게서 사람의 이야기, 우리의 이야기를 배운다.
하나님,
주님은 나의 하나님,
물기 없이 메말라 황폐한 땅에서
목마른 사람이 물을 찾듯이,
내가 주님을 찾습니다.(시편 63, 1)